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5일에 얻는 성찰

내가 성찰하는 계기

매년 스승의 날은 평일이든 주말이든 반드시 일정을 비워둬야 한다. 암묵적인 약속 때문이다. 지도 교수님과 지도 교수님의 교수님, 학문을 추구하는 학자 3대가 모이는 자리다. 팔순에 가까운 지도 교수님의 교수님은 여전히 정정하시다. 그 연세에 왕성한 활동을 하는 것을 보면서 부럽다. 열정만큼 가득한 나이다.

교수님의 교수님은 손주가 다니게 된 일본 동해대학 입학식에서 가진 인상적인 경험을 공유했다. 일본은 영어가 매우 취약한 나라다. 회사에서 일본팀이 일하는 것을 보면 영어자료를 대부분 번역해서 제공하고 심지어 영어권 강사가 강의하면 통역까지 제공할 정도다. 그런데 입학식에서 동해대학 총장님이 영어로 축사를 전달하면서 이렇게 외쳤다고 한다.

"We will go global!"

신입생과 학부모가 가득한 입학식장에 일본인이 영어로 연설하기가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도 몸소 모범을 보여서 실행했다는 점에 큰 박수를 보낸다. 이런 게 리더십이 아닐까? "영어를 잘해야 한다"라고 말로만 주장하지 않고 스스로 보여주는 것, 교수님이 매년 은사를 모셔서 존중하는 모습을 제자에게 직접 보여주는 것, 교수님의 교수님이 건강한 모습으로 행사에 오셔서 열정 가득한 삶의 지혜를 나눠주는 것.

일 년에 한 번씩 만나다 보니 서로를 잘 몰라서 돌아가며 자기소개를 했다. 보통 다니는 직장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나는 일과 삶을 언급했다. 직장에서는 바쁘게 열심히 일하고, 개인적인 삶으로 브런치 작가로 데뷔해서 책도 3권 낼 것이고, 더군다나 글쓰기 수업까지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들 놀라며 많은 질문을 던졌다.

"무슨 계기로 작가가 되었나?"

"시간은 도대체 언제 나서 하느냐?"

"언제부터 그런 생각을 했나?"

"글쓰기 수업은 어떤 식으로 하는가?"

계기, 사람들은 계기를 궁금하게 생각했다. 순간 나 역시도 계기가 무엇이었을까 궁금했다. 사실 그 계기가 중요하다. '어떤 일이 일어나거나 변화하도록 만드는 결정적인 원인이나 기회'니까. 누구나 다 생각은 하고, 부러워도 하고, 다짐도 하지만 결정적인 변화는 계기로 생겨난다. 그 자리에서 생각난 계기는 휴식의 시간이었다. 

이직을 하면서 2주간의 휴식 시간이 있었는데 새로운 시도를 해보고 싶었다. 그때 브런치를 알았고 도전의 글, 세 편을 썼다. 그렇지만 용기가 없어서 도전하지 않고 묵혔다. 6개월 정도 지나서 재도전했는데 그 계기는 잘 모르겠다. 시간이 지나 문득 생각이 났고, 글을 읽어보니 그다지 부끄럽지만 않아서 도전을 결심했다. 눈 찔끔 감고 작가를 신청했다. 물론 글쓰기에 관심은 늘 있었지만, 행동의 변화까지 연결하지 않았다. 잠재되어 있던 욕구를 변화로 끌어낸 계기는 결국 휴식 시간과 도전 정신이 아닐까? 

글쓰기 수업을 하면서 한 번도 전공을 살린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모임에서 내 삶을 입 밖으로 꺼내는 순간 깨달음이 다가왔다.

'나는 전공자로서 평생교육을 실천하고 있구나!'

바보처럼 내가 좋아서 하는 거라고만 생각했는데, 그제야 내 전공을 삶에서 실천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 갑자기 가슴이 쿵쾅거리며 어깨가 으쓱 올라갔다. 이래서 사람을 만나고 대화를 나눠야 한다. 혼자만 생각했다면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모임 덕분에 리더십이 무엇인지, 계기가 얼마나 중요한지, 그리고 내 삶을 돌아볼 수 있었다. 결국 일 년에 한 번 있는 스승의 날 모임은 나에게 성찰하는 계기를 제공하였다. 내년 5월 15일에는 어떤 계기가 생길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