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인 조르바》를 읽고
우리는 함께 춤을 추었다. 조르바는 내게 춤을 가르쳐 주고 엄숙하고 끈기 있게, 그리고 부드럽게 틀린 부분을 고쳐 주었다. 나는 차츰 대담해졌다. 내 가슴은 새처럼 날아오르는 기분이었다.
나는 새벽에 일어나 빠른 걸음으로 해변을 따라 마을로 향했다. 내 심장은 가슴속에서 뛰고 있었다. 내 생애 그 같은 기쁨은 누려 본 적이 없었다. 예사 기쁨이 아닌, 숭고하면서 이상야릇한, 설명할 수 있는 모든 것과 극을 이루는 그런 것이었다. 나는 모든 것을 잃었다. 돈, 사람, 고가선, 수레를 모두 잃었다. 우리는 조그만 항구를 만들었지만 수출할 물건이 없었다. 깡그리 날아가 버린 것이었다.
그렇다. 내가 뜻밖의 해방감을 맛본 것은 정확하게 모든 것이 끝난 순간이었다. 엄청나게 복잡한 필연의 미궁에 들어 있다가 자유가 구석에서 놀고 있는 걸 발견한 것이었다. 나는 자유의 여신과 함께 놀았다.
외부적으로는 참패했으면서도 속으로는 정복자가 되었다고 생각하는 순간 우리 인간은 더할 나위 없는 긍지와 환희를 느끼는 법이다. 외부적인 파멸은 지고의 행복으로 바뀌는 것이었다.
나는 언젠가 조르바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어느 날 밤, 눈으로 덮인 마케도니아 산에는 굉장한 강풍이 일었지요. 내가 자고 있는 오두막을 뒤흔들며 뒤집어엎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나는 진작 이걸 비끄러매고 필요한 곳은 보강해 두었지요. 나는 불 가에 홀로 앉아 웃으면서 바람의 약을 올렸어요.
<이것 보게, 아무리 그래 봐야 우리 오두막에는 들어올 수 없어. 내가 문을 열어 주지 않을 거니까. 내 불을 끌 수도 없겠어. 내 오두막을 엎어? 그렇게는 안되네>"
《그리스인 조르바》중에서
화자인 두목은 책벌레와는 거리가 먼 현실의 삶을 사는 사람과 함께 본질에 다가가는 삶을 누리기로 마음먹는다. 우연히 만난 조르바와 떠나 생활하며 기존에 그가 가지고 있던 사고가 점점 바뀌었다. 그는 '자유'라는 것을 다시 생각한다. 오랜 시간 노력을 들인 공사가 실패로 돌아가고 그야말로 두목은 돈, 사람, 고가선, 수레를 모두 잃었다. 그제야 궁극의 자유를 느꼈다.
우리는 놓치면 안 될 것 같은 매 순간을 불안감에 떨며 전전긍긍하며 산다. 그러면서도 내면에서는 자유를 꿈꾼다. 나에게 자유란 무엇인가? 가진 것을 다 내려놓고 모든 것을 잃으면 자유를 느낄 수 있을까? 나는 항상 자신을 틀에 가두어 살아왔고 그게 편하다고 느낀다. 규칙적인 생활, 규칙적인 출퇴근, 일관성 있는 태도를 추구하고 물건조차도 비뚤어져 있으면 마음이 불편하다. 그래서 내 사업을 언제가 하고 싶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으며 직장이라는 인프라 안에서 최대한 혜택을 누리길 원한다.
가끔 자유로운 사람이 부럽다. 자유 그 자체로 완성된 조르바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야구 경기장에서 목놓아 응원하는 청춘들을 볼 때면 그들의 열정과 마음껏 소리 지르는 자유가 부럽다. 나는 기껏해야 출장 가면서 엄마 역할을 내려놓는 일탈을 자유로 여기고 만족한다. 그게 내가 누리는 최대의 자유다.
두목이 자유를 느낀 것은 모든 것을 잃고 해방감을 맛봄과 동시에 속으로는 스스로 정복자가 되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조르바가 말한 것처럼 아무리 바람이 오두막을 덮치려 해도 문을 열어주지 않으면 바람은 들어오지 못한다. 아무리 주변 환경이 두목에게 불리하고 좌절시킨다고 해도 두목은 내면의 자유를 얻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내면의 자유는 빅터 프랭클이 말하는 인간의 자유의지와 닿아있다. 평소에 모든 것을 다 가지고 있을 때 알 수 없는 내면의 자유를 모든 것을 다 잃었을 때 알게 된다니 아이러니다.
인간에게 모든 것을 빼앗아갈 수 있어도, 마지막 남은 인간의 자유, 주어진 환경에서 자신의 태도를 결정하고, 자기 자신의 길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만은 빼앗아갈 수 없다.
- 《죽음의 수용소에서 》중에서
조르바가 가진 여성을 바라보는 시선은 불편했지만, 거침없는 솔직함, 자신감, 자유의 갈망, 일에 대한 열정 측면에서는 그의 매력에 빠졌다. 조르바가 나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
"아니, 당신이 읽은 그 많은 책 말인데... 그게 뭐 좋다고 읽고 있소? 왜 읽고 있는 거요? 그런 질문에 대한 해답이 없다면 대체 뭐가 쓰여 있는 거요?"
나는 왜 책을 읽는가? 책을 읽고도 인생 문제에 답하지 못한다면 그게 무슨 소용인가? 나 역시 모든 것을 내려놓고 인생을 부딪치며 확실한 접촉을 가져야 할까?
"정답을 찾으려고 책을 읽는 것은 아닙니다. 당신처럼 현실에서 부딪히며 배우는 게 어쩌면 맞을지도 몰라요. 비겁할진 몰라도, 난 책으로도 배우고 현실에서도 조금씩 배우려고 해요. 내가 쓰려는 책 또한 비현실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내가 직접 경험하고 부닥친 내용으로 채우려 합니다. 제 발은 땅에 닿아 있고, 머리는 이상을 꿈꾸는 거겠죠? 그나저나 나도 당신처럼 춤으로 제 생각을 표현할 수 있다면 좋겠어요. 저도 바보짓이 부족한가 봐요."
추천도서: 《그리스인 조르바》 니코스 카잔차키스 저/이윤기 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