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나에게도...
이제 곧 네돌이 되는 우리 아이에게 베프가 생겼다.
그 친구 때문에 유치원에 가는 것이 평소보다 더욱 기대되고 행복하단다.
혹여나, 우리 아이만의 짝사랑(?)은 아닐까 노파심도 있었지만,
아이들의 관계를 유심히 잘 관찰하는 눈치 백단 담임선생님은 걱정 말라며 안심시켜주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베프의 엄마로부터 연락이 왔고,
우리는 학교가 아닌 사적인 공간에서 함께 playdate를 하기로 했다.
부모의 역할 중에,
이렇게 아이의 사회성 발달과 친구관계를 위해
생판 모르는 다른 엄마에게 철판깔고 연락도 하고 만날 약속을 잡은 후,
네 매니저처럼 쫓아다녀야 하는 역할도 있다는 것을 제대로 체감한 날이다.
여하튼, 아이의 베프는 금발 머리에 얼굴이 매우 하얗고 예쁜 인형과 같은 아이다.
베프의 엄마 역시, 모델 같이 키가 크고 늘씬한 긴 금발 머리의 소유자로,
지난 1년간 같은 반에 있으면서 아이들 등하교 시간에 가끔 마주친 적이 있지만
제대로 이야기를 할 기회는 많지 않았다.
베프의 주소를 받았다. 동호수가 없구나.. 주택인가보네.
구글 맵으로 미리 검색해보니 일단 3층 저택에 살고 있는듯 하다.
아이들은 아무것도 모르고 서로 놀수 있다고 하지만,
서로 다른 문화와 생활수준을 가진 베프의 엄마와 나는 적어도 3-4시간은 될 그 시간동안
무슨 얘기를 하며 보내야 하나 만나기도 전에 고민스러워졌다.
나름 다국적회사에서 15년을 일하며 금발머리 동료들과 대화하는 법 정도는 잘 알고 있지만,
우리에게 아이들의 학교에 대한 이야기 외에 과연 공통분모가 될 주제가 있을까 싶었다.
일단, 아이의 첫 베프이기도 하고 남의 집에 가는데 빈손으로 갈수는 없으니..
근처 가게에서 남녀노소 세계 누구라도 마다하지 않을 먹기좋은 과일을 구입하고
아이에게 줄 간식거리도 좀 사고...
신발을 벗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잠시 고민했지만
일단 3층 저택에 성공적으로 들어섰다.
겨우 48개월의 귀여운 아이들은 어떻게 저렇게 서로 마음이 맞게 되었을까.
서로 오늘 만난다며 아침 7시부터 일어나 흥분하며 이 시간만을 기다렸다는 아이들이 사랑스럽다.
베프의 엄마와 나.
자신의 가족에 대해서 처음부터 모든 것을 솔직하게 소개하고 꺼내놓는 털털한 그녀.
내가 사가지고 간 딸기를 극찬하면서 어디에서 샀는지 묻기도 하고
내 운동화가 예쁘다며 자기도 편하고 예쁜 스니커즈를 사고 싶은데 어디서 샀냐며
은근슬쩍 사람을 기분좋게 마음의 문을 열게 하는 베프의 엄마.
그리고 우리는 많은 이야기를 함께 공유했다.
같은 한국사람끼리도 그렇게 비슷한 가치관을 가진 사람을 만나기가 어려웠는데
이 세상 어딘가에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누군가가 있다는 것이 반갑다.
저렴한 비용 덕분에 상주 도우미/헬퍼를 안쓰면 바보 소리 들을 수 있는 이 나라에서
두명의 자녀를 키우고 3층 저택에 살면서 헬퍼를 들이지 않는 그녀의 생각은 나와 비슷했다.
(헬퍼 쓰시는 분들이 잘못됬다는 말 절대 아닙니다 오해하지 마시길)
"아이를 키우는 것은 부모의 역할이라고 생각해.
내 자식이라도 화가 날때가 있고 귀찮기도 한데, 다른 사람은 나보다 더 하기 싫고 더 화가 나겠지."
동네를 지나다가도 헬퍼에게 무례하게 대하는 아이들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남의 자식들을 혼낸 적도 있단다.
21세기에 이렇게 생각이 바른 서구세계의 어른(?)들이 있다니 감동스러웠다.
코로나를 대하는 자세 역시 비슷했다.
백신은 꼭 맞아야 할까? 하면서 의심부터 하고 보는 것 역시 비슷.
베프의 엄마는, 이전에 가끔 청소하러 와주는 헬퍼가 있었지만
코로나 이후로는 더이상 오지 말라고 했단다.
나도 에어컨 청소해주는 사람, 고장난 욕조의 마개를 고치는 handy man 등,
외부인은 누구라도 집에 오지 말라고 버티면서, 오바한다는 말을 듣곤 했었는데.. 반갑다 친구야!
바쁘고 열심히 사는 부부는 아이들에게도 정성을 다 했다.
아이를 참 많이 사랑하는 모습이 눈에 보였다.
끊임없이 말을 건네고 아이의 엉뚱한 이야기들에 즉각적으로 귀를 기울여 주고..
함께 재밌게 놀아주려고 하고,
잘못된 것에 대해서 분명하고 단호하게 바로 가르쳤다.
요즘같이 엄마가 편한 육아 방식이 칭송받고 유행인 세상 속에 살다가,
잠깐 적응이 안되기도 하고 나름 비슷한 생각을 만난 사람을 만나서 반갑기도 했다.
(개인적으로 나는 좀 고리타분한 스타일이다.
혼자 놀게 만들려면 재미없게 놀아주라든지,
반응을 해주되 좀 느리게 하라든지,
수면교육을 위해 아이가 울어도 좀 내버려두어도 된다든지 등의 육아 조언들이
나에겐 굉장히 불편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다. )
처음 제대로 만난 사람과 이 정도의 깊이 있는 이야기가 가능한 것도 신기하고
비슷한 가치관을 공유한 가정을 만난 것도 반갑고 특별하다
사람간의 관계는 얼마나 오랫동안 만나왔는가의 숫자가 결정하지 않는 듯 하다.
짧은 만남이라도 마음을 통하는 단 몇시간의 대화 속에서
그들은 이미 나의 좋은 친구가 되어 버린 듯 하다.
(내 착각이라도 어쩔 수 없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