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와 전문성 두 마리의 토끼 잡기
글로벌 혹은 아태지역 외국인과 일하면서 늘 느끼는 거지만, 한국인은 똑똑하고, 성실하고, 일도 잘합니다. 체계적인 이론을 세우거나 절차를 만드는데 부족한 면이 있지만, 그 외의 모든 면에서는 우수하다고 자부합니다. 문제는 커뮤니케이션이죠. 아무리 좋은 것도 제대로 설명할 수 없다면 상대가 알 수 없으니까요. 한국어가 국제 공용어가 된다면 우리나라가 글로벌 넘버 원이 될 텐데 말이죠. 가끔 외국인과 컨퍼런스 콜을 할 때 답답함이 치밀어 오릅니다.
‘이걸 회의라고 하고 있나? 내가 하면 30분도 안 걸릴 일인데. 이걸 같이 머리를 맞대고 브레인스토밍하다니.’
‘이렇게 하면 될 일을 왜 얘네들은 생각을 못 할까?’
이런 생각이 들다가도 가만히 있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나서면 설명해야 하고, 설명하려면 영어로 말해야 하는데, 영어가 짧으니 제대로 전달할 가능성이 작고, 가만히 있으면 중간은 가니까요. 외국인은 한국인이 적극적이지 않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다 알지만 혹은 더 많은 아이디어가 있지만, 참는 걸 모르죠.
국내에서 외국계 기업에서 일하다 보면 정책이나 기획은 본사나 아태지역 본사에서 정하고 한국에서는 실행만 전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한국에서 말해봤자 먹히지도 않고, 본사 지침이니 아태지역 지침이니 따르라고 거절당하기도 하고, 영어로 설득하기가 쉽지는 않으니까요. 특히 저 같은 직원도 잘 못 하지만, 지사장 역시 한국 직원을 위해 예외적인 사항을 요청하고 설득해서 얻어 내거나, 한국이 아태지역을 리딩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지사장이 미국계 한국인이라면 몰라도요. 물론 제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이런 고정관념을 깨는 일이 이번 주에 있었습니다. 제 매니저는 늘 저에게 아태지역에 따르지 말고 이끌라고 강조합니다.
“You should have a strong voice. We will continue to lead, not follow.”
(강하게 말해야 해. 우리는 계속 끌어야지, 따라가면 안 돼.)
Lead not follow가 심장에 와서 박혔습니다. 불가능하다 생각했던 일이 꿈처럼 일어났습니다. 물론 부끄럽게도 아주 적극적인 Lead는 아닙니다. 아태지역 모델이 있지만 마음에 들지 않아서 나름대로 모델을 만들어서 한국에서 자체적으로 진행하던 내용을 아태지역 미팅에서 공유했습니다. 이 모델은 비용을 줄이면서도 효과적으로 실행할 수 있는 아이디어였죠. 한국사람이 특히 잘하는 방식입니다. 그랬더니 아태지역 매니저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시아의 베스트 프랙티스다. 한국 모델대로 하면 회사가 큰 혜택을 누리게 된다. 아태지역은 이 모델을 따르는 것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
다만 제가 미리 적극적으로 공유하지 않은 점을 섭섭하게 생각했습니다. 전 한국만 보고 좁게 일한 거죠. Lead not follow이긴 했지만, Lead Korea not follow였지, Lead APAC not follow가 아니었습니다. 아태지역 미팅에서 영어가 가장 약한 사람은 저였지만 내용적인 측면에서는 약하지 않았습니다. 항상 영어가 제 발목을 잡지만 이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영어학습에 투자하는 시간을 일에 더 투자해서 언어장벽을 극복해야 하지 않을까?'
학교에서도 영어학습에 투자하는 시간도 중요하지만, 그 시간에 전공에 더 집중해서 연구하면 성과를 내지 않을까요? 그야말로 영어는 우리의 핸디캡입니다. 우리가 두 가지 분야에서 잘하려고 노력하는 동안 외국인은 한 분야만 집중하면 되니까요. 억울하지만 어쩔 수 없네요. 영어와 전문성 두 마리의 토끼를 잡기 위해 분투하는 우리 한국인 화이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