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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과삶 Feb 19. 2019

사람은 변할까?

바꾸어야 할 것과 간직해야 할 것

우리는 변할 수 있을까?칼럼에서는 사람은 변하는 부분도 있고 그렇지 않은 부분도 있다고 말한다. 변하려면 문제 인식, 체계적인 계획, 꾸준하게 인내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구체적인 방안까지 제시한다. 특히나 변해야 할 부분만 바꾸고 초심은 지켜야 한다고 조언한다. 무엇을 바꾸고 간직해야 하는지 먼저 생각하는 게 중요하다.


사람은 과연 변할까? 항상 논란이 야기되는 질문이다. '사람은 변한다 변하지 않는다'라는 논란의 중심은 항상 타인이다.

사람은 바뀌지 않더라. 본성은 변하지 않는다. 

이런 대답을 한다. 그렇다면 본인은 어떤지 묻고 싶다. 본인은 변했는가? 변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나는 과연 변했는가? 자문하면 '그렇다. 많이 변했다'라고 답하겠다.



소심한 성격에서 활달한 성격으로 변했다.


고등학교 입학식이었다. 나는 수줍음 많고 내성적인 소녀였다. 입학식에서 앞에 서있던 친구가 뒤로 다가와서 내 자리가 답답했다. 차마 앞 친구에게 앞으로 당겨 서 달라는 말을 못 했다. 그 정도로 소심하고 부끄럼이 많았다.


지금은 어떤가? 친하지 않은 외국인 동료조차도 반갑게 다가가 인사하고 허그 한다. 얼마 전 팀 동료가 나 같은 사람에게도 말하기 불편한 사람이 있나고 물었다. 세상에 불편한 사람은 반드시 있다. 그만큼 활달한 성격으로 변했다는 의미다. 이제는 새로운 사람을 만나도 먼저 말을 거는 게 불편하지 않다.


무엇이 나를 바꾸었을까? 사회생활이 나를 활달하게 바꾸지 않았을까? 직장생활을 하면서 나는 사회적인 인간이 되었다. 어쩌면 이게 나의 본성인데 어린 시절에는 발현되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사회와 세월의 힘이라 믿는다.



사실을 중요하게 따지던 사람이 유연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으로 변했다.


젊은 시절 나는 인정하기보다는 옳고 그름을 따지는 사람이었다. 엔지니어여서 그랬는지 누군가가 그릇된 정보를 가지고 있으면 매뉴얼에서 찾아 잘못된 부분을 지적했다. 동료들과의 논쟁이 끊이지 않았다. 집요하게 증거를 찾아서 내가 정확하게 안다고 자랑했다. 물론 내가 착각했었다는 증거만 밝혀지면 쿨하게 인정했다.


지금은 어떤가? 아직도 논리적인 근거 찾기를 좋아한다. 하지만 타인에게 요구하거나 따지지는 않는다. 혼자 올바른 정보를 취득하고 가급적 공유하려고 노력한다. 다른 사람의 실수나 그름을 유연하게 받아들인다. 나 자신의 잣대는 예전처럼 엄격하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유연한 잣대를 사용한다.


왜 나는 변했는가? 역시 사회화다. 사람들은 지적받기 싫어하는 걸 알았다. 굳이 원하지 않는데 나설 필요가 없다는 걸 알았다. 또한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기보다는 스스로 인정하는 게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다른 사람도 실수를 할 수 있고 굳이 지적하지 않겠다는 마음가짐을 갖게 되었다. 실제로 다른 사람과 관계 유지에 좋은 방법이기도 하다.




변화를 거부하는 사람에서 즐기는 사람으로 변했다.


나는 일관성을 좋아한다. 그래서 늘 같은 메뉴, 같은 자리를 선호하고 질리지도 않는다. 한번 시작한 일은 진득하게 한다. 큰 변화가 없는 한 만나는 사람도 계속 만난다. 그렇게 변화를 즐기지 않는 사람이다.


8년 전 아파트를 알아보던 때가 있었다. 살 집을 구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더군다나 집을 보러 오라는 전화가 올 때마다 귀찮고 피곤했다. 빨리 결정하면 좋은데 계속 집을 보러 다니는 어중간한 상황이 스트레스였다. 순간 마음가짐을 바꾸어 보았다. '집 보러 오라고 할 때마다 즐기는 건 어떨까? 새 집을 구경하러 간다는 설레는 마음을 가져보면 어떨까? 스트레스받기보다는 즐겨보자.’


마음을 고쳐먹으니 집 보러 다니는 게 즐거웠고 원하는 아파트를 빨리 구할 수 있었다. 변화를 받아들이는 것도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그 이후로는 변화를 받아들였고 이제는 변화를 즐기는 사람이 되었다. 변화라는 파도타기를 배운 셈이다.



그럼 나는 무엇을 지켜야 할까?


내가 나를 바라보는 모습과 다른 사람이 나를 바라보는 모습을 지키고 싶다. 나는 조하리의 창 가운데 '나도 알고 타인도 아는' 영역이 큰 편이다. 그런 투명한 모습이 나를 상징한다고 믿는다. 늘 그랬듯이 일관성 있고 예측 가능한 사람이고 싶다.


주변의 지인을 잘 지키고 싶다. 나는 혼자서도 에너지를 충전하지만 사람과 함께 있을 때도 에너지를 얻는다. 늘 다른 사람으로부터 배운다. 회사에서는 뛰어난 동료로부터 아이디어와 창의성을 배운다. 함께 공부하는 친구에게서는 내 분야의 전문성도 배우고 따뜻한 마음과 배려를 배운다. 함께 글 쓰는 친구에게서는 독서, 글쓰기, 책쓰기 뿐 아니라 우정과 의리를 배운다. 이렇게 소중한 자산을 잘 지켜나가고 싶다. 나의 마음가짐을 잘 지켜야 관계가 유지될 것이다.


칼럼에서도 언급했듯이 라인홀트 니버의 ‘평안의 기도(serenity prayer)’에는 이런 문장이 있다.

우리가 변화시킬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이는 평온함을,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을 변화시키는 용기를, 그리고 이 두 가지를 구별할 수 있는 지혜를 주소서.

변화시킬 수 없는 것과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을 구분하는 지혜가 중요하다. 상대가 스스로 변하지 않는 한 변화시키기란 쉽지 않다. 남을 변화시키려 하기보다 나 스스로 변할 게 없는지 돌아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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