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일과삶 Nov 10. 2020

퇴사와 이직 사이에서

당신은 나의 은인

27년째 직장을 다닌다. 그렇게 오래 다니고도 아직도 팀장인 주제에 무슨 자랑이냐고 묻는다면 할 말은 없다. 대기업에 다니거나 임원이 되는 것이 성공의 조건이라면 부끄러울 뿐이다. 하지만, 적어도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꾸준히 성장해 나간다면, 그리고 제2의 인생도 조금씩 준비하고 있다면 명함을 살짝 내밀어도 되지 않을까? 


대학생 시절 직장인이 될 거라 상상해 본적도, 결혼해서 아이 낳고 계속 일할 거라고 기대하지도 않았다. 사실 꿈도 없었고 목표도 없었다. 하루하루 열심히 살다 보면 어떻게든 될 거라는 막연함으로 가득했다. 안개처럼 자욱한 인생길에서 무작정 과 친구들을 따라다녔다. 그러다 문득 부모님으로부터 독립의 희망을 품었다. 학생의 신분을 툴툴 털어버리고 직장인이라는 옷으로 갈아입고 상경했다. 


준비되지 않은 직장인! 사회가 뭔지도 모르고 독립이 좋아 서울 생활을 시작했다. 하루하루가 한편의 뮤지컬처럼 극적인 반전의 연속이었다. 회사는 나에게 매일 신나는 학습 기회를 제공했다. 아침에 눈을 뜨고 회사가 갈 때마다 어떤 새로운 일을 맞이할지 설레었다. 교과서로 암기하던 학교 공부와 달리 현실에서 부딪히며 배워야 하는 직장인의 학습은 나의 틀을 깨 주었고 나는 기꺼이 온몸으로 즐겼다. 스펀지처럼 지식을 빨아들이며 쑥쑥 성장했다. 나는 그 누구보다 빠른 학습과 적응으로 업무능력을 인정받았다.


입사하자마자 프로그래머라는 직무 수행을 위해 회사가 제공하는 6개월간의 IT 연수를 받았다. 그 후 현업에 투입되어 기존 담당자가 개발한 프로그램을 분석했다. 새로운 요구사항이 생기면 코드를 수정하여 업무에 반영했다. 새롭게 개발해야 하는 요구사항은 주로 고객에게서 나왔고 고객 응대 역시 나의 몫이었다. 운명이었을까? 업무적으로 완벽을 추구하면서 태도는 바닥인 까다로운 고객을 만나고 말았다. 그는 나를 파트너로 대우하지 않고 하인 부리듯 조롱했다. 


"그런 것도 제대로 못 하면서 무슨 당신이 프로그래머야. 프로그램의 P는 아는 건가?"


참을 만큼 참았고 더는 아니다 싶었다. 아무리 고객이라지만 나를 무시하는 태도는 견딜 수 없었다. 무슨 말을 하고 통화를 끝냈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이미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달아올랐다. 그리고 바로 사직서를 썼다. '내가 부모님으로부터 독립하고 싶어서 서울 왔지 직장 다니려고, 이런 모욕을 받으려고 온 건 아니다. 지가 뭔데 나에게 이래라저래라 하는 건가?' 싶었다. 나 역시 집에서 사랑받고 자란 소중한 딸이었다.


팀장과의 면담을 끝내자 사표는 수리된 듯했다. '이제 떠나면 되겠지. 퇴사하면 뭘하고 살까? 영어를 좋아하니 번역 알바나 하면서 살까?' 잠시 고민에 빠졌는데 상무님이 부르셨다. 퇴사의 마지막 단계인가 싶었다.


"그래 사직서를 냈던데 어디로 갈 건지는 정한 건가?"

"아 아니요. 이제 생각 좀 해보려고요."

"회사생활을 안 해봐서 잘 모르나 본데, 퇴사하려면 다음에 어디로 갈 건지 정하고 퇴사를 해야 해. 대책없이 그만 두면 어떻게 하나. 사직서는 내가 보관하고 있을 테니 이직할 회사가 정해지면 그때 다시 오게."

"네..."


건강이 나쁘셨을까? 얼굴이 유난히 검던 상무님은 다정하게 직장인의 자세를 알려주셨다. 당시 그분은 회사에 30년 이상 근무하셨다. 신출내기 천방지축 신입사원이었던 나는 하늘 같은 상무님의 말씀에 찍소리 못하고 자리로 돌아와 일했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흘러 생각해보니 어렵게 들어온 회사를 고객 때문에 하루아침에 그만두면 나만 손해일 것 같았다. 회사를 관두더라도 내가 결정하고, 상무님의 조언처럼 다음 직장을 정하고 퇴사하리라 다짐했다. 


상무님이 알려준 대로 나는 이직의 순간마다 다음 직장을 정해둔 후 퇴사했다. 그러다 보니 경력이 단절되지 않았다. 그는 내 삶의 첫 은인이다. 하지만 바쁘게 살다 보니 한참이 지나 소식을 들었는데 그분이 간암으로 돌아가셨다고 한다. 고인의 명복을 진심으로 빈다. 


정말 물 흐르듯 꾸준히 직장을 다녔다. 큰 굴곡 없이 평범한 삶을 누렸다. 인사고과도 평균 이상으로 받았다. 여자라는 이유로 일부 불이익을 당하기도 했기에, 최초의 여자 타이틀을 단 책임감과 정의감에 여직원을 대신하여 회사에 건의하기도 했다. 여직원에게만 커피 심부름을 시킨다거나, 유니폼을 입힌다거나, 명함을 주지 않는 등 지금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 제법 있었다. 그 과정에 결혼도 하고 아이도 둘이나 낳았다. 2개월이라는 짧은 출산 휴가 동안에도 퇴사를 꿈꾸지 않았다. 일이 좋아서라기보다는 출근이라는 루틴이 좋았다. 아침에 눈 뜨면 정해진 시간 내에 가야 할 곳이 있고, 집중해서 해야 할 일이 기다리고 있다는 게 좋았다. 지친 몸을 이끌고 집에 오면 방긋방긋 반겨주는 아이들 덕에 행복했다. 


