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A NIGHT: 노상호 <움직임 속의 움직임, 멈춤> 프로그램
광화문역 바로 옆에 있는 일민미술관에서 전시연계 프로그램으로 "IMA NIGHT《플립북》아티스트들과 함께 즐기는 뮤지엄 토크 & 파티"를 6월부터 8월까지 진행하고 있다. 그중 나는 8월 2일 : 노상호 <움직임 속의 움직임, 멈춤> 프로그램에 참여하였다.
노상호 작가의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접했었는데 독특하고 창의적인 기법이 좋기도 하고, 이번 기회에 대화도 나눌 수 있다는 점에 끌려 참여하게 되었다. 프로그램은 약 20분 정도 《플립북: 21세기 애니메이션의 혁명》의 <#해저여행기담_상태업데이트> 전을 도슨트 투어하고 30분 동안 식사와 함께 그룹으로 그림을 완성한 후, 1시간 동안 작가와 함께 대화를 나누는 것으로 구성되었다. <#해저여행기담_상태업데이트> 전은 <해저2만리> 소설에 대한 소개로 시작하고, 온오프라인 팬픽(fan fiction)의 형식으로 확장하여 관객 개개인이 각자의 입장에서 고유의 이야기를 만들어 가도록 유도하는 전시였다.
롤랑 바르트 <애도일기>의 서사와 <해저2만리>의 네모 선장의 서사의 비선형적 연결한 작품이다. 어머니를 잃은 상실감으로 다른 세계를 이동하는 주인공과 국가와 사회 시스템을 버리고 잠수함 노틸러스호를 만들어 바닷속에서 사는 선장을 연결하였다. 실제 애니메이션을 비교하면서 볼 수 있도록 설치가 되어 있다.
노상호 작가는 SNS상의 이미지를 출력하여 재구성하고 다시 인스타에 올리는 것으로 유명하다. 본 전시는 도르래 같은 것을 돌려가며 본인이 보고 싶은 장면을 볼 수 있도록 설치하였다. 이 작품은 구글이나 이미지 검색사이트에서 '해저2만리'와 'Mobilis in Mobile'을 검색하고 이를 기준 없이 수집한 후, 그 이미지를 한데 모아 먹지로 덧대어 베껴 그렸다. 작가는 전체 이미지를 상상하지 않고 완성한 것으로 멈춘 것부터 이미지가 시작하고 작품의 시작도 없고 끝도 없다고 한다. 관객 스스로 움직이며 관람할 수 있는 구조물에 부착하여 자신만의 타임라인을 만들 수 있다.
도슨트 투어가 끝나고 각자 그룹으로 모여 노상호 작가의 작품 <Mobilis in Mobile>을 모티브로 '움직임 속의 움직임'을 그렸다. 이어 그리기를 하거나 각자 일부를 그려 구성하였다. 물리적인 움직임 혹은 자신의 마음 상태의 이동을 짧은 시간 안에 협업으로 완성하였다. 그림을 그리고 대화와 Q&A를 하는 과정이 카카오톡의 오픈 채팅방을 통해 이루어졌는데 모두가 오프라인의 공간에 있으면서 온라인으로 소통하는 체험은 독특했다.
그러고 나서 노상호 작가와 대화의 시간을 가졌다. 아주 앳된 모습의 작가는 솔직하고 가감 없는 입담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다음은 작가와의 Q&A이다.
작품 제목은 어떻게 정했나? <Mobilis in Mobile>을 정할 때 심오한 생각이 있었다기보다 기획자가 책에 있는 문구를 보여주며 제안한 것이다.
혁오의 앨범 재킷은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 학교 때부터의 인연으로 시작한 것이고 오히려 같은 분야보다 예술의 다른 분야 간 협업이 더 잘 된다.
작가가 가장 제일 좋아하는 그림은? "당신이 사는 그림"이다.
꼭 해보고 싶은 작업 주제나 작업은? 다음 전시, 다음 작업이다. 다음 전시 기획할 때가 가장 재미있고 모든 게 정해지면 그 다음은 노동이다.
SNS를 통한 작업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나는 판화 전공으로 한 작품을 제작하는데 아주 오랜 시간이 걸렸다. 대학교 3학년 때 미래가 불안하여 하루에 1장 이상을 그리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빨리 그려야 하니 판화를 버리고 먹지 드로잉을 시작했고 처음엔 모작을 했다. 그러다 보니 SNS가 가장 편하다는 생각을 했고 인스타도 플랫폼이 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 또 하나는 팬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인스타를 통해 그림을 재생산하게 되었다. 아무리 성대한 전시를 하더라도 끝나고 나면 별 의미가 없었다. 오히려 보이지 않는 사람이 좋아해 주는 게 좋았다. 나는 실제 미술관에 가지 않고 SNS를 통해 다른 작가들의 작품을 감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제 감상한 것처럼 말해도 아무도 몰랐다. 미술관 실제로 가서 보는 게 정답인지, SNS로 보는 것도 다른 방법이 될 수 있는지 그 누구도 알 수 없다. 세상은 빠르게 변해가고 있는데 미술관은 변하고 있지 않다. 지금 세대들은 종이로 공부하지 않고 핸드폰으로 공부하는 세대다. 그림의 감상법도 달라질 수 있다. 요즘 영상을 만드는 사람들은 아주 실력자인데 스스로 미술의 영역에 있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더 미술적이다. 앞으로는 매체 간에 경쟁을 할 것이다.
소재는 어떻게 정하는가? '나는 누구인가?'에서 시작한다. 내가 가장 편하고 많이 보는 이미지는 무엇인가? 그게 바로 SNS이고 핸드폰이다.
A4용지에 작업한 이유는? 집도 없어서 공간을 차지하지 않는 작업을 해야 했다. A4 1,500장 작업도 박스 하나면 보관이 된다. 이제는 여유가 생겼으니, 내 상황에 맞게 좀 더 크게 그리려 한다.
이렇게 유명한 작가도 힘든 시절이 있었다는 점에 당연하지만 좀 놀랐다. 방황하던 대학교 3학년 시절의 고민이 지금의 작가를 만들었다. SNS를 통한 작업은 어쩌면 누구나 생각할 수도 있었을 것 같은데 지금은 그 분야의 선두주자로 확고히 자리 매기고 있다. 그만큼 많은 고민과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싶다.
가장 좋아하는 작품이 당신이 사는 작품이라는 솔직한 대답에 놀랐고, 해보고 싶은 주제나 작품이 다음 작품이라는 말에 작가의 의지가 느껴졌다. 피터드러커도 "당신이 쓴 책 가운데 어느 책을 최고로 꼽습니까?"라는 질문에 "다음에 나올 책이지요."라고 대답하였다. 이에 영향을 받아 나 역시 누군가가 나의 전성기가 언제냐고 묻는다면 아직 오지 않았다고 말한다.
이렇게 가까이서 작가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음에 감사했다. 평일 저녁 미술관에 가기가 쉽지 않아 망설였는데 덕분에 그림도 보고, 협업을 통해 그림도 그려보고, 노상호 작가와의 대화를 통해 더 잘 알게 되어 좋았다. 작가이기에 앞서 한 인간으로 친근감이 느껴졌고 그의 솔직한 대답에 감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