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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메리카노 Jul 24. 2021

이메일에 천천히 답하기로 했다

15년차 일개미의 반항기

결국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래도 나는 나름 소심한 반항을 하기로 했다. 

얼마나 갈지는 모르지만 너무 티나지 않게 한 며칠은 그래보려고 한다.


일처리가 빠르고, 착착 진행시키고 성과를 내고, 그게 내가 일하는 방식이다. 

말만 번지르르한 거말고 결과로 보여주는 리더가 되고 싶었을 뿐이다. 적어도 내가 보틀넥이 되고 싶지는 않고, 가능한 부스터가 되고 싶었다.이메일을 보낸 사람이 기다리는 자료, 답변, 피드백, 결정 등을 빨리 빨리 해줘야 다음 단계로 진행이 되니까 말이다. 

내가 직접 관여하는 프로젝트가 아니더라도, 보낸 사람이 진행하는 프로젝트에 대한 배려와 보낸 사람이 답변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는 역지사지의 마음으로, 가능한 그 날의 이메일은 아무리 바빠도 48시간 이내 처리하는 게 내 원칙이었다. 


그런데 나... 이제 그렇게 안하기로 했다.

Let them wait.

정말 바쁜 것도 이유 중 하나지만, 내가 왜 이러고 있나 싶었다. 

친절한 것, 누군가를 배려하는 것, 프로젝트의 전체 타임라인을 생각해서 빠른 진행을 해나가는 것 등은 내 승진에 전-혀 도움이 안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이메일에 빨리 답을 하든지 말든지, 프로젝트 전체를 배려를 하든지 말든지는 리더로서 내가 평가받는 성공 기준이 아니었다. 주니어 시절 영혼을 갈아넣어 하나라도 더 배우고 프로젝트 리더로서 조직의 신뢰를 얻어야 할 그 때에나 필요한 덕목이었다. 

내가 전략적인 생각을 보완하거나 휴식을 취할 시간을 희생하고 시간을 쪼개서 할애하는 이런 배려의 시간은, 그들이 감정적으로 고마워할지는 모르겠지만 내 역량평가에 큰 도움이 안되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반항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나의 존재의 고마움을 좀 느껴보라고 말이다. 제발 좀 느껴보라고 말이다. 

빙빙 돌려 말했지만, 나는 여전히 리더가 "사람" 중심적여야 하고 "결과"의 책임자로서 보틀넥이 되어서는 안된다고 믿는다. 그리고 그것은 중요한 평가의 기준이 되어야 한다고 믿고. 그래서 좀 느껴보라고 내가 없어져볼까 한다. 스티브잡스는 그냥 아이디어만 좋았고 전략적인 비전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스스로 실행했고 트렌드를 따라 빠르게 진행시켰다. 

그런데 어째 이놈의 현실은 실체 없이 말만 번지르르 잘하는 사람들이 조직내에 판을 친다. 

일개미는 설 자리가 없다. 그래서 나도 이제 일개미 안하기로 했다. 말만 하려고 한다. 

이메일 따위는 일주일 쯤 기다리라고. 답을 하지 않기로 했다. 필요하면 직접 찾아오시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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