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대한민국은 "사람이 미래다"라는 가슴 뛰는 광고에 푹 빠졌다. 왠지 그 회사에 가면 존중 받고 충성심을 가지고 일할 수 있을 것 같고, 청춘을 불살라 일하면 그만큼 보상을 받을 것 같다.
"실패했다는 사실보다 어떤 가치가 있는 시도가 있느냐가 중요합니다.
정직과 용기를 보여주는 사람만큼 미래를 맡겨도 좋은 사람은 없습니다.
최고의 팀은 1등이 모여 만든 팀이 아니라 1등이 되고 싶은 사람들의 팀입니다.
사람이 미래다"
그렇게 빛나 보이던 회사가 2015년 입사 후 1년도 되지 않은 20대 신입사원까지 희망퇴직에 포함해서 문제가 되었다. 구조조정과 관련해서 더 큰 문제는 희망퇴직을 거부한 직원을 상대로 인권 침해에 가까운 압박이 있었다는 주장이 나왔기 때문이다. 희망퇴직을 거부한 직원에게 대기 발령을 내어 교육을 시켰다. 이들은 오전 8시에 출근해서 휴대전화를 반납하고 매일 A4 용지 5장 분량의 회고록을 작성했으며, 교육 시간 동안 잡담, 자리 비우기, 지시 불이행 등을 하면 경고장을 받았다.
#2
2004년 인터넷이 한참 유행하고 너도나도 회사 홈페이지를 멋지게 만들어 뽐내던 때였다. 갑자기 웹디자이너 한 명이 인사팀으로 발령을 받았다. 회사 내 직원들은 그녀가 잘린 거라고 수군거렸다. 다들 "저렇게 얼마나 다닐까? 곧 관두겠지."라며 수군거렸다. 당시 인사팀 팀원이었던 나는 퇴사하지 않는 그녀를 이해할 수 없었다. 팀장은 그녀에게 일을 주지 않았지만 그녀는 정시 출근하고 정시 퇴근했다. 하루종일 컴퓨터 앞에서 그녀는 무슨 생각을 할지 궁금했다.
벌을 주듯 자리 비운 것에 대한 시간을 재지 않았지만 직장에 일없이 다니는 것은 엄중한 벌을 받는 것과 같다. 그렇게 1년 이상을 버티던 그녀는 대기업의 서비스 기획팀으로 전직하는 데 성공했다. 그야말로 인간승리다. 잘 모르지만 그녀는 아이를 양육해야 하는 가장이었을 수도 있고, 부모를 봉양해야 하는 처지였을 지도 모른다. 우리 역시 월급을 받고 직장을 다니는 동일한 입장에서 어찌 그녀에게 손가락질을 할 수 있을까?
#3
그렇게 주변인의 이야기인 줄만 알았던 시련이 나에게도 닥쳤다. 2007년 겨울은 몹시도 추웠다. 잘 나가던 회사가 외국 회사에 매각되었다. 유사한 일을 하던 두 회사를 하나로 합치며 인원을 통폐합했다. 나는 그런 변화의 소용돌이에서 직원의 변화관리를 담당했다. 국내기업이 외국회사와 합쳐졌으니 서로 문화를 이해해야 하기도 했고, 일하는 방식에 관해서도 새롭게 배워야 했고, 다양성을 수용해야 했다. 인사팀 소속이다 보니 각종 규정이나 조직의 재조정 업무도 병행했다.
인원의 30%를 줄일 거라는 소문이 회사 내에 돌았고, 이미 부서별로 리스트를 작성하고 있다는 말도 들렸다. 나는 인사팀 소속이었고, 팀장이 아무런 언질도 주지 않았기에 내가 명예퇴직의 대상일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러던 차에 팀장이 나에게 미팅을 요청했고 내가 리스트에 있다고 알려줬다. 직원이 200명으로 줄게 되면 한국에 굳이 교육 담당을 둘 필요가 없다는 이유였다.
내가 대상이라는 것 자체가 참을 수 없을 만큼 모욕적이었지만, 사전에 귀띔을 해주지 않은 팀장이 너무나도 미웠다. 그랬다면 미리 마음의 준비도 했을 것이고 다른 곳을 알아보기도 했을 것이다. 그야말로 청천벽력이었다. 순간 1년을 버티고 나간 웹디자이너기 떠올랐다. 나는 그녀처럼 주변의 시선을 견디며 회사에 머무를 수 있을까?
지인인 노무사를 찾아가 상담했다. 회사에서 받은 조건을 보여주고 어떤 선택이 나에게 도움이 될지 자문을 구했다. 결국 내가 버틸 자신이 있으면 회사가 어떻게 할 순 없지만, 문제는 나의 자존심이었다. 지인은 "차라리 조건을 조금 더 좋게 요구하고 퇴사하는 게 정신 건강에서나 상호를 위해서도 좋을 거야"라고 조언했다.
