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주간 성찰

내 편이 되어주기로 했다

책임감이나 의무감 때문에 무언가를 하지 마세요

by 일과삶

오랫동안 저 자신을 믿지 못했습니다. 겉으로는 늘 밝고 성실한 사람이었지만, 혼자 있을 때의 저는 전혀 달랐습니다. 집에서는 게으르고 정리정돈도 잘하지 못했고, 아무것도 하기 싫어지는 날이 잦았습니다. 그런 제 모습을 마주할 때마다 ‘나는 겉과 속이 다른 사람인가?’, ‘혹시 이중적인 사람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남에게는 늘 친절하고 괜찮아 보이려 애쓰면서, 정작 나 자신은 부족하고 허술한 사람처럼 느껴졌습니다. 그 간극 때문에 제 안에는 늘 불편한 이중성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겉으로는 안정적인데 속은 늘 흔들리고, 웃고 있지만 마음은 불안했습니다. ‘진짜 나는 누구일까?’라는 질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대학교 시절, 용기를 내어 학교 안 심리상담센터를 찾았습니다. 상담과 심리검사를 받으면 마치 X레이처럼 제 마음이 투명하게 드러날 거라 믿었습니다. 정상인지 아닌지, 왜 이렇게 마음이 흔들리는지 누군가 객관적으로 진단해주기를 바랐습니다. 그러나 상담 선생님은 제 이야기를 조용히 듣고 나서 “다들 그렇게 산다”라고 말했습니다. 검사 결과 역시 제가 직접 체크한 설문지라 신뢰가 가지 않았습니다. 당시의 저는 ‘이건 기계로 뇌를 스캔해야 알 수 있는 문제야’라고 단정하며 상담의 의미를 부정했습니다. 그렇게 그 상담은 제 인생의 첫 상담이자 마지막 상담이 될 뻔했습니다.


그로부터 많은 시간이 흘렀습니다. 인생의 희로애락을 겪고, 사람들 사이에서 상처받고 다시 일어서기를 반복하며 저는 조금씩 단단해졌습니다. 30여 년의 직장 생활을 통해 사람에 대한 이해도 깊어졌고, 책을 읽고 글을 쓰며 스스로를 성찰해 왔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제는 내 얼굴에 책임질 나이가 되었지’라고 여길 즈음, 뜻밖의 문자를 하나 받았습니다. 코칭 공부를 위해 등록한 기관에서, 심리상담 수련 중인 석사생에게 무료로 5회 개인 상담을 받을 수 있다는 안내였습니다.


잠시 대학 시절의 기억이 스쳤지만, 이번에는 마음이 달랐습니다. 인생의 풍파를 한 번쯤 견뎌낸 지금의 나라면, 상담을 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저는 두 번째 상담을 시작했습니다.


상담 선생님은 첫 시간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상담자는 문제를 해결해주는 사람이 아니라, 스스로 극복할 수 있도록 돕는 조력자입니다.” 그 말이 처음엔 낯설었지만 곧 고개가 끄덕여졌습니다. 코칭을 공부하며 ‘답은 내 안에 있다’는 말을 익숙하게 들어왔기에, 상담 역시 나를 이해하고 성장시키는 과정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상담은 5회로 시작했지만, 상담실 대여비 만 원을 내면 5회를 더 연장할 수 있다는 말에 기쁜 마음으로 10회까지 이어갔습니다. 그 과정에서 제 안에 눌려 있던 감정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선천적으로 긍정적인 사람입니다. 어려운 일이 생기면 ‘그래도 이만하길 다행이야’라고 넘겼고, 불편한 감정을 타인에게 거의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자기계발서를 읽으며 스스로를 단련했고, 덕분에 웬만한 일에는 잘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대장 용종 제거 수술을 받으며 깨달았습니다. 제 ‘무조건 긍정’이 사실은 감정을 억누르는 방식이었다는 것을요. 슬픔이 올라오는데도 ‘괜찮아, 큰 일 아니잖아’라며 덮어버리는 습관이 몸에 깊이 배어 있었습니다. 그때 알게 되었습니다. 감정은 이겨내는 대상이 아니라, 알아차리고 흘려보내야 하는 것임을.


상담을 거듭하며 저를 조금 더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불편한 상황이 생기면 대체로 피하는 쪽을 선택했습니다. 문제의 근원을 들여다보기보다는, 감정이 상하는 것을 최소화하려 했습니다. 동시에 상대가 불편해질까 봐 늘 신경을 썼습니다. 그 이면에는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좋은 사람으로 남고 싶다는 마음, 최소한의 예의와 배려를 기대하는 마음이 저를 끊임없이 긴장하게 만들었습니다. 결국 인간관계에서 겪었던 대부분의 어려움은 ‘기대’에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기대를 내려놓자, 문제의 절반은 자연스럽게 사라졌습니다. 그렇게 첫 번째 개인 상담을 마무리했습니다.


