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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과삶 Jun 11. 2019

김정선 작가: 글, 쓰기와 다듬기 특강 후기

작가라면 큰 그림을 그려라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를 읽으면서도, 작가님 섭외와 안내를 위해 메일을 주고받으면서도, 작가님을 다소곳한 여성의 모습으로 상상했다. 남성이 오셔서 본인이 김정선 작가라고 말하는데 멘붕이 왔다. 마치 책 속의 주인공이 함인주 작가가 남성인 줄 알았는데 여성이 나와서 깜짝 놀란 순간과 같지 않을까? 물론 그 여성은 작가의 아내였지만.


글쓰기 참고서 같은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는 문장 다듬는 방법을 자세하게 설명하기에 김정선 작가님의 특강이 어떨지 궁금했다. 작가님은 화이트보드만 사용해서 2시간 내내 기대 이상의 열정적인 강의를 전달했다. 때로는 디지털보다 아날로그가 통한다. 강의도 그렇지 않을까? 작가님은 20명도 넘는 사람에게 정보와 성찰 그리고 웃음까지 안겨주었다. 특강에서 작가님이 전달한 핵심적인 주장 네 가지는 다음과 같다.


첫째, 지금은 글을 써야 하는 시대다.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잘하고 싶어서 고민하는 경우는 잘하면 이득을 보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글을 잘 써서 얻는 이득이 그다지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글을 쓰면 이득을 보는 시대다. 이 현상이 언제까지 지속될지는 알 수 없다. 미래에 "인간이 직접 쓴 글"이라는 띠지를 두른 책이 나올지도 모를 정도도 AI 글쓰기는 발전하고 있다. 그러므로 지금 써야 한다. 


둘째, 우리는 글쓰기를 배운 적이 없으니 어려운 게 당연하다.


모국어라는 개념은 환상이다. 어린 아기부터 말하기를 고통 속에 배웠지만 글쓰기는 제대로 배운 적이 없다. 어려운 게 당연하니 자책할 필요가 없다. 말하기와 글쓰기는 자연스러운 행위가 아니다. 인간 만이 하는 인위적이고 작위적인 질서를 부여하는 행위이므로 기술을 익히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수영을 배우지 않고 물에 뛰어드는 것과 같다. 


글쓰기가 어려운 이유는 나만의 감정을 모두에게 통용되게 써야 하기 때문이다. 글은 누구에게도 할 수 없는 말을,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을 글을, 모두에게 하는 이야기다. 결국 번역이다. 글은 자아의 표현인데 개성 없는 글이 많다. 글쓰기 스킬로만 봤을 때는 AI보다 못 쓸 수도 있다. 자신만의 글을 쓸 것인가 아니면 스킬이 뛰어난 글을 쓸 것인가는 여러분의 선택에 달렸다.


셋째, 말과 글은 표현에 차이가 있다.


글은 영상처럼 한 번에 상황을 묘사할 수 없다. 공간을 차지하는 회화나 조각 같은 조형예술이 아니다. 왼쪽에서 오른쪽, 위에서 아래로 써나가는 시간이 있다. 오히려 음악에 가깝다. 글을 쓸 때 독자의 시간을 고려해야 한다. 시간을 멈추어 쓰려고 하니 독자가 지루해한다. 작가는 시간을 재편집해야 한다


신기하게도 우리는 말은 길게 하면서 글은 짧고 분명하게 쓰라고 주장한다. 말과 글이 불일치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이 현상이 언제까지 갈지 알 수 없다.


넷째, 작가라면 큰 그림을 그려라.


맞춤법을 틀린다고 해서 교양 수준이 떨어지는 게 아니다. 맞춤법은 계속 바뀐다. 한국어, 한글은 같은 단어라도 활용이 다른 경우가 있어서, 잔고장이 많은 고가의 음악 악기와 같다. 늘 AS가 필요하다. 국립국어원에서 표준어를 정비하여 발표하는 이유다. 세계 문학 전집을 새로 개정해서 발행하는 이유도 한국어, 한글이 계속 바뀌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무에 집중하기보다는 숲을 봐야 한다. 체계와 맥락을 잡는 게 중요하다. 《책 쓰자면 맞춤법》을 소설처럼 읽고 큰 그림을 그려라. 예문이 재미있어 쉽게 읽힌다. 큰 그림을 그려서 글을 쓰고 각론에 부딪히면 검색해서 맞춤법을 확인하고 고치면 된다.  


김정선 작가님 사인


나를 찾아가는 글쓰기 수업을 하면서도 내면을 끌어내어 자신을 찾아가는 글을 유도해야 할지, 글을 제대로 쓰도록 글쓰기 스킬에 집중한 피드백을 줘야 할지 고민했다. 처음엔 맞춤법, 비문, 어색한 표현, 번역체 등을 지적하기 바빴다. 눈에 거슬리는 표현을 알려주지 않고 넘어가기가 힘들었다. 하지만 좋은 방법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그래서 합평 때는 자신을 더 생각할 수 있도록 내용에 집중하고, 작성법과 관련된 내용은 피드백 메모로 대체했다. 


내가 글을 쓸 때도 마찬가지다. 우선 어깨에 힘을 빼고 의식의 흐름대로 글을 써나간다. 하고 싶은 말을 털어놓듯이 마구 쏟아 쓴다. 그리고 수차례 퇴고한다. 퇴고하면서 재구성하고, 시간도 재편집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맞춤법을 확인한다. 낭독하면서 자연스럽게 읽히는지, 전달하려는 바가 제대로 독자에게 전달되는지 확인하는 게 글을 쓰고 다듬는 방법이다. 이제는 큰 그림만 그리면 된다.


PS. "글은 누구에게도 할 수 없는 말을,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을 글을, 모두에게 하는 이야기다." 이 말이 참 멋있다고 생각했는데 은유작가님의 《쓰기의 말들》에서 인용한 글을 발견했어요. (2020년 7월 4일)


"글쓰기는 누구에게도 할 수 없는 말을 아무에게도 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모두에게 하는 행위다. - 리베카 솔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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