내 생에 그런 치욕적인 순간은 더 이상 없길 바랐다. 팀장과 다시 미팅하면서 대화 내용의 녹음 허락을 구했고, 조건을 상향 제시했다. 기다렸다는 듯이 그는 흔쾌히 받아들였고 우리는 서명했다. 그 이후 내가 재취업에 얼마나 어려움을 겪었는지는 말하지 않겠다. 아무리 힘들었다 해도 팀장과의 미팅만큼 힘들었을까?
김혜진의 《9번의 일》을 읽는 동안 세 에피소드가 불쑥불쑥 번갈아 가며 나를 괴롭혔다. 부장의 호출을 받은 날 이후 희망 퇴사하지 않은 이유로 그의 보직은 점점 열악하게 바뀐다. 왜 아내 해선도 그만둬도 된다고 하는데 그는 끝까지 다른 사람의 비난을 받으면서까지, 일을 그만두지 않은 것일까?
처음 영업 업무를 맡게 되었을 때 그는 나름 최선을 다했다. 쉬지 않고 돌아다니고 마주치는 모든 사람에게 진심을 다해 고개 숙여 인사했다. 외국인 근로자를 선한 마음으로 돕기도 했으나 돌아오는 것은 비난 혹은 알 수 없는 음모, 방해뿐이었다. 그런데도 그는 책임감, 소속감, 동질감과 같은 단어로 표현할 수 없는 그 무언가를 지키려 노력했다. 26년간 다닌 직장으로부터 최소한의 존중과 이해, 감사와 예의를 받기를 원했을까?
그 과정에 그가 처음에 지키고 싶었던 일에 대한 열정은 사라지고 점점 괴물이 되어 간다. 78구역 1조 9번의 일을 맡으면서다. 주도적으로 노력하던 모습은 사라지고 회사에서 시키는 대로 생각 없이 행동하는 돈의 노예로 변했다.
"어차피 위에서 하는 일입니다. 우리가 무슨 결정권이 있습니까? 우리는 그냥 시키는 대로 합니다. 월급 받는데 못 할 게 뭐 있어요. 시키는 대로 하는 거지."
무엇이 그를 괴물로 만들었을까?
"생각해보면 자신에게도 기회가 없었던 건 아니었다. 다른 일을 선택할 수 있는 순간들이, 삶을 다른 방향으로 놓아둘 수 있는 가능성이 있었다. 그러나 그는 번번이 그것들을 그냥 흘려보냈다. 스스로에게 욕심을 내지 말아야 한다고 경고하면서 뭔가 새로운 시도를 하려는 자신을 막아서기만 했다. 어떻게 해도 달라지지 않을 거라는 생각, 그럼에도 아주 작은 것 하나쯤은 바꿀 수 있다는 생각, 두 가지 마음이 들끓는 동안 그는 아무것도 선택하지 못한 채 시간이 흘러가도록 내버려 둔 걸지도 몰랐다."
과연 그가 변화에 대처하지 못해서 이렇게 되었을까? 그가 뭔가 새로운 시도를 하고 노력했다 해도 어쩌면 나이 때문에, 회사의 경영상, 아니면 운이 없어서 회사의 타깃이 될 수도 있다.
"처음부터 이 길고 긴 싸움을 시작하지 말았어야 했다는 후회가 들었다. 이런 무모한 싸움이 아니고 다른 어떤 것에 이처럼 긴 시간과 노력을 쏟았어야 했다는 자책이 밀려왔다. 자신은 처음부터 이런 싸움을 감당할 만한 사람이 아니고, 지금껏 자신이 한 일은 패색이 짙은 이 싸움을 끝없이 유예하면서 다만 지는 것을 미뤄왔을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었을까."
그렇다. 2006년의 나처럼 처음부터 긴 싸움을 하지 말았어야 했을지도 모른다. 1년을 버틴 웹디자이너는 보통 사람이 아니다. 속을 몇 번이나 썩이고, 자책하고, 끓였을까? 결국 회사를 상대로 노동자는 이길 수 없는 걸까? 통쾌하게도 그는 소심한 복수를 한다. 구조물이 분리되고 추락하며 그 역시 무너지지만 그의 마음만은 오랜만에 평화를 찾았으리라.
그가 9번의 일을 맡으면서 회사에서 시키는 대로 생각 없이 행동하는 돈의 노예로 변했지만, 현실의 직장인은 어떠한가? 그와 같은 상황은 아니지만 자기 일이 좋아서 책임감, 소속감, 동질감으로 일하고 있는가? 아니면 시간을 저당 잡힌 돈의 노예로 일하고 있는 건 아닐까?
*11월 원데이 독서토론은 11월 27일(금) 저녁 10시이며 김혜진의 《9번의 일》로 진행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