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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메리카노 Jul 12. 2021

외동아이라면 공동육아를 해보자

렌탈 브라더 만들어주기

공동육아에 대한 개념을 알고 시작한 것은 아니다. 어떻게 하면 주말에도 의미있게 (죄책감 없이) 숨쉴 구멍을 만들지에 대한 아주 이기적인 고민에서 공동육아는 시작됬다.


운좋게 아이들끼리도 , 부모들끼리도 마음 맞는 가족을 만났다.

같은 아파트 단지내 걸어서 5분도 안되는 거리에 사는 일본인 가족인데,

내 딸보다 한살 많은 남자아이(A군)이다.

전형적인 일본 가정 답게 아이는 매우 차분하고 모든 일에 절제감이 있다.

무엇보다 내 딸의 막무가내 요구사항에 마지못해 잘 져준다.

(늘 미안해서 A군에게 내가 특별히 늘 잘해준다)


코로나로 몇달간 2인 초과 인원의 외부활동이 제한적인 시기가 있었다.

3인가족은 갈곳이 없다. 집콕..

그 때부터 우리는 주말 공동육아를 시작했다.

주말 4시간씩 서로 아이들을 돌보아주기로 한 것이다.

오전에 A군에 집에서, 오후에는 우리 집에서 함께 노는 패턴이다.

생각보다 대대대 성공이었다.


처음에는 서로 원하는 것이 다른 두 아이들이 부딪히기도 했고,

둘이 같은 공간에만 있을 뿐 함께 노는 건지 뭔지 알수 없을 때도 있었다.

횟수가 거듭해갈 수록 두 아이들은 점점 서로 갈등을 조율해가면서 함께 노는 법을 배워갔다.

두 아이들의 대화를 듣는 것은 큰 즐거움이었다.

학교에서 우리 딸이 아이들과 이렇게 대화하고 놀고 있겠구나 하면서

내 딸의 사회생활에 대한 새로운 면모를 발견 할 수 있었다.

조잘조잘.. 내 딸은 덥다고 하고, A군은 춥다고 하고 에어컨을 끌것인지 말것인지 티격태격한다.

결국 A군이 점퍼를 가져와 입기로 했다. ㅎㅎㅎ 귀여움...

서로 니가 먼저 미안하다고 해야 한다며 티격태격 하다가, 결국 서로 미안하다며 상황을 조율한다.

내 딸은 병원놀이를 하고 싶은데, A군은 축구를 하고 싶단다. 결국 내 딸은 나와 병원놀이를 하고 A군은 내 남편과 축구를 하기로 했다. 그럼 내 딸이 같이 축구를 하고 싶다고 나와 그 두사람을 방해한다. 그럼 A군은 나에게 와서 병원놀이를 하겠단다. 두 자녀를 키우면 이런 기분인걸까? 귀엽다.


아이들을 상대편 집에 보낸 그 3-4시간 뿐만 아니라,

아이들이 서로 함께 노는 그 시간도 부모에게는 자유시간이 주어졌다.

두 아이들이 집중해서 재미있게 할 무언가를 준비해둔다.

 Glass Painting, Play dough, 레고, 기차놀이 등등 아이들이 좋아하는 아이템이다.

두사람이 조잘조잘 조물조물 뭔가 만드는 동안 나는 옆에서 책을 보거나 중국어 공부를 한다.

A군의 엄마는 동네에 마사지 샵에 가거나 쇼핑을 하러 갔다.

민폐끼치기 싫어하는 A군의 엄마는 처음엔 반신반의 공동육아를 시작했던 듯 했다.

(거창하게 공동육아라는 단어조차 사용한 적도 없지만)

이제 그녀는 외동아이들에게  "렌탈 브라더, 시스터" 를 만들어주었다며 기뻐한다.

그리고 자신에게 주어진 주말의 자유를 알차게 즐기고 있다.

