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20여년 간의 커리어를 돌아보면, 나에게 기회를 주었던 사람들이 꼭 있었다. 내가 자격이 있어서라기 보다는, 나를 믿고 한번 해보라며 맡겨준 편에 가깝다.
#1
교회에서 피아노 반주를 배우기 시작했던 나는 초보였다. 코드를 읽어 건반을 누르는 것까지는 익숙했지만, 실제 예배의 반주다운 반주를 메인으로 하기엔 많이 부족했었다.
어느 찬양인도자 분이 어느 날 나에게 실제 예배시간에 해보지 않겠냐며 기회를 주셨다. 주제를 모르고, 기회를 마다하지 않는 도전적인 성격인 나는 덜컥 해보겠다고 했다. 그 이후 나는 그 자리에 부디 해가 되지 않길 바라는 마음으로 매주 밤새 준비하고 실력을 키웠다. 그리고 대예배 반주자로 5년 이상 섬길 수 있었다.
#2
입사 5년차, 나는 그저 열심히 근무하는 워커홀릭 브랜드 매니저였다. 어느 날, 회사의 외국인 사장과 내 한국인 보스들이 나를 미국 본사의 파견 근무를 보내주겠다고 했다. 그 흔치 않은 기회가 20대 후반의 나이에 주어졌다. 그리고 그 한번의 기회로 내 인생은 송두리째 바뀌었다. 지금 생각해보아도 어떻게 그러한 복권같은 기회가 주어졌는지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간다. 단순히 리더의 결정이었다.
#3
일본에서 근무할 때의 일이다. 1년 쯤 일본 조직에 익숙해질 때 쯤, 나는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났을까)외국인 보스에게 비지니스 유닛 팀을 하나 달라고 요청 했다. 그리고 그는 나에게 5명의 일본인 팀원을 가진 엄청난 사이즈의 비지니스를 이끌 기회를 주었다. 한국에서도 팀장으로 일한 적이 있었지만, 다른 나라 사람들로 구성된 팀을 이끄는 것은 다른 차원의 리더쉽 검증을 요구한다. 그런 검증도 없이 그는 나에게 덜컥 그 자리를 줬다.
그 이후 나는 더 크고 복잡한 팀으로 옮겨가며 차근차근 커리어를 확장해, 인터네셔날 팀을 이끌 수 있는 글로벌 리더로서 성장할 수 있었다. 그 리더가 나에게 준 기회는 신의 한수였다.
#4
출산 휴가를 마치고 돌아갈 새로운 포지션을 찾고 있던 중이었다. 이전의 하던 일로 돌아가긴 싫어서, 이곳 저곳 면접을 보고 떨어지길 반복 하던 중이었다. 출산 휴가 전 잠시 내 보스였으나, 내가 없는 사이 회사의 아주 높은 곳으로 승진되어 간 분이 있었다. 그에게 어느 날 연락이 오더니 나에게 자신의 팀의 요직에 오라며 오퍼를 주었다. 면접도 뭐도 아무것도 필요 없으니 그냥 오란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은 그 자리에 부적격인 인물이었다. 나에게 과분한 자리였다.
처음 2년간 심리적 육체적으로 힘들었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바를 열심히 했고 성과도 낼 수 있었지만, 내 스스로 만족스럽지 못했다. 하지만 나는 많이 배우고 내 스스로를 갈고 닦았다. 그리고 시니어 리더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리더로 성장해갔다.
이 모든 예들은 말해준다.
리더는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줄 수 있는 사람이다.
내 옛 리더들은 나를 물에 던졌고
내가 헤엄쳐 살아남을 수 있는지 봤다.
다행히 내가 살아 남았고
그들이 준 기회는 다른 새로운 기회로 연결됬다.
리더는 그런 힘을 가지고 있다.
왜 나에겐 그런 기회를 안 주냐고
따질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딱 떨어지는 스코어보드(점수판)를 가지고
결정을 내리는 것이 아니다.
리더의 마음이고, 감이다.
기회를 주고 안 주고는 그들의 몫이다.
나는 새로운 기회가 필요한 때였다.
나에게 기회가 오기를 기다리며 두드렸는데,
크고 의미 있는 기회가 주어지지 않아 상심하던 차였다.
나에게 기회를 주면 나 정말 잘 할 수 있는데,
잠시 쉬어가야 하는 때인가보다.
언제는 내가 자격이 되서 기회가 왔던가.
그리고 또 내가 자격이 안되서 안 왔던 것도 아니고.
내가 리더의 위치에서
기회를 주었던 직원들을 생각해본다.
그들은 잘 살고 있을까?
내가 주었던 기회를 발판 삼아,
그들이 가고 싶은 곳을 향해
훨훨 날아가고 있기를 소망하고 축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