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글을 쓰는 사람이 바로 작가
내 안의 창조성을 얼마나 믿었을까? 초등학교 2학년 때 일이다.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비 오는 날 모습을 그림으로 그렸다. 당시 저학년 초등학생은 크레파스로 그림을 주로 그렸는데 난 과감하게 물감을 사용했다. 우산을 쓰고 거리를 이동하는 사람의 모습을 생동감 있게 그려서일까? 수채화로 비를 잘 표현해서일까? 이유는 모르겠지만 학교에서 상장을 받았다. 미술학원을 운영하던 사촌 언니는 내 그림이 마음에 든다며 액자에 끼워 학원에 걸어두었다. 그 일로 막연히 내가 그림에 소질이 있다고 믿었다.
중학교에서 미술반으로 활동하며 좌절했다. 아무도 나에게 "넌 그림에 소질이 없어. 그만해. 넌 안돼."라고 말한 사람은 없다. 그렇게 외친 사람은 바로 나였다. 중학생이다 보니 스케치북도 크고 그려야 할 분량이 많았다. 다른 친구들은 나보다 훨씬 더 잘 그렸다. 가까이서 비교하니 기가 죽었다. 자연스럽게 나는 미술반에서 제 발로 걸어 나왔다. 그리고는 미술과 담을 쌓았다. 성인이 되어 미련이 남아 문화센터에서 그림 수업을 듣기도 했지만 내 실력은 초등학교 2학년에 머물러 있는 것 같다.
개발자의 길을 시작한 건 정말 우연이었다. 프로그램의 P도 모른 채 전산직을 지원했고 덜컥 합격했다. 처음에는 신기해서 푹 빠졌다. 프로그래밍도 한 편의 글처럼 언어로 작성한다. 무언가를 입력하면 내부에서 순서도에 따라 혹은 프로세스를 거쳐 결과물을 만들어낸다. 내가 입력한 언어들이 서로 작동하고 처리되어 무언가를 내어놓는다는 게 뿌듯했다. 한때는 내가 프로그래밍에 재능이 있는 줄 알았다.
그런데 옆의 과장님을 보고 좌절했다. 그는 근무시간 중에 자신이 만든 깃발 꽂기 게임을 했다. 게임을 하다가 기능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게임 프로그램을 수정해서 즐겼다. 본인이 사용하던 워드 프로세스 역시 혼자 뚝딱뚝딱 개발해서 사용했다. 당시 MS워드나 아래한글의 표 기능이 완벽하지 않았는데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자신의 워드 프로세스에 다양한 표 기능을 추가해서 업무에 적용했다. 그를 옆에서 지켜보며 나에게 외쳤다.
"넌 개발에 소질이 없어. 니가 무슨 프로그래머야. 정말 재능이 있다면 너도 뭔가를 만들어야지. 넌 뭘 만들건대?"
책이 마냥 좋았다. 부모님이 어릴 때 책을 사주지 않아서 그랬을까? 친구 집 서재 책장에 꽂혀있는 세계 문학 전집을 보며 잠을 이룰 수 없었다. 갈색 책장에 잔뜩 각이 선 채로 꽂힌 책들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그 친구의 얼굴과 이름, 집 위치까지 기억난다. 용돈을 받으면 한 푼도 쓰지 않고 모아 책을 샀다. 내 나름 대로 책에 라벨링도 하며 도서관 놀이를 했다. 한 권씩 차곡차곡 모으면 전집이 될거라 믿었다.
그렇게 사랑스러운 책을 모으며 문득 책 표지에 있는 내 이름을 상상했다. 그때마다 발목을 잡는 목소리가 들렸다.
"니가 감히 무슨 작가야. 네가 뭘 안다고. 아무나 작가가 되는 줄 알아? 꿈도 꾸지 마."
생각해보면, 살면서 나에게 안된다고 말한 사람은 없었다. 그것도 운이라면 감사하게 받아야겠지? 나를 막고 저지한 건 바로 나였다. 바보같이 나보다 훨씬 뛰어나거나, 천재 같은 사람과 나를 비교했다. 그렇게 비교하면 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는데 말이다.
언제부터였을까? 나는 더 이상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않는다. 그냥 내가 좋으면, 하고 싶으면 그냥 한다. 완벽할 필요도 없다. 시도해봤다는 게 중요하고 내가 했다는 게 좋다. 그 과정이 즐거울 뿐이다. 그림도, 프로그래밍도 내려놨지만 다행히 글쓰기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러기에 지금도 이렇게 쓴다. 지금 이 순간 글을 쓰는 나는 작가다.
소설가란 소설가가 되어가는 과정에 있는 사람을 뜻한다고 말하겠다. 소설가란 지금 소설을 쓰고 있는 사람을 뜻한다는 얘기다.
- 《시절일기》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