 

같은 아파트 단지이니 특별히 데리고 오고 가고 어디 멀리 갈 필요도 없다.

딸아이의 아침을 먹이고 예쁘게 입힌 후,

나는 부시시한 머리에 모자를 눌러쓰고 옆 라인의 A군 집에 데려다 주고 온다.

아이들도 구지 원한다면 자기 집에 자기가 스스로 갈 수 있을 정도의 거리이다.

서로 안심이 되고 귀찮음 제로이다.

공동육아를 생각하고 있다면, 이런 점을 고려하면 좋다.


홀수보다는 짝수 그룹.

한명이 외로울 수 있고 갈등의 시발점이 된다. 그렇다고 4명을 한 가정에서 한번에 케어하는 것은 좀 벅차니, 2명이 가장 이상적인 숫자인 듯 하다. 아이들이 5-6세 정도 여아라면 4명도 가능할 것 같기도 하고.


가까운 거리에서 오랜 시간 지켜본

믿을 수 있는 가정이 파트너가 되어야 한다.

서로의 집에 가본적 있고, 아이를 키우는 육아철학이 비슷하고.. 나보다 좀더 엄격한 가정이면 마음이 좀더 놓일 수 있다. 자기 아이가 어느 정도 선을 넘지 않도록 통제해주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미디어 노출에 대한 기준은 중요하다. 하루 종일 TV를 켜두고 통제하지 않는 가정과 공동육아를 할 예정이라면, 그 집에 있는 시간 동안 우리 애가 무엇을 할지 뻔하지 않겠는가?  

또한, 아이들끼리 갈등이 생겼거나 위험한 상황에서 지혜롭게 아이들의 마음을 지켜주고 중재해줄 수 있는 가정인지 봐야 한다. 부모들끼리 서로 믿음이 있어야 내 자식을 단 30분이라도 맡길 수 있는 것이지 않겠는가.


이왕이면 가까운 거리의 한 동네가 좋다.

무슨 일이 있거나 하면 바로 가서 대처할 수도 있고, 오고 가는 시간도 절약하고 부담도 줄어든다. 결국 그만큼 자유시간이 많아지기도 하고. 또 같은 동네/아파트 단지라는 것은 어느 정도 경제적/사회적 수준(?) 비슷하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서로 아이들에게 제공하는 간식이라던가 놀이감 등도 부담없이, 위화감 없이 공유할 수 있게 된다.  


각자, 엄마와 떨어져서 놀 수 있을 만큼 성숙해야 한다.

나이의 문제라기 보다는, 아이들이 부모와 떨어져서 친구와 놀 수 있는 마음의 준비가 되었는지의 상태이다. 엄마가 없어서 불안해하거나, 상대 부모를 불편해하거나 너무 수줍음이 많아서 본인이 원하는 것이나 처한 상황(예- 목마름, 화장실 등)을 표현하지 못하는 상황이면 공동육아는 어렵다. 아이에게도, 상대편 부모에게도 큰 스트레스가 된다.


아이들끼리의 성향이 잘 맞는지 봐야 한다.

공동육아 전 여러차례의 만남을 통해 아이들이 서로 맞추어가고 함께 놀 수 있는 성향인지 관찰해볼 필요가 있다. 한 사람이 감정적이고 적극적인 성향이라면, 한 사람은 좀 차분하고 받아줄 수 있는 넉넉함이면 좋다. (유아들에게 뭐 그렇게 큰 인내심을 바랄 것은 아니지만, 둘다 감정적으로 울어버리는 성향이면  통제 불능이다) 서로 좋아하는 놀이가 비슷하면 좋고, 서로 대화가 되고 의견을 맞추어 가는 것이 가능하면 될 것 같다.


아이들의 독립과 사회성을 개발시키고, 부모에게는 약간의 주말 자유시간을 허락해주는... 일석이조.

이렇게 이웃과 함께 아이를 키워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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