이 연구는 나라는 아바타를 배정받는 것에서 시작된다. 우리는 이 아바타를 직접 커스터마이징하지 못했다. 만약 선택권이 있었다면 나는 조금 다른 능력치를 골랐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몸과 이 얼굴 그리고 건강하지 못한 신체와 설명하기 힘든 기질이 나에게 할당되었다.
이 아바타에게는 몇 가지 기본 스펙이 탑재되어 있다. 우선 몸이 있다. 주기적으로 피곤해지고 배고파지고 때로는 아프다. 그리고 몸보다 더 까다로운 시스템인 마음이 있다. 아침에 눈을 뜨는 순간부터 화면에 온갖 알림을 띄우는 소프트웨어다.
어제 보낸 메일을 후회하고 있음.
오늘 할 일 목록 불안 수치 증가.
이건 좋다.
저건 싫다.
지금 기분이 나쁘다.
사실 이 메세지들은 일시적이고 종종 부정확한 데이터다. 문제는 우리가 알림 메시지를 명령으로 받아드리거나, 나의 정체성과 하나로 합치거나, 혹은 거부하려들때 발생한다.
길을 걷다가 누군가와 어깨를 부딪혔다고 가정해보자.
쿵- 하는 물리적인 충격이 온다.
아바타의 시점에서는 화면이 격렬하게 흔들린다. 시야가 순간 붉어지거나 심장 박동 소리가 게임 효과음처럼 쿵쿵 하고 크게 울린다. 상대방이 인상을 쓰고 바라본다.
그 순간 아바타의 인터페이스 전체가 붉은 경고등으로 도배된다. 분노 수치가 상승하고 화면 중앙에 가장 굵은 글씨로 텍스트가 떠오른다.
[무시당했다.]
아바타의 시점에서는 그 경고등의 영향이 절대적이다. 상대가 무시한 것은 사실이되고 나는 곧 무시당한 존재가 된다. 그리고 아바타가 다음 스킬인 방어 혹은 반격을 자동 시전하기까지 아주 짧은 시간밖에 걸리지 않는다. 억울함에 소리를 지르거나 반대로 비굴하게 사과한다. 어느 쪽이든 그것은 즐거운 선택이 아니다. 입력된 값에 따른 자동 반응이다.
이것이 아바타의 삶이다. 우리는 그저 촘촘하게 짜인 알림 텍스트대로 움직이는 NPC와 다를 바 없이 살아간다. 여기까지는 아바타의 시점이다. 그렇다면 플레이어의 시점은 무엇일까?
플레이어는 이 모든 소란을 그저 바라볼 수 있다. 사실 그것이 플레이어의 유일하고도 가장 강력한 역할이다. 이것이 로그인 이후 우리가 가장 먼저 시작해야 할 첫 번째 연구 과제다.
아바타가 어떤 생각을 떠올리는지,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어떤 행동을 자동적으로 하려고 하는지, 그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는 것이다.
아바타의 시점은 바로 앞의 위협에만 반응하지만 관찰자 시점으로 전환하면 아바타가 지금 어떤 감정 상태인지 주변 환경이 어떤지 전체적인 맥락을 비로소 알게 된다.
이것만으로도 아바타의 생각과 감정에 매몰되지 않고 객관적인 시점을 확보하게 된다.
이제 똑같은 상황이 다시 벌어진다. 나는 길을 걷고 누군가와 어깨를 부딪힌다. 상대방은 인상을 쓴다. 붉은 경고등은 여전히 울린다. 분노 알림도 뜬다. 아바타의 심장 박동 수가 급격히 올라가고 얼굴 근육이 딱딱하게 굳는 것이 보인다.
"아바타가 분노 상태에 진입했음"
"아바타의 내부에서 나는 무시당했다는 생각이 재생되었음"
"아드레날린 수치가 증가함"
플레이어인 관찰자는 이 로그를 읽는다. 플레이어는 텍스트 알림을 억지로 없애려 하지 않는다. 그저 아바타의 현재 데이터로 읽는다.
이 관찰이 로그인의 전부다. 그저 시점을 바꾸어 아바타에게 일어나는 일을 '알아차리는 것'이다.
신기한 것은 그저 아바타를 모니터링만 해도 아바타의 자동 반응을 멈출 수 있다는 점이다. 공격을 받았을 때 반사적으로 욕설을 내뱉거나 움츠러들던 아바타가 셀프 모니터링을 통해 자동 반응을 잠시 멈춘다.
그 멈춤의 시간.
그것이 플레이어가 비로소 선택이라는 커맨드를 입력할 수 있는 유일한 순간이다. 아바타의 시점에는 자동 반응만 있지만 플레이어 시점에는 선택이 있다.
플레이어 시점에서는 이 멈춤 안에서 커맨드 창을 연다.
1. 반격한다
2. 사과한다
3. 무시하고 지나간다
4. 괜찮으십니까라고 묻는다
그리고 객관적인 시점에서 상황에 맞는 가장 적절한 선택을 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