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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과삶 Feb 26. 2019

사랑하는 아들아

도전의 기로에 선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

엄마는 네가 있어 참 감사해. 너를 가지고 출산이 다가오던 때, 엄마는 어떤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지 상상할 수 없어 두려웠단다. 세상의 모든 엄마가 존경스러울 정도로 출산 공포증이 있었어. 아이 엄마들을 찾아가 그 아픔이 어느 정도인지 물어보았지만, 다들 '설명하기 어려운 처음 경험하는 아픔'이라고 했으니 말이니까. 밤을 꼬박 새는 진통 끝에 엄마 배에서 나온 너와 처음으로 눈이 마주치는 순간, 엄만 방긋 미소를 지었단다. 어쩜 그렇게도 아빠와 엄마를 절묘하게 닮았는지 말이지. 네 얼굴을 보니 출산의 고통조차 사라지더구나.


엄마는 항상 감정 표현을 잘 못하는 부끄러움 많은 사람이었어. 걱정과 두려움이 많았지. 신기한 건 말이야. 공포라고 생각한 출산을 경험해보니 갑자기 모든 일에 자신감이 생겼어. 걱정보다 두려움이 덜 해서 무엇이든 잘할 수 있을 것 같았어. '아이도 낳았는데 뭘 못할까?' 그런 생각이 들었지. 덕분에 부끄러움과 소심함으로 막혀있던 영어 말문까지 트이게 되었어. 말할 때마다 다른 사람이 내 영어 실력을 비난할까 두려웠는데 그게 사라졌거든. 처음 만나는 외국인과 편하게 대화할 수 있는 엄마의 현재 영어실력은 다 너 덕분이단다. 엄마에게 자신감을 선물해 줘서 고마워.


어린 시절 넌 정말 귀엽고, 총명했지. 4살 때 백화점에 갔는데 눈에 보이는 모든 영어 알파벳을 다 읽어서 사람들이 놀라며 칭찬해줬잖아. 고집이 얼마나 세고 욕심이 많았는지 몰라. 초등학교 운동회에서 OX 퀴즈를 하다가 엄마가 틀렸는데, 그 자리에서 엄마를 얼마나 원망하고 생떼를 부렸는지 몰라. 넌 정말 땡깡의 대명사였단다. 마트에 가서 원하는 장난감을 사주지 않으면 바닥에 누워 울었지. 얼마나 창피하고 부끄럽던지.


엄마는 당시 어떻게 너의 고집을 바꿀지 고민이 많았어. 초등학교 1학년 담임 선생님은 일찌감치 너의 독특함을 파악했지. 성장한 후 맞게 될 사회적 잣대가 네 개성과 창의성을 해칠 수 있다고 걱정하셨어. 생각해보면 너는 다른 아이보다 자기주장이 강했고 원하는 것을 정확하게 표현한 거야. 너의 개성을 잘 발전시켜줬어야 하는데 엄마가 그러지 못한 것 같아. 다른 사람 눈치를 보며 너를 사회적 틀에 맞추려 했어.


중학교 1학년부터 고등학교 3학년까지 너와 사춘기를 함께 보내면서, 엄마는 힘들기도 했지만 배운 점도 많았어. 우린 그야말로 상극이었지. 엄마는 늘 계획하고, 정리하고, 한마디 한마디를 진지하게 생각하는 모범생이었고, 너는 늘 즉흥적이고, 물건을 제자리에 두는 일이 없고, 의미 없는 말을 유머러스하게 던지는 자유로운 영혼이었어. 너 같은 사람은 살면서 처음 봐서 받아들이는 게 무척이나 어렵더라.


다행히도 엄마가 일을 하며 너를 이해하게 되었어. 엄마 회사 사람들에게 다양한 성격 유형을 설명하면서 이런 말을 했거든.

“나와 다른 사람이 있지만 그 사람들이 틀린 게 아닙니다. 나와 다름을 인정하고 받아들이세요."

네 생각이 나더구나. 너는 인정받고 싶고, 다른 사람들 앞에서 말하기를 좋아하는 스타일(DISC 유형 중 I형)이었던 거야. 네가 던지는 의미 없는 말이 모두 인정받고 싶어서였다는 걸 그제야 이해한 거야. 엄만 많이 부끄러웠어. 그 이후부터 엄마는 너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칭찬하고, 가급적 너에게 맞추려고 노력했어. 우리가 싸워도 관계에 금이 가지 않도록 먼저 다가가 화해를 유도했지. 그런 노력으로 너의 사춘기는 좀 사그라들었어.


마음에 들지 않는 대학에 가서, 반수를 결심하고 자퇴한 후 수능에 재 도전했지. 결과가 좋지 않자 너는 삼수를 하겠다고 했어. 네가 평소 공부를 절실하게 하지 않았잖아. 차라리 군대를 다녀온 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건 어떻겠냐고 엄마가 말했을 때, 넌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였지.

"엄마 말도 일리가 있네."

네가 엄마에게 맞서지 않고 조언을 받아들여 줘서 고마웠어. 엄마를 인정해 준다는 느낌을 받았지. 


넌 군에 다녀와서 삼수를 하는 동안에도 늘 엄마와 상의했지. 엄마는 네가 던진 농담 같은 한 마디가 좋았어.

"엄마가 인생 선배니까 내가 조언을 구하는 거잖아." 

친구 같은 엄마가 되고 싶었는데 선배까지 되었네.


돌이켜보면 너에게 고마운 점이 많아.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동생과 사이좋게 지내서 고마워. 엄마가 동생을 편애해도 묵묵히 받아들여줘서 고마워. 초등학교부터 1학기만 다닌 대학, 군 생활까지 경기도, 서울, 강원도에 걸친 폭넓은 대인관계가 놀랍고 고마워. 한 번도 지각이나 결근하지 않고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성실하게 다녀서 고마워. 그곳에서 도둑까지 잡아 경찰에 신고한 너의 시민정신에 더욱 감사해. 


이미 성인인데 아직도 엄마가 계속 잔소리를 해서 미안해. 우린 서로를 구박하면서 살았고, 그게 우리만의 애정표현이란 걸 잘 알지. 지금처럼 건강하게, 밝게, 반듯하게 살았으면 좋겠어. 이제 넌 고단한 삼수를 끝내고 다시 도전의 기로에 섰구나. 네 말처럼 장학금도 타고, 조기 졸업해서, 원하는 직장에 취업했으면 좋겠다. 엄마에게 자신감을 준 것처럼 네 인생도 자신감으로 활짝 펼쳐지길 바랄게. 엄마는 네가 늘 자랑스럽고 사랑스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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