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일과삶 May 19. 2020

달리기

잠시 왔다가 스쳐 지나가는 봄처럼

그리고 지금 너와 내가 잠시 같이 하는

이 오늘은

우리 서로 두고 갈

―그 내일이다.

- 조병화의 시 『지금 너와 내가』  중에서


내일이 되면 오늘은 절대 다시 올 수 없는 법

그렇게 소중한 오늘

우리는 각자의 트랙 앞에 서 있다



너라는 진앙을 끓어 넘쳐

우리를 안는다

- 이설빈의 시 『끌어안는 손』  중에서


절망과 비겁을 넘어선 너라는 진앙



손목이 문제였다

귀를 막을 때도 무엇을 빌 때도 짝이 맞지 않았다

- 이병률의 시 『내 손목이 슬프다고  말한다』  중에서


둘이 아니면 절대 할 수 없는 것

두 귀를 막으려면 두 손이 필요하고

두 눈을 가리려면 두 손이 필요하다.

무엇을 빌 때도 두 손이 필요하고

무엇을 축하할 때도 두 손이 필요하다.

짝이 맞지 않는 게 손목만의 문제일까?



그대 생각이 바다로 들어가다 걸음 멈추고

쓸쓸히 침착히 눈을 맞고 있다.

- 황동규의 시 『그리움의 끄트머리는 부교(浮橋)이니』  중에서


사랑이 별건가? 

있는 그대로

흘러가는 대로

내버려 두면

힘없이 사라질 눈송이 같은 얇디 얇은 간사함



삶이 뭐 별거냐?

몸 헐거워져 흥이 죄 빠져나가기 전

사방에 색채들 제 때깔로 타고 있을 때

한 팔 들고 한 팔은 벌리고 근육에 리듬을 주어

춤을 일궈낼 수 있다면!

- 황동규의 시 『북한강가에서』  중에서


너무 심각하지 않게 힘 빼고 즐겁게 살 순 없을까?

조르바처럼 어린아이의 시선으로 인생을 즐길 순 없을까?

잠시 왔다가 스쳐 지나가는 봄처럼


5월 4일 - 5월 8일 시필사


달리기


땅~

소리와 함께 

각자의 트랙 앞에서

오늘을 버리고 떠날 준비를 하는 우리


두 귀를 막아도

두 눈을 가려도

점점 더 크게 보이는 너의 목소리

힘없이 사라질 눈송이 같은 얇디 얇은 나의 간사함


조르바에게서 춤을 배우면

잠시 왔다가 스쳐 지나가는 봄처럼

멈출 수 있을까?

매거진의 이전글 일요일 오후 두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