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전성기는 아직 오지 않았다
▶ Everyday in every way I'm feeling better and better.
▶ There is still more of my life ahead of me than behind me.
▶ I'm not over the hill yet.
▶ I'd like to raise my bar.
나를 잘 표현하는 글이다. 수첩에 항상 가지고 다니며 늘 마음을 다잡는다. 공통점이 있다면 "내 전성기는 아직 오지 않았다" 정도가 아닐까?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다. 앞으로 어떤 좋은 일이 펼쳐질지 모르니 언제가 전성기라고 말할 수 없다. 지금, 이 순간 가지고 있는 경험과 지식보다 내일 조금이라도 더 경험할 것이고, 조금이라도 더 지식을 얻게 될 것이다. 나에게 전성기는 경험과 지식의 총합, 즉 성장의 최고점이다. 그러니 나는 아직 성장 중이다.
사람들로부터 "당신이 쓴 책 가운데 어느 책을 최고로 꼽습니까?"라는 질문을 받을 때면, 나는 웃으며 "바로 다음에 나올 책이지요"라고 대답한다. 웃으며 대답하긴 하지만 결코 농담은 아니다. 나는 베르디가 여든 살이라는 나이에도 늘 자신을 피해 달아나는 완벽을 추구하면서 오페라를 작곡했던 그때 그 심정으로 대답한 것이다. 비록 지금 내 나이가 폴스타프를 작곡할 당시의 베르디보다 많긴 하지만, 나는 여전히 앞으로 몇 권의 책을 더 쓸 계획을 갖고 있다. 그리고 바라건대, 앞으로 나올 책들은 과거에 나왔던 책들보다 더 나을 것이고, 더 중요한 책으로 읽힐 것이고 그리고 조금이나마 더 완벽하게 될 것이다.
-《프로페셔널의 조건》, 피터 드러커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피터 드러커 덕분이다. 《프로페셔널의 조건》을 읽은 후부터, 그는 나의 롤모델이 되었다. 피터 드러커는 97세의 나이에 임종을 앞두고, 셰익스피어 전집 재독을 완료했고 새로운 책을 기획했다. 그야말로 말과 행동이 일치한 석학이었다. 내 버킷리스트 중 하나는 "피터 드러커처럼 죽을 때까지 배우고 일하기"다. 배우고 일하는 것이 직장 일이 될지, 작가로서의 삶일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중요한 것은 뭐든 멈추고 싶지 않은 성장 욕구다. 그처럼 꾸준히 책을 낼 예정인데 "바로 다음에 나올 책"을 최고로 꼽는 작가가 되고 싶다.
성장 욕구를 채워 줄 또 다른 버킷리스트 중 하나는 "4년제 대학생이 되어 캠퍼스 누비기"다. 꼭 4년제여야 하고 캠퍼스가 있어야 한다. 최대한 길게 다니고 싶기 때문에 4년제이어야 하고, 정말 캠퍼스를 누비고 싶기 때문에 사이버 대학교는 사절이다. 대학 시절이 그리울 때가 있다. 꿈에서도 가끔 대학으로 돌아가 캠퍼스를 누비고, 강의실에서 수업을 듣는다. 캠퍼스의 낭만을 제대로 느끼고 싶다. 파릇파릇한 도서관 앞 잔디밭에서 누워서 책도 읽고, 친구와 대화도 하고 싶다. 문과 적성이지만 이과 과목을 전공한 사람으로서 문예창작, 심리학 공부도 하고 싶다. 아니면 예대로 가서 디자인, 미술, 건축학, 음악도 배우고 싶다. 어떤 전공을 하고 싶다고 정하진 않았지만 언젠가 학생 신분으로 캠퍼스를 누비는 게 꿈이다. 혹시 누가 알겠는가? 미술을 전공해서 그림을 직접 그리는 작가가 될지?
이런 꿈에 영감을 준 작가는 《배우고 익히면 즐겁지 아니한가》의 저자 사토 도미오다. 그는 57세의 나이에 20대에 졸업하지 못했던 와세다 대학 경영학과에 재입학했다. 60대에 MBA를 졸업하고, 사진을 제대로 배우고 싶은 마음에 교토 기술원에서 사진을 배워 70세에 개인전을 열기까지 했다. 78세에 고고학과 자연과학을 배우면서 더 많은 에너지와 즐거움을 얻었다고 한다. 평균수명도 늘어났으니 노년에 학습을 즐기면서 사는 시대가 왔다.
굴곡은 있었지만, 인생의 오르막을 완만하게 올라가는 중이다. 언제가 정점일지 모르겠다. 나락으로 떨어지는 순간이 올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지 않으려고 차곡차곡 계단을 다지며 오늘도 오른다. 내 전성기는 아직 오지 않았다. 부족한 것은 무엇인지, 무엇을 더 채워야 할지, 무엇을 더 나눠야 할지, 어떻게 함께 올라갈 수 있을지, 성장은 늘 내 화두다. 나는 아직 성장 중이다.
여러분에게 성장은 어떤 의미인가?
피터 드러커 처럼 죽을 때까지 완벽을 추구하고 싶은가?
아니면 사토 도미오 처럼 다시 학교로 돌아가서 공부하고 싶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