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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메리카노 Jun 12. 2020

도마뱀 우는 소리 들어보셨나요

싱가포르에 살면서 가장 먼저 마주치는 낯설음으로 말하자면, 일년 내내 일관성 있는 더위, 맑은 하늘에 날벼락 처럼 거의 매일 하늘이 무너질 듯 쏟아지는 비, 그리고 시도 때도 없이 눈에 띄는 다양한 종류의 도마뱀이라고 할 수 있겠다. 나에게 있어서 그 중 단연 최고봉은 도마뱀이라고 해두겠다. 이 역시 추억이니 기록해두련다.


콘도 (싱가포르의 아파트) 외벽을 기어다니는 크고 작은 도마뱀 때문에 흠칫 놀랄 때가 많았다. 다행히 우리 콘도에 사는 도마뱀은 크고 무섭게 생기지 않은 도마뱀이었는데, 나무와 숲이 우거진 보티닉가든 근처의 거리를 걸을 때면 진짜 험상궂게 생긴 내 손바닥보다 크고 뚱뚱한 도마뱀들이 뛰어다니는 것을 자주 볼 수 있었다.


콘도 단지 내의 도마뱀들은 gecko 라는 이름을 가진 종인데, 사이즈도 작고 납작한 색깔도 탁한 녹색빛을 띄는 심지어 귀엽기도 한 위협적이지 않은 녀석이다. 참고로 아이들을 위한 유튜브 영상 중에 gecko's garage라는 만화가 있을 정도 gecko는 친근한 존재인 듯 하다. 비록 나는 싱가포르에 와서야 처음으로 이런 종류의 도마뱀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내 집에 도마뱀


문제는 가끔 이 gecko 도마뱀들이 (험상궂은 놈들 말고 콘도 내의 작은 녀석들)이 집안으로 들어오곤 한다는 것이다. 다행히 이 녀석은 천장을 기어다니지도 않으며, 집안의 각종 벌레를 잡아먹어주니 유익한 파충류라고도 볼 수 있겠다. 바퀴벌레가 들어오는 것보다는 수천배 낫지만, 그래도 집안에서 밤이면 움직이는 불청객이 있다는 것은 그다지 유쾌한 일은 아니다.


가끔 이 녀석들이 들어와서 우리 집에 똥을 싸질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무언가 딱 봐도 배설물처럼 생긴 거무튀튀한 쥐똥같은 것이 집안에 출현했다. 우리는 순간 이것은 쥐똥인가... 새똥인가... 아무튼 베란다로부터 우리가 집으로 들어올 때 가지고 들어왔나보다 하며 후다닥 휴지로 싸서 치워버렸지만, 이내 우리는 그 똥의 주인공이 (심지어 여러마리가 번갈아가며) 우리와 함께 산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도마뱀 우는 소리


남편과 나는 한참 논쟁을 했다. 이것은 분명 쥐가 찍찍 거리는 소리라며 남편은 신경을 곤두세웠고, 나는 "이 콘도 내에 쥐가 다닐 정도로 관리를 안할리는 없지, 새가 지저귀는 소리야" 라며 반박했다.


그러던 어느 날 새벽, 남편이 홀로 도마뱀 출현 지역(우리 침실)에서 홀로 작업 중에 도마뱀을 발견했단다. 그리고 쫓고 쫓는 추격전 끝에 그 도마뱀은 침대 뒤로 쏙 들어가버렸는데, 그 이후 그 짹짹짹 새 소리가 우리 침실머리 맡으로부터 스테레오로 들리는 대 참사가 벌어졌다. 젠장....


이것이 도마뱀 소리인 줄 알고 난 이후부터는 나는 밤새 잠을 못 이루었다. 새라고 믿었던 그 때가 좋았건만...


#트랩 설치 그 후


그리고 남편은 끈적이 트랩을 설치했다. 자주 출현하는 곳곳마다. 설치 그 후 일주일도 안되어서 서로 다른 세마리가 잡혔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놈들이 우리 집에 있었던거야 그럼?)


트랩에 잡힌 도마뱀 때문에 아이는 너무 재밌어서 신이 났고, 나는 차마 보고 싶지 않아 외면했다. 남편은 친절했다. 잡힌 도마뱀이 아직 죽지 않았으면 나무젓가락으로 고이고이 끈적이에서 떼어주어 다시 밖으로 내보내주었다. 뭘 그렇게까지......


그 이후 도마뱀 새 소리는 다행히 들리지 않았다. 우리집 가면 끈적이 트랩 걸린다고 동네 도마뱀들 사이에 소문이라도 났나보다 ... ㅎㅎ


도마뱀과 정면으로 마주쳤던 그날의 충격은 아직도 잊을 수 없는 재미있는 추억이 되어버렸지만, 침대 맡에서 찍찍찍 서럽게 지저귀던 도마뱀 소리는 추억이 되기엔 너무 큰 충격이었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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