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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고기차 Oct 07. 2020

아이가 남기고 가는 것들

육아 십 년

  벌써 몇 년 전, 잠시 한국에 들렀을 때 일이다. 아이를 엄마에게 맡기고 혼자 길을 걷다가 도로를 지나가는 카 캐리어를 발견했다. 흥분해서 “와, 저것 좀 봐!”하고 입을 열었다가 닫았다. 그 말은 물론 아이를 향한 것이었다. 자동차를 좋아했던 큰 아이는 자동차가 자동차를 싣고 가는 카 캐리어를 발견하면 기뻐서 팔짝팔짝 뛰었다. 아이가 좋아하는 게 좋아서 나도 그 차를 예사로 넘길 수 없게 되었다. 그 버릇이 아이가 없을 때도 나온 것이다. 실수인 걸 안 후에도 마음속에 여전히 남아 있는 흥분과 설렘이 괜히 겸연쩍었다. 그리고 어쩐지 쓸쓸해졌다.


아름다운 흔적과

  말할 것도 없이 아이는 나의 많은 것을 바꾸었다. 몇 번의 임신과 출산을 거치며 체형과 체질이 바뀌었고, 양육을 하며 성격과 습관이 바뀌었다. 어떤 것은 노화와 세월이 가지고 온 자연스러운 변화일 수도 있지만, 강제로 바뀐 것, 또 부단한 노력으로 바꾼 것들도 있다.

  근육이 줄고 지방은 늘어 예전에 입던 바지가 맞지 않는 것- 같은 건 몇 년째 해결해야 할 과제로 남아 있지만, 나는 그 변화들이 싫지만은 않다. 아이의 생활 패턴을 잡아주려고 노력한 결과 나부터 바른생활 어른이 되었다. 욕망이나 그때그때의 기분에 휩쓸리는 대신 당장 내일 아침의 육아를 생각해 충동을 자제할 수 있게 됐다.

  아기들을 (다소나마)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된 것도 마음에 든다. 버스 안에서 갑자기 울음을 터뜨리는 아기를 만났을 때, 그쪽을 쳐다보는 대신 창밖을 내다보는 양식이 생긴 게 좋고, 식당에서 빼액 소리 지르는 아기가 있어도 짜증보다 웃음이 먼저 나오는 것도 좋다. 별거 아니지만 유모차에 누워 있는 아기가 몇 개월쯤 되었나 짐작할 수 있는 것도 뿌듯하다.

   공룡에 관한 잡지식이 늘어난 것도, 중장비 이름을 맞출 수 있게 된 것도, 동화책과 그림책을 듬뿍 접하게 된 것도 좋다.

  청소하다 보면 아니 어떻게 여기에? 싶게 집안 구석구석에서 튀어나오는 장난감들. 집안의 정경을 해치는 알록달록한 물체. 지긋지긋하다, 싹 갖다 버리고 싶다고 육아 동지들과 종종 입을 모으지만 우리 집에서, 나아가 내 삶에서 공룡 내복과 미니카와 레고와 색연필이 모두 사라지는 날이 온다고 생각하면 역시 허전하다.


지울 수 없을 것 같은 상처와

  한편 육아는 정신에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남기기도 했다. 하루 종일 집안에 앉아 아기 얼굴만 바라보며 지냈던 날에 느꼈던 막막함.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무심히 던지고 갔던 한 마디. 사랑만 주어야 마땅한 아기에게 고함을 치던 내 모습. 그런 것들이 무자비한 손이 되어 꽉 주무른 마음이 다시 펴질 것 같지 않은 느낌이 든다.

  어디서 들은 이야기였나. 책에서 읽었을까, 라디오 방송으로 들었을까. 아니면 인터넷에서 스쳐 지나간 사연일까. 아이가 집에 할머니가 오는 걸 싫어한다는 내용이었다. 아이의 시점에서 본 이야기인지, 양육자가 쓴 것인지, 전지적 시점의 픽션인지조차 떠오르지 않지만 그 미움의 이유는 정확히 기억하고 있다. 할머니가 화장실 문을 닫지 않고 볼일을 보기 때문이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마음이 무너졌던 것도 기억한다. 그 당시 내가 딱 화장실 문을 못 닫고 살던 때였던 것이다. 엄마가 시야에서 사라지면 울음을 터뜨리는 아이 때문에 참다 참다 못 참을 지경이 되면 동영상을 틀어주고 화장실로 뛰어갔다. 그러고도 이변이 생길까봐 문을 열어 놓고 바깥 정황을 살폈다. 문 열어두는 게 무슨 대수일까. 아기를 안고 화장실에 가야 할 때도 있었다. 울고 싶은데 울 수 없으면 웃음이 나올 수도 있다는 걸 그때 알았다.

  아이를 키우며 ‘당연하고 정상적인 나’의 모습을 유지할 수 없는 시간이 자꾸 찾아왔다. 그 시간이 지나간 후에도 예전에 나로 회복될 수 없을 것만 같았다.

  그 날 이후 문득문득 화장실 갈 때 문을 안 닫아 미움받는 할머니가 될까봐 무서워진다. 무서워지면 세상을 조금 원망하게 된다.

  글쎄, 누가 시켜서 낳은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나는 아이가 나에게 남기고 간 것을 대체적으로 좋아하는 편이다. 정신 승리일지도 모르지만 그렇다. 아이를 키워서 행복했냐고, 혹은 행복하냐고 물으면 아니, 뭐 그렇게까지는……하고 말끝을 흐리겠지만, 그날 육아 상황에 따라 애 키우는 게 뭐가 행복하겠어, 내 앞가림만 하고 사는 게 제일이지, 하고 욱할지도 모르지만 아이를 키운 내가 아이를 키워보지 못했던 나보다 더 나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 경험 없이 순탄하게 성숙했다면 더 좋았겠지만, 아무튼 그렇다.

  깨진 마음을 모아 줍고 끼워 붙이며 다행히 조금 단단한 사람이 된 것 같다. 기분 탓에 불과하다면 그 기분을 유지하며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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