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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메리카노 Jul 14. 2021

30대 후반의 내가 20대의 나에게 보내는 편지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란 책의 후반부에 이런 글이 나온다.


나이든 사람에게는 미래도 없고, 기회도 없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들은 그 이상의 것을 가지고 있다.

미래에 대한 가능성 대신 과거 속 실체, 즉 그들이 실현시켰던 잠재적 가능성들,

그들이 성취햇던 의미들, 깨달았던 가치들을 가지고 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부분은 "실체" 이다. 꿈 꿔오던 미래에 대한 잠재적 가능성을 실체로 만들기 위해 지금껏 달려온 시간들이 눈 앞에 선하다. "내가 할 수 있을까?" 불안함과 조급한 마음들을 홀로 꾹꾹 눌러담아가며, 어리버리한 내가 헤쳐온 시간들은 그야 말로 은혜였다. 나에게 선물처럼 찾아와 준 도움의 손길, 때때로 분에 넘치게 찾아와주는 행운, 그리고 거기에 더해진 내 노력과 끈기로 나는 여기까지 왔다. 단 한가지도 계획대로 이루어진 것은 없다. 30대의 어느 언저리에 이 정도면 좋겠다 라고 그 때 꿈꾸어왔던 말풍선 구름 속의 가능성들은 계획보다 더 멋진 실체가 되어 주었다. (내 기준에서 말이다. 비교하지 말자) 여기까지 가면 정말 짱이겠다 라고 생각했던 그 자리가 한걸음 너머에 있으니, 스스로 수고했다고 칭찬해주고 싶다. 나이드는 것도 억울한데 이런 실체를 즐기는 기쁨이라도 있어야지.


계획대로 되지 않았다고 해도, 이룬 것이 많지 않았다고 해도 슬퍼할 필요도 없다. 모든 사람들은 가능성을 실체로 바꾸어 가는 과정을 살아가고 있다. 현재는 현재의 가능성을 실체로 바꾸기 위해 고군분투하느라 충분히 지치고 바쁘다면 그것으로 된 것이다. 30대는 30대 나름의 불안함과 조급함과 여전히 싸우고 있다.


가끔은 내 나이 앞자리 수가 수년 후 업데이트 될 생각을 하면 좀 슬프지만, 그렇다고 다시 20대로 돌아가서 이 모든 과정을 다시 할 마음은 없다. 그만큼 나는 후회없이 최선을 다해 살았나보다 싶다. 아니, 그 당시 가능성으로 설레였던 마음보다, 매일매일 살아남기 위해 더 잘 하기 위해 노력했던 그 시간들은 쓴 맛이 더 컸던 것 같다. 그래도 지금의 내가 그 때의 나에게 이 편지를 전할 수 있다면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이제서야 조금이나마 큰 그림이 보이는 30대 후반의 아줌마가 하고 싶은 말이다.


1. 지금 만나는 그 놈이랑 당장 헤어져라

너의 마음을 소중히 대해주지 않고 네가 예쁘지 않다고 하는 그 놈과 당장 헤어져라. 너 자신을 정말 사랑하고 아껴주는 사랑을 해라.

너에게 가끔 저녁 먹자고 회사 남자 동료들, 지금 생각해보면 나에게 관심이 있었다. 다 꾀 괜찮은 사람들이었는데, 아쉽다. 그 놈이랑 얼마나 깊은 사이인지 너를 떠보려는 의도였는데, 열녀비 세워도 모자랄만큼 너는 그들에게 열심히 벽을 쳤다. 그 놈이랑 헤어지기 전이라도, 다양하게 탐색해보는 것은 해가 되지 않는다. 두려워하지 말고 관계를 정리하고 나와라.  


2. 사람이 곧 자산이다

네가 지금 만나는 모든 사람들, 동네친구, 회사 동료, 선배, 업무상의 고객들, 선후배 등이 네 인생의 자산이 된다. 네가 30대 후반 힘든 시간을 보낼 때, 그들이 너를 위로했다. 내가 도움이 필요한 그 순간 그들이 너를 실질적으로 도왔다.

