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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메리카노 Jun 10. 2021

딸바보 아빠가 사랑하는 법

다소 무뚝뚝하고 어떨 때는 대화가 안 통해 답답하고 꽉 막혀있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섬세한 이 남자에게 반해서 결혼을 했더랬다. 

10년을 만나던 나름 첫사랑과 위태롭고 살벌한 시간들을 보내고 만신창이가 되어 헤어질 그 무렵, 

세심하고 배려심 넘치는 그는 스며들듯, 내 삶 속에 심쿵하게 다가왔다.

10년이 되도 도무지 결혼 결심이 안서던 나에게, 

그의 섬세한 사랑의 방식은 단 3개월만에 내가 결혼을 결심하게 만들었으니 

나름 나에게는 먹히는 방법이었다. 


그렇게 함께 우리는 여러 계절을 함께 보내고 

이제는 그때의 사랑꾼 남편과 나의 미니미 딸이 부비부비 까르르 웃는 모습에 

나를 둘러싸던 우울감은 금새 녹아내린다.  

그래 이게 행복이지. 


 그 섬세한 이 남자, 딸을 소중한 보석처럼 대한다. 

그가 딸을 사랑하는 방법이 여전히 나를 심쿵하게 하고 설레게 한다.


1. 딸의 키가 자라고 몸무게가 들어가듯, 어느 덧 머리카락이 어깨 넘어까지 길어졌다. 

오늘은 아빠가 딸의 머리를 말려준다. 

나는 평소같으면 관심 제로이지만,  옆에 앉아 있다가 드라이어에서 찬바람이 느껴져 물었다. 


나: 감기 걸리면 어쩌려고 찬바람으로 해? 

(우리가 사는 곳은 늘 덥고, 모두 알다시피 드라이어의 찬바람은 그닥 차갑지 않다)

남편: 뜨거운 바람으로 하면 00이 머리결 상하자나 

나: 어머.. 너무 스윗하다 여보..


나는 그런 생각조차 못했는데.. 이 남자는 이런게 그냥 몸에 배였는지 자연스럽다. 

옛날에 우리 아빠 시대의 딸사랑은 달랐는데 말이다. 

내가 머리 감고 나오기만 하면 아빠는 내 머리를 빨리 말려준다며, 수건으로 머리를 마구 잡아 철썩철썩  흔들어댔던 기억이 난다. (남자들한테 하듯 막 내 긴 머리를 엉망징창 만드는...ㅎㅎ)

심지어 중학교 때까지 그랬던 기억이다. 

아빠가 나에게 해줄 있는 유일한 애정표현이었으니, 나는 그게 골 아프고 너무 싫어도 그냥 참고 때도 있었다. 


4살배기 딸의 머리결이 상할까 찬바람으로 딸의 머리를 조심조심 넘기며 말려주는 

내 남편의 모습이 유난스러워보인다.  


2. 남편은 원래 손재주가 좋다. 그래서 딸의 헤어스타일은 아빠가 책임지는 편이다. 

엄마가 더 잘하고 싶은데, 내가 탄 가름마는 꼭 어딘가 삐뚤어지고 정돈되지 못했다.

이런 기술(?)은 타고난 것이니까.. 머리 묶을 때 애가 가만히 있지도 않으니까.. 

이런 저런 핑계로 아빠에게 미룬다 


나는 내가 늘 그러하듯, 머리 빗질은 시간이 없으면 건너뛰어도 된다는 마인드셋의 소유자다. (분명히 명시하는 것은, 의도적인 것은 아님. 시간이 있으면 나도 머리를 자주 빗고 싶다!!)

아침에 일어나서 좀 부시시해도 일단 바쁘니까 고무줄로 질끈 묶고, 

밥 먹을 때 세수할 때 일단 걸리적 거리니까 또 질끈 묶고.. 

회의하다가 너무 더우니까 또 질끈 묶는다. 

(우리 엄마가 그랬다 그냥 손으로 쓱쓱 빗어서 대충 묶어줬다. 내츄럴 스타일을 추구했음)


우리 남편은 매일 그렇게 자주 머리를 빗어준다. 

(남편이 백수라서 그런것은 절대 아니다)

머리 감고 나와서 열심히 빗고, 학교 다녀와서 엉망이 된 머리를 또 빗어서 다시 묶어주고, 

밥 먹기 전에 또 빗어주고.. ( 그래서 집안 곳곳 빗이 여기저기 엄청 많다. )

내 남편이 심하게 유난스럽다고 느끼면서도.. 말릴 이유는 없으니 둔다.


어느 날 옆집이모가 딸래미 머리를 따준다고 앞에 앉히고는, 

빗질을 시작하자마자 머리결이 비단결 같다며 극찬을 했다.

자기 딸 머리랑은 완전 다르다며.. (같은 생머리다)

아 정말? 

지난 30여년을 내 머리결이 안 좋다고 불평하며 살았는데, 나 빗질 안해서 이렇게 된거구나. 


3. 여느 부모가 그렇듯, 목욕하고 나와서 아이에게 열심히 로션을 발라준다.

(물론, 나는 우리 엄마아빠가 목욕 후 나 로션 발라준 기억이 전혀 없다. 

그려.. 어릴 때니까 기억이 안나는거겠지)

얼굴, 팔다리, 등, 손등... 요즘엔 목욕 후, 애가 신나서 가만히 있지를 못하니 대-충 바르기도 한다.

반면 섬세한 이 남자, 피부 보습은 주름과 직결되며 중요하다면서.. 

역시 수학의 정석대로 꼼꼼히.

특히 목주름 생기면 안된다면서 딸의 얼굴을 뒤로 젖히고는 

모두가 놓치기 쉬운 목에 열심히 로션을 바른다.


내가 목에 주름이 진하게 생긴게 이런 이유였구나.  

 


 

이 세상에 아빠같이 섬세하게 위해주는 남자만 있는줄 알다가, 

아빠와 정반대의 나쁜 남자에게 매력을 느끼는 건 아닐까 심히 걱정스러워지기도 한다. 

아빠에게 받은 사랑을 기억하고 있다가 

아빠가 너에게 해주었듯이 너를 소중하게 대해주지 않는 남자가 나타나거든

일절의 고민없이 멀리멀리 하기를 바란다 딸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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