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상상하고, 실수하고, 잘못된 기억으로 우기다
지난겨울, 롱 패딩에 주머니가 약간 위쪽에 달린 게 유행이었다. 다들 손을 위쪽에 넣고 다니길래 참 독특하다 생각했다. 난 그게 손을 넣기 위한 용도가 아니라 장식이거나 핸드폰 보관을 위한 주머니라고 여겼다. 친구와 대화를 나누던 중 그 주머니 이야기가 나왔다.
"손이 올라가니까 편하지 않아?"
"하하하, 무슨 소리야. 그게 손을 넣기 위한 주머니라고? 말도 안 돼. 그거 그냥 장식인데 사람들이 손을 넣고 다니더라고. 참 웃기지 않아?"
"그런가???"
내가 너무나 확신에 차서 말하니 친구는 자신이 옳았는데도 자신감을 잃었다. 그래도 의심스러워 옆 친구들에게 물었는데 모두가 100% 손을 넣는 주머니라고 답했다. 그제야 친구는 마음을 쓸어내리며 안심했다.
"와, 니네들이 말해주니 망정이지 아니면 일과삶 말이 맞는 줄 알았지. 너무 자신 있게 말하니까 순간 내가 틀린 줄 알았어."
잠시 '내가 그랬나?' 하고 넘어갔다. 그런데 최근 비슷한 상황이 두 번이나 있었다.
일정에 차질이 생겨 교육을 10분 정도 늦게 시작한다고 사내 강사에게 알려야 했다. 전 세계 직원이 다 사용하는 메신저에서 Angel 강사를 찾아서 연락했다.
[To Kim, Angelina] 앞 세션이 늦게 끝나 10분만 늦게 오세요.
그런데 그녀가 제시간에 왔다.
"제가 조금 늦게 오시라고 메시지 보냈는데 못 보셨어요?"
"아, 그래요? 제가 확인을 못 했나 봐요... 미안해요."
"미안한 건 아니고요."
강의 중에 메시지가 왔다.
[From Kim, Angelina] 메시지를 잘못 보내신 것 같은데요?
Kim Angel에게 보내야 할 메시지를 Kim Angelina에게 보내고 난 당당하게 메시지를 보냈는데 빨리 왔냐고 우겼다. 내가 너무 확신을 가지고 말하니 상대도 그런가 하는 반응이었다.
여러 부서 사람들에게 미팅 초대장을 보냈다. 대부분 수락했는데 한 명이 메일을 보내 조금 늦겠다고 답장했다. 모두 잘 모르는 사람이라 부서명으로 확인했는데 늦는다는 사람은 어차피 선택적으로 참여해도 되는 부서 사람이라 그렇게 기억했다. 미팅에 갔는데 한 명 빼고 다 왔다. 서로 자기소개를 했다.
"A부서의 OOO입니다."
"어 저에게 늦게 온다고 메일 보내지 않으셨나요?"
"네? 제가 다른 미팅에 늦게 간다고 다른 분께 메일을 보내긴 했는데, 일과삶님은 아닐 텐데요..."
"저한테 보내셨는데. 흐흐. 괜찮아요. 빨리 오시면 좋죠."
그러고는 미팅을 하는 도중 한 명이 늦게 왔다. 그제야 늦게 온 사람이 메일을 보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선택적으로 참여하는 부서가 두 부서였는데 내가 헛갈린 것이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나는 우기는 사람이다. 일주일에 두 번이나 연속으로 같은 상황을 겪고 보니 확실히 알게 되었다. 세상 다 받아줄 것처럼 관대한 사람이라고 떠벌리고 다니지만, 혼자 상상하고, 실수하고, 잘못된 기억으로 내 말이 맞다고 우기는 사람이었다. 얼굴이 화끈거렸다. 문제는 상대의 반응이다. 모두 내가 우기면 '자신이 틀렸나?'하고 나를 받아줬다. 그 자리에서 "아니다."라고 말해줬다면, 나도 주춤했을 텐데 말이다. 남 탓하는 건 아니다.
내가 틀렸다는 걸 나중에라도 발견하지 못했다면, 어땠을까?
'난 제대로 말하고, 연락하고, 일 처리를 했는데 당신이 똑바로 모르고, 확인도 하지 않고, 엉뚱한 메일을 보냈다.'라고 오해했을 것이다. 어쩌면 그동안 내가 인지하지 못한 채 이런 일들이 벌어졌는지도 모른다. 나만 잘나고 똑똑하고 상대는 멍청하고 제대로 기억하지 못한다고 착각 속에 살았는지도 모르겠다. 교만이 넘쳤다.
그동안 확신이 가득한 내 말 때문에 상처나 오해를 받으신 분이 있다면 용서를 빌고 싶다. 내가 우기는 사람이라는 걸 알았으니 이제 말하기 전에 한 번 더 생각하고, 살피려고 한다. 내가 잘못하면 언제든 알려주길 바란다. 난 우기긴 하지만 잘못된 것을 알면 쿨하게 인정하는 사람이다. 그나마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