그 이후에도 마음공부에 대한 관심은 이어졌습니다. 그러다 강남구 1인가구 커뮤니티센터에서 진행하는 집단상담 프로그램 ‘생애전환기, 내면의 불꽃을 되살리기’ 공지를 보게 되었습니다. 솔직히 처음에는 참여할 생각이 없었습니다. 이미 생애전환기를 지난 것 같았고, 제 내면의 불꽃도 충분히 살아 있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다른 프로그램에서 만난 한 분이 이 프로그램을 적극 추천했습니다. 비폭력대화(NVC) 프로그램을 진행했던 선생님이라며 “정말 도움이 될 거예요.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는 것도 좋아요”라고 말했습니다. 그 한마디에 마음이 움직였습니다.


오래전부터 비폭력대화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처음에는 ‘폭력’이라는 단어에 거부감이 들어 거리를 두었지만, 2019년 『비폭력대화』를 읽으며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2021년 실제 강의를 들으며 그동안의 오해를 바로잡았고, 회사 교육에도 적용했습니다. 하지만 아는 것과 실천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였습니다. 그래서 이번 집단상담은 ‘실천의 장’이 될 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10주간의 여정을 시작했습니다.


1~2회기는 서로를 알아가는 시간이라 다소 조심스러웠지만, 3회기부터 분위기가 달라졌습니다. 비가 오던 날이라 참여 인원이 적었고, 그 덕분에 대화는 더 깊어졌습니다. 그날 선생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자신의 느낌과 욕구를 먼저 살피지 않으면 결국 에너지를 낭비하게 됩니다.” 그 말이 제 마음에 깊이 박혔습니다. 저는 늘 타인의 감정에 맞춰 움직였고, 내 욕구보다 상대의 욕구를 우선시하며 살아왔습니다. 그 결과 저는 늘 인정받고 싶었고, 칭찬이 없으면 허전했습니다. 그날 이후로 저는 스스로에게 묻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지금 무엇을 원하는가?’


“책임감이나 의무감 때문에 무언가를 하지 마세요.” 선생님의 이 말은 제 삶의 기준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저는 오랫동안 ‘해야 한다’는 말에 이끌려 살아왔습니다. 회사에서도, 가정에서도, 심지어 나 자신에게도 스스로를 몰아붙였습니다. 그 이후로는 선택의 순간마다 묻습니다. ‘이건 정말 내가 하고 싶은 일인가?’, ‘내 욕구와 가치에 맞는 선택인가?’ 그렇게 조금씩 저를 더 존중하게 되었고, 마음에도 여유가 생겼습니다.


7회기에는 아버지의 장례식이 겹쳤습니다. 아침에 아버지를 화장터에서 떠나보내고 모든 절차를 마친 뒤, 부산에서 기차를 타고 올라오는 길에 마음이 텅 빈 느낌이 들었습니다. 서울역을 지나 강남역 도착 안내 방송을 듣는 순간 이런 생각이 스쳤습니다. ‘지금 이 마음을 혼자 견디기보다, 누군가와 나누는 편이 낫겠다.’ 그렇게 캐리어를 끌고 곧장 커뮤니티센터로 향했습니다. 수업 시간보다 훨씬 일찍 도착했지만 괜찮았습니다. 누군가 곁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위로가 되었으니까요.


제 사정을 들은 참여자들은 놀라면서도 진심 어린 위로를 건넸습니다. 그날 깊은 슬픔 속에서도 평온하게 애도할 수 있었습니다. 함께 있다는 감각이, 말없이 건네진 눈빛이 큰 힘이 되었습니다.


10주 동안 저는 단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수업에 참여했습니다. 매주 조금씩 저 자신에게 가까워졌고, 타인을 바라보는 마음도 한결 부드러워졌습니다. 무엇보다 비폭력대화를 ‘이해하는 단계’를 넘어 ‘삶으로 실천하게 되었다’는 점이 가장 큰 변화였습니다. 끝까지 함께한 여섯 명의 참여자와는 서로의 취약함을 숨기지 않고 나누며 진심으로 연결되었습니다.


마지막 회기에는 ‘종결, 중간지대, 새로운 시작’이라는 주제로 각자의 마음을 글과 그림으로 표현했습니다.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며 스스로도 놀랄 만큼 많은 변화가 있었음을 느꼈습니다. 선생님은 달콤쌉싸름한 생초콜릿을 건네며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인생도 그렇죠. 달콤하지만 씁쓸할 때도 있으니까요.” 그 말에 모두가 웃었습니다. 그 웃음 속에는 깊은 공감이 담겨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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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저는 다시 제 안의 불꽃을 믿습니다. 타인의 시선보다 나 자신의 가치에 집중하며, 의무감이 아닌 진심에서 출발하는 선택을 하려 합니다. 어려운 상황이 와도 제 마음의 욕구와 가치를 들여다보며 스스로에게 묻습니다. ‘지금 이 감정은 무엇을 말하려는 걸까?’ 비바람이 몰아쳐도 마음이 쉽게 무너지지 않는 이유는, 이제는 든든한 제 편이 있기 때문입니다.


10주간의 경험은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강남구 1인가구 커뮤니티센터가 아니었다면 여전히 타인의 욕구를 먼저 살폈을지도 모릅니다. 이 프로그램으로 진짜 ‘나’와 마주했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는 법을 배웠습니다. 더 이상 완벽하려 애쓰지 않습니다. 제 안의 불꽃이 꺼지지 않도록, 오늘도 그 온기를 조심스럽게 지켜갑니다. 귀한 배움의 자리를 마련해준 강남구 1인가구 커뮤니티센터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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