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일과삶 Jan 21. 2020

인생이라는 운전대를 쥐고

잘하고 있어, 잘하고 있어

인생에서 유일한 실패가 운전인 주인공은 연수 도중 사고를 냈다.


"이주연씨 실격! 시동 끄고 내리세요!"


책망과 비난이 가득한 감독관의 목소리는 그녀를 운전 공포로 몰았다. 장류진의 단편소설 《연수》는 회계사 주연이 덜컥 수입차를 산 후 카페에서 강사를 찾아 연수를 받는 과정을 그린 단편 소설이다. 짧은 내용이지만 우리 사회 여성의 모습을 다양하게 비춰준다.  



너 결혼만큼은 내가 꼭 시켜주고 싶어


딸이 비혼주의라고 여러 번 말해도 엄마는 막무가내다. 그 동안 해준 게 없다며 수백만 원짜리 결혼정보회사의 서류를 딸에게 건넨다. 딸을 결혼시키게 엄마의 역할이라는 믿음에서 나온 평범한 엄마의 욕심이다. 딸이 공인회계사가 되었을 때가 오십 평생 가장 기쁜 순간이라고 말하는 엄마. 이 시대 헌신적인 엄마들의 모습이 아닐까?


내가 결혼하고 싶다고 선언했을 때 엄마는 아쉬워했다. 좀 더 사회생활을 하고 내 삶을 더 즐기다 가도 되는데 왜 그리 빨리 가냐고 말리기까지 했다. 여유 있게 싱글의 삶을 즐기다 결혼한 친구들이 가끔 부럽기도 했지만, 빨리 결혼한 덕에 지금의 인생을 누린다. 자녀의 성공까지는 몰라도 자녀의 행복이 엄마의 행복이다. 나의 엄마도 그렇고, 엄마로서의 나도 그렇다. 물론 유일한 행복의 원천은 아니다. 자녀에게서 행복을 얻기도 하지만 나로 인해서도 행복하다.



엄마처럼 살지는 않을 거야


"결국은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의 손끝에서 결정되어버리는 일이, 일생의 가장 기쁜 순간씩이나 되는 그런 삶은 결코 살지 말아야 겠다고 다짐하곤 했다."


나의 행복이 타인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것만큼 슬픈 일도 없다. 행복도 슬픔도 본인이 결정하고 감당해 나가는 게 인생이다. 엄마가 행복해야 자녀도 행복하다. 나는 그렇게 약간은 이기적인 엄마다. 워킹맘으로 일하면서 아이에게 헌신하지 못해 죄책감을 느낀 적은 없다. 


카페에서 알게 된 강사는 주연의 회사에 여직원이 많은지 오십 대도 있는지 묻는다. 사실 주연이 근무하는 회사에는 남성이 많고, 오십 대 여성은 한명도 없다. 그게 현실이지만, 많다고 얼렁뚱땅 넘어간다. 


우리 회사에도 여성보다 남성이 많다. 오십 대 여성은 거의 없고 남성도 손에 꼽힌다. 얼마 전 입사한 경력직원은 자신이 가장 나이가 많은 사람일까 봐 걱정했다. 여전히 나이, 성별에 대한 차별이 존재한다. 아무리 아니라고 거짓말을 해도, 손으로 가리려 해도 가려지지 않는 명백한 사실이다. 100세 시대에 절반의 인생을 산 사람의 일자리가 거의 없다. 세상의 반이 여성인데 그 반의반에도 못 미치는 비율로 여성이 직장에 다닌다.


장류진 작가 《연수》 낭독회 모습


잘하고 있어, 잘하고 있어


카페에서 알게 된 강사는 나름 자신만의 원칙으로 연수를 제공했다. 사전 서식으로 학습자를 파악하고 (혈액형을 묻는 것은 어설픈 느낌을 주지만) 프로다운 면모를 보여준다. 다섯 시간 동안 연수를 하며 운전의 즐거움을 주연에게 알려준다. 추가 수업을 받겠다는데도 결국 혼자 운전을 해야 한다며 거절한다. 불필요한 수업을 굳지 권하지 않는 정직한 선생이다. 회사까지 혼자 운전하는 주연을 위해 막아주고 보호한 그녀는 주연이나 주연의 엄마와 달리 책임감 있고 당당한 여성의 모습을 보여줬다. 격려까지 아끼지 않는다.


우리는 어쩌면 인생이라는 운전대를 쥐고, 이제 초보 딱지를 뗀 운전자일지도 모른다. 때로는 뒤창에 "초보"라는 큼지막한 글자를 붙이고 다녀야 한다. 옆자리에 보호자를 동행하고 브레이크에 연수봉을 키운 채 달려왔다. 이제는 혼자서 운전대를 잡아야 한다. 차선을 잘못 들어갈 수도 있고, 가벼운 접촉사고를 낼 수도 있다. 그때마다 되뇌어 본다. 


"잘하고 있어, 잘하고 있어."




나를 찾아가는 글쓰기 5기 모집 중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한국이 싫어서? 좋아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