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Workingmom B Feb 17. 2022

[책리뷰]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

by 노희경

 집에는 늘 따뜻한 밥이 있었다. 된장찌개는 항상 끓여져 있었고, 그 것 말고도 국을 하나 더 끓이셨다. 국과 더불어 갖가지 반찬이 있는 밥상은 일상이었다. 자취를 하고서야, 결혼을 하고서야 엄마는 밥상을 차리는 마법을 매번 부려온 거란 것을 알게 되었다. 그 마법은 세상에서 엄마의 부지런함으로 불리워야 마땅하지만 늘 당연한 것으로 여겨졌다.

 그런 엄마는 믿기 어려울 만큼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나의 치매 할머니까지 돌보셨다. 결혼 이후 편찮지 않은 날이 없으셨던 시어머니를 늘 같은 얼굴로 돌볼 수 있다는 것. 그건 어디에서 나오는 인내심일까.


 '벽에 똥칠을 할 때까지 산다'는 말을 하는 자는 그 광경을 보지 못한 사람이다. 나의 치매 할머니는 실제로 배변 후 똥을 숨기곤 하셨는데 가끔은 벽에 똥을 칠하기도 하셨다. 오래 오래 생각했다. 할머니가 왜 그러셨는지. 내가 다다른 결론은 할머니가 수치스러웠다는 것이다. 본인이 변을 보시고 스스로 치우지 못하니 그걸 숨기신다는 게 그렇게 되었던 것이라고. 진실 여부와 상관없이 나는 할머니의 행동을 그렇게 이해했다.

 그러나 엄마는 시간이 지나고 지나도 이해할 수가 없다. 어떻게 자신의 엄마도 아니고 시어머니를 그렇게 오랫동안 모실 수 있었을까. 내 앞에서 그렇게 눈물을 아끼던 그녀가 할머니 장례식 때 그렇게 많이 울던 것도. 이제 벽에 발린 똥을 치울 일은 없으실텐데. 후련하셔야 하는 것 아닌가.


 이기적이게도 나는 그런 엄마의 건강을 엄마를 위해서만 빌지 못하고 나를 위해 빈다.

 엄마가 없으면 나는 그 맛있는 김치도 못 먹고 된장도 못 먹으니까.

 막막할 때 전화를 걸 곳도 없고, 괜히 시비 걸고 싶은 날 닦아세울 사람도 없으니까.

 엄마가 없으면 나를 아가로 불러줄 사람이 없으니까.

 그리고 엄마가 똥칠을 할 때 나는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엄마를 돌 볼 수 없을수도 있으니까.


 엄마가 날 위해서라도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셨으면 좋겠다. 이게 철들지 않은 거라면 나는 평생 철들고 싶지 않다.



<좋은 글귀>


참 묘하다.

살아서는 어머니가 그냥 어머니더니,

그 이상은 아니더니,

돌아가시고 나니 그녀가

내 인생의 전부였다는 생각이 든다.


집이란 여자에게 꿈을 주는 곳이다. 엄마 역시 이 집에 소박한 꿈들을 심어놓고 있었다.


 연수는 문득 이런 상황에 자신이 죄인처럼 느껴지는 건 순전히 그런 엄마 때문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천성이 이타적인 엄마가 곁에 있어서, 자연스럽게이기적이 되어버린 가족들. 연수는 그런 엄마를 살펴주지 못한 자신에 대한 원망으로 가슴이 먹먹해졌다.


 이상한 일이다. 왜 이 사람의 호의는 늘 당연하거나 지나치다고 느끼는 것일까.


 "저번에 내가 심하게 말한 거, 잊어버려. 쓸데없는 질투였다."

인철이 일서는 연수의 손을 잡았다.

 "다치지 마라."

 그말에 담긴 인철의 순수한 배려가 따뜻하게 전해져 왔다.


  "그들에겐 삶을 정리할 기회가 주어진단 말이에요. 사형 선고를 받은 환자와 가족들은 엄청난 고통의 대가로, 건강한 사람들은 결코 누리지 못하는 삶의 정리 기간을 가져요. 미안했던 사람에겐 미안하다 말할 기회를 갖고, 마저 사랑하지 못한 사람에겐 사랑한다는 말을 할 기회를 갖죠."


 아버지는 더 이상 희망 따위에 속고 살진 않는다. 아침이 와도 희망 같은 건 없다. 고집스레 아등바등 살아왔지만 언제 쫓겨날지 모르는 무능한 월급쟁이 의사, 이것이 육십 평생 아버지가 일궈온 현실이었다.


 "그게 암이야. 발견하기 전엔 모르구, 설사 발견했다 하더라도 그땐 이미 늦구. 그게 암이야."


 "오늘 엄마한테서 당신 부인을 보았어요... 나, 잘 살게요. 좋은 남자 만나 우리 엄마처럼, 당신 부인처럼 착하게 살 거예요. 남들에게 자랑할 수 있는 그런 사랑을 할 거예요. 남들에게 자랑할 수 있는 그런 사랑을 할 거예요. 내 남자는 잠버릇이 이렇더라, 나 없이는 양말도 못 찾아 신고, 세수를 할 때면 옷이 앞섶까지 젖더라, 난 그런 남자가 하루에도 열두번씩 보고 싶더라..."


 "자식이 부모한테 받은 걸 다 돌려줄 수는 없어."


 "물이 아래로 흐르는 것처럼, 어쩔 수 없는 거야. 난 그렇게 생각해. 사람들이 결혼하는 건 자기가 부모에게 받은 걸 주체할 수 없어서 털어놓을 델 찾는 거라구. 그래서 자식을 낳는 거라구."


 그 심란한 세월 다 보내고 같이 늙어가면서 미운 정 고운 정 담뿍 든 이 고부 사이를 다른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한다. 때때로 아옹다옹하면서도 여느 모녀지간 부럽지 않게 깊은 속정을 나누는 그 별난 관계를 어찌 말로 설명할 수 있으며, 어찌 머리로 다 이해할 수 있겠는가.


 내가 친정엄마한테 못 받았던 것 저 애 시집 보내고 다 해주려고 했는데... 딸은 엄마 팔자 닮는다던데, 정말 그러면 어쩌나, 불쌍해서 어쩌나...


 "네가 두부 주면 두부가 먹고 싶었던 것 같고, 네가 버섯 주면 꼭 그게 먹고 싶었던 것 같아."

 그랬다. 지금 엄마는 아들이 수제에 모래를 얹어준다 해도 꼭 그게 먹고 싶었던 것처럼 목이 메었다.


 "당신은... 나 없어도 괜찮지?"

 (중략)

 묻는 엄마도, 대답하는 아버지도 점자 목소리가 잦아들고 있었다. (중략)

 "술 먹을 때, 술 깰 때, 잠자리 볼 때, 잔소리 듣고 싶을 때, 어머니 망령 부릴 때, 연수 시집갈 때, 정수 대학 갈 때, 그놈 졸업할 때, 설날 지짐이 부칠 때, 추석날 송편 빋을 때, 아플 때, 외로울 때..."

작가의 이전글 [책리뷰] 보통의 언어들 : 나를 숨 쉬게 하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