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나는 무엇을 좋아하는 사람일까?
학창 시절에 나는 꿈이 없었다. 그냥 모든 공부가 좋았다. 어떤 과목이나 내가 노력한 만큼 결과가 나왔기에 특별히 좋거나 싫지 않았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잠시 미래가 걱정되어 선생님께 진로를 문의하였으나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였다.
"니가 공부만 잘하면 어디든 갈 수 있고, 무엇이든 할 수 있으니 지금은 신경 쓰지 말고 공부나 열심히 해라."
지금 생각하면 아주 잘못된 답변이다. 나에게 조금이라도 "뭐가 더 좋은지? 무엇을 할 때 행복한지?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꿈은 무엇인지? 다양한 경험과 고민을 하라."라고 말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나는 선생님의 조언대로 더 열심히 공부했고, 대학 전공을 선택하는 고3 때는 어디든 선택할 수 있는 성적을 가졌다. 하지만 그 '어디든'이 무엇인지 몰랐다.
부모님과 선생님 말씀을 잘 듣는 착한 학생이었던 나는 그들의 조언대로 약학과를 지원하였다. 여자가 평생 전문직으로 편하게 먹고살기 좋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현실은 나를 그냥 두지 않았다. 평소보다 대학시험을 잘 치르지 못했다. 불행 중 다행히도 2 지망인 미생물학과에 합격하였다. (지금은 수능을 보지만 당시는 학력고사였고 1 지망, 2 지망, 3 지망까지 동일 대학에 다른 과로 지원할 수 있었다.) 재수를 할까 잠시 고민도 했으나, 원래 약학과도 원했던 전공이 아니어서 미생물학과를 운명으로 받아들였다.
나는 미생물학이 무엇인지도 잘 몰랐고 관심도 없었다. 나보다 성적이 낮았던 친구들과 같은 과에 다닌다는 사실에 자존심이 상했고 친구들을 무시하기까지 했다. 무엇보다 승승장구했던 인생의 첫 실패여서 스스로에 대한 자괴감이 컸다. 이런 나를 정신 차리게 한 친구가 있었다. K는 고등학교부터 미생물학이 좋아서 거의 수석으로 들어온 친구인데, 정말 전공을 사랑했고 즐겁게 학습했다. 어떻게든 그 친구를 이겨보려고 열심히 공부했지만 번번이 그 친구가 과수석을 차지했다. '정말로 무언가를 좋아서 하는 사람은 열심히 해도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을 절실히 깨달았다.
그 친구 덕분에 전공 공부를 열심히 했고 학점도 좋았지만, 마음속엔 늘 열등감이 있었다. '과연 나는 무엇을 좋아하는 사람일까?'라는 질문에 답하기 어려웠다. K는 비전을 가지고 확고히 대학원을 가려했고, 나는 별생각 없이 그녀를 따라 대학원 준비를 했다. 그러다 내 성향이 이과가 아니라 문과라는 것을 어렴풋이 알았다. 당시 영어도 재미있어서 영문학을 전공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막연히 했다. 복수전공으로 영문학을 선택하고 싶다고 생각했으나 이미 늦었다. 복수전공을 하려면 늦어도 3학년부터 시작해야 했다. 그런데 나는 4학년 1학기 때 마음을 정하고 4학년 2학기부터 하려 했다.
교학처에서 안된다고 했으나 상담과 설득 끝에 허락을 받아 영문학과 복수전공을 시작했다. 4학년 2학기 때 영문학과에서 2학년 학생과 함께 12학점을 들었다. 수업을 들으면서 얼마나 재미있었는지 모른다. 영문학사, 현대 영미희곡 등을 들으면서 좋아서 하는 공부에 흥미를 느꼈다. 아서 밀러의 <세일즈맨의 죽음>을 수업시간에 배우면서 삶의 비극을 생각했고 작가를 꿈꾸기도 했다. 또래보다 많은 나이에 어린 친구들과 지내는 것도 처음엔 어려웠지만 점점 익숙해졌다.
그러다 문득 졸업반 친구들이 취업하는 걸 보고 부럽고 질투가 났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딱 두 군데 원서를 냈다. 불합격하면 계속 복수전공 공부를 하면 되고, 합격하면 취업하겠다고 생각했다. 운 좋게 한 곳에 합격하여 미련 없이 복수전공을 버렸다. (당시는 지금만큼 취업이 어렵지 않았다. 아주 쉽지는 않았지만 지금 상황까지는 아니었다.) 교학처의 반대를 무릅쓰고 진행한 복수전공이었는데 학교에 미안했지만 내 인생이 더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그렇게 나는 기술직 인생을 시작했다.
돌이켜보면 내 인생을 누군가가 정해주거나 혹은 깊은 생각 없이 즉흥적으로 선택했다. 그렇게 선택한 것은 흥미도 생기지 않았고 오래가지도 않았다. 신중하게 선택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졸업 후 13년이 지나서야 나 자신을 다시 돌아보고 자세히 살펴보았다. 고등학교 2학년 때 했던 질문을 다시 던졌다.
'과연 나는 무엇을 좋아하는 사람일까?'
그때 얻지 못했던 답을 19년이 지나서야 조금 알 수 있었다. 그렇게 시작한 고민으로 지금은 제자리를 찾았다. 물론 제자리를 찾기까지 했던 방황과 경험이 모두 쓸모없지는 않았다. 그런 방황과 고민이 있었기에 더 잘 찾게 되었다. 때로는 어린 학생들에게 본인이 좋아하는 일을 정하라고 말하는 것이 가혹하다고 느껴진다. 물론 정보는 예전보다 많고 다양한 진로체험 프로그램으로 간접 경험도 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로 결정은 여전히 어렵다. 나이 50, 60이 되어도 아니 죽을 때까지 못 찾는 사람도 많다. 그에 비하면 나는 운이 좋은 사람이다.
이 결과가 말해주는 것은 분명하다. 자기 분야에서 뛰어난 업적을 남기는 사람들은 각각 해당 분야와 관련되는 지능과 함께 모두 자기이해지능이 높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서, 논리-수리지능만 높다고 해서 뛰어난 과학자가 되는 것은 아니며 음악지능만 높다고 해서 뛰어난 음악가로 성공하게 되는 것도 아니다. 운동지능만 높아서는 뛰어난 운동선수로 성공하기 어렵다는 것을 의미한다, 어느 한 가지 이상의 지능과 함께 반드시 자기이해지능이 높아야만 뛰어난 업적을 이룰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회복탄력성》중에서 (김주환 저)
나는 자기이해지능이 높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나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면서, 현재는 다중지능 중 자기이해지능이 가장 높다. 누구보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잘 알고, 어떤 강점이 있는지, 어떤 약점이 있는지, 나의 가치관은 무엇인지, 나의 존재 이유를 잘 안다. 물론 아직까지도 내가 몰랐던 나를 발견하고 놀랄 때도 있다.
자기이해는 평생의 여정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생각만으로 자신을 알기란 어렵다. 당장 무엇이라도 하면서, 싫은 게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점점 싫은 것을 없애 나가다 보면 좋은 것을 알게 된다. 다양한 경험을 하면서, 다른 사람의 조언도 듣고, 또 그만큼 스스로 성찰하면서 조금씩 찾아나가야 한다. 때로는 답답하고 막막하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계속 찾아가는 노력을 하면서 시행착오를 거친다면 언젠가는 찾을 수 있다.
스스로에게 물어보라.
'과연 나는 무엇을 좋아하는 사람일까?'
이 질문에 답하는 사람은 적어도 행복한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