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에게 받은 위로
새삼 괜한 짓을 하는 건 아닌지
제 명에나 못 죽는 건 아닌지
그깟 것마저 다 낭비해버리고픈 멸치똥 같은 날들이어도
야채처럼 유순한 눈빛을 보다 많이 섭취할 것
생의 규칙적인 좌절에도 생선처럼 미끈하게 빠져나와
한 벌의 수저처럼 몸과 마음을 가지런히 할 것
- 김경미의 시 『식사법』 중에서
멸치볶음을 좋아한다. 멸치에 칼슘이 많다고 해서 즐겨 먹는데, 꼬들꼬들하게 볶아서 달짝지근한 요리 엿에 담긴 멸치볶음 하나면 밥 한 그릇 뚝딱이다. 이렇게 좋아하는 멸치볶음에 복병이 있었으니 바로 "멸치똥"이다. 번거롭긴 하지만 큰 멸치를 사면 일일이 똥을 다 발라내야 한다. 똥을 발라내도 똥이 있던 자리를 그대로 먹으니 찜찜하다. 물론 씻기도 하지만 번거롭다. 그래서 나는 주로 똥이 거의 있을까 말까한 작은 멸치를 사서 통째로 먹는다. 가끔 어중간한 크기의 멸치를 사서 어쩔 수 없이 똥을 발라내지 않고 볶아 먹었을 때 그 쌉싸르하고 찜찜한 맛이란.
그날 기분이 그랬다.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으나, 상대의 배려 없는 말 한마디에 나의 노력이 물거품이 되었다. 이렇게 부질없는 것을, 나는 무엇을 위해 그렇게 안절부절못했던가 생각하니 나 자신이 길바닥에 들러붙은 껌딱지보다 못한 존재처럼 한없이 작게 느껴졌다. 우울한 마음을 안고 매일 저녁의 루틴인 시 필사를 시작했다. 시가 내 마음을 어루만져 주는 듯했다. 그랬다. 바로 그날이 "멸치똥 같은 날"이었던 거다. 똥을 발라내지 않은 커다란 멸치, 즉 멸치똥이 가득한 멸치를 잔뜩 먹은 기분이었으니까.
감성적인 글을 쓰고 싶은 마음과 손글씨 연습을 위해 매일 한 편의 시를 필사한다. 필사한 후 소리 내 낭독한다. 그리고 마음을 움직인 문구에 밑줄을 긋는다. 이렇게 시가 나를 위로해 줄지는 몰랐다. 하루를 정리하는 한 문장으로 시의 문구를 인용했다.
"그깟 것마저 다 낭비해버리고픈 멸치똥 같은 날이다."
다음날 나는 한 벌의 수저처럼 가지런히 평화를 찾았다. 시에게 받은 위로 덕분이었을까?
P.S. 여기서 멸치똥은 실제 똥이 아니라 멸치의 몸 가운데에 들어 있는 까만색의 내장 따위를 일상적으로 부르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