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초라하게 만들지 마세요
중학교 3학년 때의 일이다. 엄마는 유명한 외국어고등학교 입학 시험장에 나를 데리고 갔다. 내가 동의를 했었는지 어떻게 우리가 그 곳에 갔는지 전혀 기억이 없지만, 나는 교실 가득 빽빽히 들어앉은 동년배 여중생들과 함께 영어 듣기평가를 하고 있었다. 나는 엄마를 위해 잘하고 싶었다. 내 옆에 앉아있는 생전 처음보는 친구들보다 잘하고 싶었다.
결과는 불합격이었다...
그때의 속 쓰린 실패의 기억은 20년도 넘게 지난 이제서야 나를 흔들고 있다.
엄마는 왜 준비 되지 않은 나를 그 곳에 데리고 갔을까? 16살 내 인생, 영어공부라곤 고작 2년 남짓의 윤선생 파닉스 뿐이었는데. 그것만으로 나는 그 시험을 통과할 만한 영어 실력을 가졌어야 하는 줄만 알았다. 잘하고 싶었던 나의 마음은 영문도 모를 실망감으로 가득채워졌다. 나와 비슷한 처지인줄로만 알았던 그들은 어떻게 그렇게 잘 할 수 있었는지, 나는 내가 지독히 부족한 사람인 줄로만 알았다.
엄마가 되어서야 나는 깨달았다. 어찌보면 내 인생에 첫 공식적인 도전에, 나는 전혀 준비되지 않은 벌거벗겨진 상태로 내세워졌었구나. 나는 골리앗이 골리앗인 줄도 모른채, 골리앗 앞에 세워진 믿음 없는 다윗이었다. 그리고 이 순간은 사랑하는 엄마가 진심으로 원망스러운 유일한 순간이 되었다.
나를 왜이렇게 초라하게 만든거야, 엄마?
우리 아이들은 모두 잘하고 싶어 한다. 특히, 부모에게 칭찬받고 싶어한다.
부모는 아이들이 잘 할 수 있도록, 성공적으로 해낼 수 있을만큼 준비되게 도와주어야 한다. 아이들의 도전이 긍정적인 선순환이 될 수 있도록, 그리고 실패할지라도 지금까지의 준비와 도전 그 자체를 칭찬해주고, 다시 도전할 수 있는 힘을 남겨 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