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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메리카노 Jul 10. 2021

코로나 시대라서 다행이야

세상이 나를 위해 이기적으로 돌아갈 일은 전혀 없겠지만, 

가끔 그럴 지도 모른다고 생각할 때가 있다. 

적응력 좋고 심하게 긍정적인 성격 덕분일지도. 

코로나가 내 삶의 구석구석, 이 세상의 삶의 근간을 흔들어댈 때, 

코로나는 싫어도 이건 나를 위한 기회라고 생각했던 것이 몇 가지 있었다. 


출장 안가는 엄마를 아이에게 선물해준 코로나  

나는 출장이 꾀 많은 직업이다. 

그렇다고 한달에 2주 이상씩 비우는 정도는 아니지만, 

단 며칠이라도 엄마가 되고 나서부터는 출장이 왠지 모르게 부담스러워진 것은 사실이다. 

특히 이곳 싱가포르로 리로케이션 한 후에는 점점 출장이 많아질 예정이었던 상황이었다. 

아이는 한창 예쁠 때 나는 아무리 바빠도 아이와 더 많이 시간을 보내고 싶은 엄마였다. 

코로나 시대가 시작되면서 모든 해외출장이 불가능하게 되었다. 

반들반들 새것처럼 빳빳한 여권은 어색하기 그지 없다.

재택근무 중간 중간 아이와 산책을 하고 비누방울을 만들며 시간을 보냈다. 

나도 모르게 이런 생각이 들었다. 


하나님이 정말 우리 아이를 많이 사랑하시는구나. 심하게 바쁜 엄마를 출장 못가게 붙잡아두시고 찐하게 붙어 있는 시간을 이렇게 많이 만들어주시는구나. 


심지어 아주 어린 나이이기에 다른 엄마들이 괴로워하는 "홈스쿨링" 압박도 없었다. 유치원에 못가는 그 시간 동안, 하루 종일 책보고 그림 그리고 자전거 타고 노는 일을 함께 하기만 하면 됬다. 

지금만큼은 이 모든 일과 지금 이 타이밍이 너와 나를 위한 것만 같다고, 심하게 긍정적여진다. 그래도 코로나는 싫다는 점은 밝혀둔다. 


부담스러운 스피치, 비대면 미팅이라면..  


내가 하는 일은 회의를 이끌고 발표를 하는 일들이 매우 중요한 직업이다. 

이해 관계부서와 팀이 성과를 낼 수 있도록 많은 시니어 리더들을 대상으로 전략을 논의하고 방향성을 제시하는 일이다. 내가 여러번 다른 글에서도 밝혔듯이 나는 스피치가 너무 부담스러웠다. 

구체적 업무나 문제 해결을 위한 일이라면 

아젠다 및 결정해야 할 사항을 어느 정도 머리속에 크게 그려서 진행이 가능하겠지만, 

시니어 리더들과 개념적인 문제에 대한 디스커션 및 큰 미팅의 opening 을 해야 한다거나 할 때에는 

머릿 속이 하얗게 되고 했다. 

가끔 있는 일이면 열심히 준비하고 달달 위우면 될 일이지만, 

너무 많다보니 이제 외울 수도 없고, 모두 보는 앞에서 보고 잃자니 체면이 안살아서 괴로웠던 차였다.

이렇게 내 커리어는 여기서 정체되겠구나 싶었던 순간이었다. 


코로나 시대가 시작되며 해외 출장이 없어졌다. 

어머나, 모든 것이 버츄얼 미팅으로 진행되면서 나는 쾌재를 불렀다. 

대면 미팅이면 할 수 없는 수많은 비책들 (써놓고 슬쩍 슬쩍 보고 읽기? 카메라를 끄고 숨기? 등등 ㅋㅋ)을 요리조리 사용할 수 있었다. 내 앞에 대본이 있으면 자신감이 마구 올라간다. 

좀더 멋지게 낭독할 수 있게 된다. 부담감을 덜고 내 "보이는 능력"과 내 위치를 강화할 기회를 얻었다.

게다가 이런 식으로 낭독하는 것은 너무 큰 연습이 되기도 했고 말이다. 

하필이면 지금 내가 이 포지션에 있을 때, 내 부족함이 드러나기 전에 정말 필요한 이 순간, 

코로나가 찾아와주어 잠시나마 비대면 세상을 만들어주어 고맙다. 

내가 커리어를 확장하고 비상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연습할 시간을 주어서 고맙다. 


세상의 다양한 능력자들과 연결되다 


10년 이상 해외에 살아오면서 가능한 그 나라의 문화와 환경에 현지인처럼 살고자 해왔다.  

그래도, 한국의 우수한 교육 프로그램이나 능력자들과의 교류 등은 늘 아쉬운 점 중 하나였다. 

코로나 비대면 시대는 그 능력자들이 virtual space로 나오게 했고, 나같은 사람들에게도 기회가 생긴 것이다. 나는 스피치 코칭, 리더쉽 코칭 등 전문가들과 연결되는 통로가 생겼다. 


여기서 확실히 해두고 싶은 것은 나도 코로나 극혐이다. 

한국의 아픈 부모님에게 자주 가볼 수 없어 슬프고, 아이가 유치원에 못가는 날이 많아질 때도 힘들었다. 

그 수많은 부정적인 이야기들 속에서 

지금 이 시기에 나에게 생긴 긍정적인 효과들을 생각해봤을 뿐이다. 

코로나로 인해 수고하시는 의료관계자들, 경제적 어려움으로 고생하시는 분들, 

코로나에 걸리거나 격리생활로 지독히 고생하시는 분들, 가정 보육과 홈스쿨링으로 지쳐가는 가족들 등..


그래도 하필이면 코로나가 5년 전도 후도 아닌, 

지금 이 시기에 우리에게 와서 좋은 점들이 1-2가지는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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