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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메리카노 Dec 17. 2019

죽음의 문턱에서 내가 배운 4가지 교훈

Life Changing Moments

누구나 살아가면서 "비자발적인” 생명의 위협을 한번쯤 직접적으로 경험해보기도 한다. 우리가 가끔은 경멸하고 초라하다고 느끼는 구질구질한 삶 일지라도, 죽음의 문턱에 선 순간 대부분의 우리들은 우리 안에 숨겨진 삶과 생명을 향한 강인한 본능에 마주한다. 엄마는 10년 전 특정암 3기로 진단 받았다. 삶에 초탈했던 강인했던 엄마는, 한국으로 막 돌아와 집에 들어선 나를 보자마자 “무서워. 살고 싶어”라고 말했다.

나는 2011년 일본의 동북아대지진 당시 도쿄에 있었다. 회사는 도쿄 시내의 30여층 건물에 위치했는데, 지진 당시 30여분 이상 빌딩은 거꾸로 세운 시계추 같이 양 옆으로 쉴새없이 흔들거렸다. 캐비넷과 의자는 한쪽면으로 쏠리고, 책상 서랍은 열렸다 닫혔다를 반복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책상 밑에 앉아 머리를 보호하고 지진이 끝나기를 기다리는 것 뿐. 통신은 끊긴 상태였다. 지진이 처음인 나는 이 빌딩이 이렇게 흔들리다가는 끝끝내 댕강 부러져 무너지겠구나 라고 생각했다. 나는 엄마에게 이메일로 유서 아닌 유서를 남겼다.

가장 긴박했던 경험은 출산이었다. 과로와 스트레스도 문제였겠지만, 내 작은 체구는 출산에 준비되지 않은 듯 했다. 임신 8개월에 접어들기도 전, 혈압이 치솟았고 온몸에 물이 차고 부어 올랐다. 몸에 물이 차서 몸무게가 20키로 이상 늘었다. 폐에 물이 차고 호흡 곤란이 왔다. 아이를 끝까지 품지 못해 미안했다. 죽음의 문턱에서 나는 많은 것을 배웠다. 흔히들, Life Changing Moment 라고 한다.


첫번째 교훈.
평한했던 삶이  “당연한 것”들이 아니었다. 세상의 흔한 불행들이 나를 피해간 것이 기적이었다.


나는 꾀 신실한 종교인이다. 나는 내가 믿는 그 분과 아주 친밀한 동행함과 보호하심을 늘 느껴왔다. 조산아 출산의 순간에도 나는 의심이 없었기에, 도대체 왜 라는 의문이 들었다. 왜 우리 아이에게 이렇게 힘든 시간을 주실까 배신감도 들었다. 아기도 안아보지 못한채 병실에 누워 천장만 바라보는 그 시간들을 통해 나는 그 답을 조금씩 깨달았다.

때로는 불평스러웠던  평범한 순간들이 오히려 특별한 선물이었다. 세상의 흔한 불행한 사건들이 나를 피해 갔던 것이 기적이었다. 불행한 사건들은 언제든지 우리를 찾아올  있다는 당연한 진리를  나는 이제야 알았을까.  

가끔 힘든 순간들이 찾아온다. 멋지게 발표하고 싶었는데 버벅거리다 끝나기도 하고, 브런치도 잘 안되고, 부모님에게 서운하기도 하고, 갑자기 이유없이 몸이 많이 아프기도 하고, 다정했던 남편은 맨날 책만 보고 있고, 내년에는 어떤 잡으로 어느 나라로 또 가야 하나 고민이 되기도 하고...
나와 아이가 죽음의 문턱을 건넜던  날로 돌아가보면, 모든 것이 감사이고 불평할 이유가 나에게는 없다.  


두번째 교훈.
자기 건강은 스스로 챙겨야 한다. 스스로 갈고 닦고 멈춰설 줄 알아야 한다


워커홀릭이었던 나는 먹는 것에 늘 소홀했다. 먹는 시간이 귀찮고 아까울 때도 많아서, 자주 거르곤 했다. 조금만 더 일하고 이것만 마치자 하며 점심식사를 미루고, 하고 싶은 일들에 우선순위를 둔다며 식사 및 운동에 소홀했다. 혹시 제대로 먹는 날에는, 소고기 마니아 답게 꽃등심 마블링만 찾아 다녔다. 야채는 예쁘게 진열되어 먹기 좋게 썰린 “양배추”만 먹었다.


나는 너무 누가 챙겨주는 것에 익숙했었나보다. 어른답게 홀로 독립하고 길을 찾아 갔건만, 정작 건강한 식습관  운동습관에는 어린 아이와 같았다. 한마디로 자기 관리가 부족했다.  건강은 다른 사람이 챙겨주지 않는다. 내가 스스로 우선순위로 세우고 챙기고 돌보아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가족이 생기니 나는 더이상 내 한 사람의 삶이 아니었다. 사랑하는 아이와 남편의 삶이 나로 인해 달라질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그만큼 영향력 있는 사람이었다.


세번째 교훈.
사람과 사람, 생판 모르는 타인도 위로와 격려가 될 수 있다. 그렇게 선한 것들이 흘러가도록 살자.


나는 차가운 수술대 위에 누워 있었다. 나와 국적이 다르고 문화가 다른 의료진들이 나를 둘러싸고 긴급 수술을 한다. 그 날 처음 만난 간호사 언니는 내 흐르는 눈물을 닦아 주며 걱정하지 말라며 내 손을 꼭 잡아 주었다. 급작스러운 병가와 출산 소식을 듣고 많은 사람들이 함께 진심으로 기도해주고 걱정해주었다. 평소 그다지 친하지 않았던 분들조차, 위로의 손길을 건네고 출산 선물을 사다 주곤 했다. 각박한 현실 속에 잘 모르고 살았다. 이러한 사람과 사람 사이의 따뜻한 위로들이 우리를 다시 일어날  있게 해주는 힘이 된다는 것도. 많은 사랑의 빚을  기분이다.

그 이후, 내가   있는 일들로 누군가의 삶을 조금이나마 위로하고 풍성하게 격려하며 살고 싶었다. 손을 내밀었다. 누군가에게는 “그냥받는 것에도 용기가 필요했다. 주는 사람이 위고 받는 사람이 아래라는 자존심어린 생각일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언제든 위건 아래건 어느 위치에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의미있는 인연이 나타났을  적극적으로 받고 함께 일어설 것이다. 선한 것들이 유유히 흘러가도록, 적극적으로 주고 받고 나눌  있는 관계가  삶속에 더욱 많아지기를 소망한다.  


네번째 교훈.
내 인생의 발자취(footprint)를 남겨야 한다는 것


막상 흔들리는 빌딩의 책상 밑에서, 또는 병원에 누워 잘못하면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을 하니, 억울했다. 그동안 열심히 살아왔는데 내가 죽으면 무엇이 남는 거지? 내 보험증서, 꼬박꼬박 쌓아놓은 월급뭉치, 엄마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은 내 일기, 내 방의 잡동사니? 그 외엔 남겨진 것이 없군 이란 생각이 들었다. 무엇을 남기고 갈까? 내 자녀와 이 세상에 어떤 것을 남기고 가고 싶을까?

언제 올지 모르는 죽음 앞에, 그냥 열심히  사는  말고  생각, 경험, 가치관  목소리를 내고 살자고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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