평범한 일상에서 답답함이 치밀어 올랐다. '왜 나는 일이 즐겁지 않을까? 왜 나는 누구처럼 일을 더 잘할 수 없는 걸까? 내가 일을 좋아한다면 퇴근하고도, 주말에도 개인적으로도 일과 관련한 뭔가를 해볼 텐데. 그렇지 못한 걸까? 피할 수 없으면 즐기자.' 마음을 다잡고 일을 좋아해 보려고 했다. 하지만, 늘 일은 나에게 꺼끌꺼끌하게 다가와 생채기를 냈다. '가만있자 뭐가 도대체 좋은 거야. 난 뭘 좋아하는 사람이지? 난 뭘 잘하는 사람이지?'


난 체계적이고 예측 가능한 일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사람들을 도와주며 보람을 느낀다. 모든 동기는 학습에서 비롯된다. 학습을 좋아하고 다른 사람과 공유하며 함께 성장하는 걸 즐기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에게 어울리는 일이 뭘까 고민했다. 과거 직장 동료가 떠올랐다. 신규 입사자 교육을 진행하며 회사의 역사와 문화를 강의하던 교육담당자. 나도 그런 일을 하고 싶었다.


마침 조직개편이 일어나던 시기였다. 없던 용기가 솟아올라 경영지원 본부장을 찾아갔다.


"우리 회사에 직원 교육을 전담하는 교육 담당이 없는데요. 제가 맡으면 정말 잘할 자신이 있거든요. 제가 하면 안 될까요?"

"그래? 그럼 한 번 해봐."


믿어지지 않았다. 뭘 믿고 나에게 이런 일을 맡겨준 것일까? 본부장님은 나의 두 번째 은인이 되었다. 이후 함께 일하다가 난 이직을 했고 그분은 명예퇴직을 하셨는데 지금은 어떻게 지내는지 소식을 알 수 없다. 아직 그분의 이름을 정확하게 기억한다. 항상 그분이 행복하고 건강하시길 진심으로 바란다. 


그렇게 나는 성공적으로 경력을 전환했다. 내 삶은 다시 부풀어 올랐다. 새로운 분야에서 전문가로 인정받고 싶어서 스터디로 글로벌 인사 자격증도 따고 기업교육 대학원도 다녔다. 역시 좋아하는 일을 하니 일과 삶이 통합되었다. 퇴근해도 일 생각으로 행복했고, 주말에도 일과 관련된 스터디와 학업을 병행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반면 스트레스는 없었다. 하루하루가 새로웠다. 다시 신입사원으로 돌아간 느낌이었다.


인생에 항상 좋은 일만 생기라는 법만 없다. 직무 전환한 지 4년 만에 명예퇴직을 당했다. 막 새로운 일에 흥미를 느끼고 전문성을 쌓으려 대학원까지 다니던 때였다. 13년이라는 프로그래머의 경력을 벗어던지고 교육 담당이라는 4년을 경력으로는 취업하기는 쉽지 않았다. 부장이라는 직급에 걸맞지 않는 4년 차 초짜를 누가 받아주겠는가? 대학원도 계속 다녀야 할지 고민스러웠다. 이 길을 계속 갈 수 있을지 모르는 상태에서 아이들을 방목하며 시간과 돈을 자신에게만 투자하는 이기적인 엄마가 아닌가?


다행히 이전의 실패 경험이 큰 힘이 되었다. 과거 프로그래머를 충실히 해보려고 IT 대학원을 다닌 적이 있는데 집을 옮기며 거리가 멀어 자퇴했다. 그때 만일 언젠가 다시 대학원을 간다면 어떤 경우에도 포기하지 않겠다 다짐했다. 그 다짐 덕분에 프리랜서라는 직함으로 기업교육 대학원을 꿋꿋이 다니던 중 세 번째 은인을 만났다. 적극적으로 수업에 참여하고 다양한 포트폴리오를 가진 나를 눈여겨보던 겸임교수이자 기업교육 중소기업의 사장님이 나에게 파트타임 업무를 제안했다. 영어, IT, 기업교육 세 가지의 경험을 가진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나는 흔쾌히 받아들었고 그 일을 계기로 다시 경력이 연결되었다. 다행히 세 번째 은인은 연락이 되어 가끔 찾아뵙고 인사도 드린다. 


내 삶에 이들 은인을 만나지 못했다면 어떤 삶을 누렸을지 궁금하다. 어떻게든 다른 은인을 만나 해피엔딩이 되었겠지? 아무튼 이 분들 덕에 나는 아직까지 행복하게 직장을 다닌다. 평생 감사해도 모자란다. 덕분에 내가 정말로 좋아하는 일을 즐겁게 한다. 그들이 나에게 은인이 되었듯 나도 누군가의 은인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누구라도 상담을 신청하면 기꺼이 시간을 허락한다. 내 경험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내가 더 감사하기 때문이다. 내가 독서나 글쓰기 모임을 개설하고, 사람을 연결하고, 글로 경험과 통찰을 나누는 것도 같은 이유다. 어쩌면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은인일지도 모른다. 오늘도 세 분의 은인에게 감사의 마음을 보낸다.


일과삶 모임 -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어요

매일 독서 습관 쌓기

원데이 독서토론

똑독

서평으로 시작하는 글쓰기

나를 찾아가는 글쓰기

내 글에서 빛이 나요


이전 04화 30여년 전 기억을 더듬어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