업무상 만난 고객들은 여전히 너를 기억하고 추억하며 먼 타국에 사는 나를 구지 찾아내어 전화하기도 한다. 그들에게 진실하고 성실하게 네가 도울 수 있는 일들을 돕고 인격적으로 연을 두텁게 하거라.


3. 지금 네 모습은 네 인생에서 가장 빛나고 있다.

누가 예쁘다고 해주어야 네가 예쁘고 아름다워지는 것이 아니다. 스스로 믿고 사랑하자. 30대 아줌마가 본 20대의 네 사진은 예쁘고 날씬하고, 다시 돌아가고 싶은 순간이더라. 그 때 왜 이렇게 나는 멍청하게도, 나에게 "살 좀 더 빼면 예쁘겠다" 라고 말하는 그 사람의 말만 믿고, 여기저기 숨기고 가리고 살았는지 모르겠다. (40키로 대였으면 충분했다!)


4. 비싼 정장 한두벌 정도는 사 입어도 된다. 보이는 능력도 중요하다.

아끼려고 한 것은 아니었는데, 지금 돌아보니 값비싼 정장 한벌 제대로 사입어 본적이 없다. 비싸다고 다 좋은 것은 아닌 것은 맞지만, 때로 옷이 날개가 되어 내 가치가 더 높아져 보일 때가 있다는 것을 기억해라. 커리어우먼으로 성공하고 싶은 꿈이 있었다면, 번 만큼 너 스스로에게 투자하는 것도 좋다. 네 보이는 능력을 더 키워라.  


5. 책을 읽어라

뒤늦게 독서를 통해 많은 깨달음을 얻은 아줌마는 후회스럽다. 20대 연애하고 회사에 충성하느라 시간이 없겠지만, 세상에 좋은 책들이 많더라. 책 사보는 일에 돈을 아끼지 말고, 투자, 자기 개발, 에세이 등 인생의 지혜를 많이 배우면 좋겠다.


6. 억지로라도 좋아하는 운동 하나 정도는 만들어두면 좋겠다 싶다.

30대의 지금도 너는 여전히 몸을 움직이는 일을 싫어한다. 어쩌면 좋니?


7. 일기를 써라. 글을 써라.

네 20대의 생각, 고뇌, 가능성을 실체로 바꾸는 여정 속의 모든 기록들이 별로 남아 있지 않아서, 30대의 아줌마는 아쉽다. 나중에 들여다보며 울고 짜고 웃을 수 있는 무언가 남아 있다면 좋겠다 싶다. 치열하게 살아온 그 시간들, 나에게 찾아온 수많은 기적들을 잊지 않고 싶다.


8. 부모님의 건강을 잘 돌보아 드려라.

어차피 네 말을 잘 듣지는 않으시겠지만, 부모님 대신 좋은 건강식품이나 취미활동들이 무엇인지 알아보고 권해드려라. 부모님은 그저 열심히 일하는 것만 알고 융통성이 없다. 꿈이 있고 여유있고 의미있는 노년을 보내실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앞으로 10년 후, 지금의 나에게 나는 무슨 말을 해주고 싶을까.

건강 잘 챙기라고? 피부관리하라고?

유리천장을 뚫고 가보라고? 네 자신의 두려움을 이기고 도전하라고?

내 꿈을 향해, 나를 향해, 아이를 위해, 가족을 위해, 이 사회를 위해..

후회없는 시간들을 차곡차곡 쌓아가다보면

실체가 된 흐릿했던 가능성들이 굵고 뚜렷한 형태가 되어, 나에게 반갑다고 인사하고 있겠지.


<아티스트웨이> 란 책의 저자가 서문에 이런 말을 한다. 좋아하는 것 25가지를 쭉 적어낸 후 노년을 어떻게 보낼지 결정했다고. 노년이기엔 좀 이르지만, 30대의 나도 적어봤다. 앞으로 몇 년간은 그렇게 살아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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