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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rkingmom B Jul 12. 2022

직장인의 면(面)

초라함과 뻔뻔함 사이

초라함


 몇 해 전, 신입사원이었던 후배(지금은 벌써 그 친구가 과장급이다)가 나에게 물었다.

 "회사 생활 하면서 가장 견디기 힘든 게 어떤거예요?"

 찬물에 담겨 가스불에 올려진 개구리처럼 그냥 서서히 회사 생활에 적응해서 그 뜨거움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런 나의 입에서 미쳐 생각지 못한 대답이 나왔다.

 "나의 초라한 모습을 견디는 거."


 드라마에서 나오는 커리어 있는 주인공들의 화려한 직장생활과 현실 직장생활은 괴리가 크다. 일정한 시간이 되면 일어나서 양치하고 씻고 집을 나선다. 자차이든 대중교통이든 교통수단에 올라타 직장이라는 곳에 오면 조직 생활이라는 명목하에 마치 홍길동처럼 내 생각을 내 생각이라고 시원하게 말하지 못하고 위에서 내려오는 말들 위주로 일을 처리한다. 멋있는 차를 타고 지하주차장에 끼익 소리를 내며 주차하고 하고 싶은 말을 조리 있게 다 하는 직장 생활은 그저 꿈일 뿐이다. 가끔 있는 따분한 회식 자리에서 선배들의 '라떼는 말이지'를 듣고 동료들의 '부동산과 주식 실패담'을 들으며 술잔을 기울이면 또 어느새 하루가 지나간다. 그렇게 피곤에 절은 몸을 싣고 떠나는 버스와 지하철의 축축함을 또 버티며 하루의 마침표를 찍는다. 이 자체가 초라하진 않다. 그냥 평범한 것일 뿐.

 

 또 후배가 물었다.

 "그럼 초라할 때가 언제예요?"

 "내 가치관을 지키지 못해 면이 서지 않을 때."

 우리 둘은 서로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후배는 본인 생각과 너무 다른 보고서를 써야 해서 머리를 쥐어 뜯고 있었고 후배를 구해 줄 능력이 없는 나는 그저 그 후배를 마음으로 바라볼 뿐 제대로 고개를 들지 못했다. 우리 둘이 함께 초라해지고 있었던 시점이었다.

 회사 생활을 하면서 본인의 가치관대로만 일을 한 사람이라면 성공한 인생이 아닐까. 성공이 별 거인가. 그런 의미의 성공을 이제야 포기한 나로서는 통장에 꽂히는 월급의 무서움을 느끼며 오늘은 조금 면이라도 서는 날이길 기도하며 살아간다.





뻔뻔함



사회적인 성공은 어느 정도의 뻔뻔함을 수반한다. 내 언행과 행동으로 인한 남의 불행을 모른 척 해야 하며 필요에 따라 내 말을 쉽게 바꿀 수 있어야 한다. 어지간한 뻔뻔함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어제 A안으로 쓰라고 했던 보고서를 다시 들이밀면 B라는 내용으로 다시 쓰라고 하고, B라는 내용으로 다시 써가면 다시 C라고 쓰라고 하는 회사의 팀장들은 흔하다. 그러나 그들의 대부분은 본인이 원하는 방향이 무엇인지 모르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러기에 방향을 잡지 못하고 계속 포인트가 달라진다. 그리고 결국 A안이 채택되는 아이러니는 더 흔하다. 말바꿈을 마주 할 때마다 과연 이것이 리더의 덕목인가 싶을 때도 있다. 


 사회적 성공을 사장이 되는 것으로 정의한다면 난 그런 재질이 못된다. 말에 무게가 있다고 믿는 나로서는 말을 바꾸거나 돌리는 것이 무진장 어렵다. 그러나 회사에서는 너무 말을 잘 바꾸는 이들의 뻔뻔한 얼굴을 웃는 낯으로 대해야 하니 얼굴 근육이 아니 아플 수 없다. 그런 그들의 사회적 얼굴 근육을 비난하지는 말자. 그 근육 마저도 사회적 산물이고 우리가 견디기 힘들 뿐이니까.


 뻔뻔하지 못해 오늘 하루도 슬픈 나를, 그리고 당신을 응원한다. 세상 모진 일들 속에 오늘 하루 조금씩 웃으며 무사히 잘 살았노라고 스스로 토닥거려주길. 부디 당신의 하루의 끝은 꼭 따뜻하길 온 마음으로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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