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의 룰이 바뀌었다.
Joe Hisaishi - One Summer's Day
19세기 후반, 어느 청소년이 하버드 법대에 합격했지만 이를 포기하고 가족의 지인이 운영하던 한 제조회사에 들어갔습니다. 그는 이곳에서 견습공으로 일하며 공장 운영을 세세히 관찰했습니다. 수습과정을 마친 뒤에는 역시 지인 소유의 기계공장 근로자로 정식 취업을 했습니다. 그는 6년 사이 6번의 승진을 거쳤습니다. 그 뒤 기업 전체를 총괄하는 수석 엔지니어로 임명되었습니다. 화학, 전기, 석유 및 철강 분야에서 폭발적인 기술혁신이 이뤄지던 ‘2차 산업혁명’ 시기였습니다. 2차 산업혁명 초반 상당기간은 인플레이션, 임금의 불안정, 경제공황 등 경제‧사회의 불확실성이 매우 높았습니다. 청소년이 수석 엔지니어로 성장할 때쯤 그는 그 원인을 ‘인간’에서 찾았습니다. 그가 보기에 당시 전기화 공장은 노동력 낭비가 심각한 수준이었습니다. 그의 시각에서 그런 노동력 낭비는 전적으로 공장의 근로자 배치 방식에서 비롯된 결과였습니다. 근로자 배치가 서툴고 부적절할 뿐 아니라 다른 무엇보다 비과학적인 탓이었습니다. 그는 인간과 인간을 둘러싼 조직환경을 규격화 함으로써 업계의 비효율성을 해소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과거에는 인간이 최우선이었다면 미래에는 시스템이 최우선이 되어야 한다.” 던 ‘그’는 다름아닌 현대 경영학의 시초로 평가받는 과학적 관리법(scientific management)을 주창한 ‘프레데릭 테일러’입니다. 테일러는 1890년대부터 조직의 비효율성을 최소화해줄 산업 조직의 새로운 비전을 알리고자 했습니다. 그 비전은 ‘표준화(standardization)’였습니다. 테일러는 자신의 생각을 토대로 공장을 분해하고서, ‘모든 두뇌를 필요로 하는 작업은 수작업과 분리되어야 한다’는 결론을 얻어냈습니다. 그는 규칙과 반복과 비교를 선호하는 논리, 수학, 물리학 등 소위 정확한 학문을 바탕으로 자신의 생각을 입증하려 했습니다. 이 철학을 받아들인 공장들은 세세한 작업 규칙과 표준 작업 절차를 담은 책자, 매뉴얼을 발간하고 작업 지시 카드를 발행하는 식으로 직무 수행 방식을 근로자의 움직임까지 정교하게 설계했습니다. 창의적인 장인은 더 이상 필요치 않았습니다. 공장이 제시하는 방식에 따르는 기계적 자동인형과도 같은 인간이 그 자리를 대체했습니다. 토드로즈(Todd Rose) 하버드 교육학과 교수에 따르면 1890년대부터 1940년대까지 대략 50여년을 거치는 사이, 거의 모든 사회 시스템이 우리들 한 사람 한사람을 평균, 표준화 프레임에 비추어 평가하고 관리하는 형태로 바뀌었습니다.
과학적 관리기법이라고도 불리는 테일러리즘은 1차적으로 고전 경제학이 규정한 인간에 대한 기본가정을 따릅니다. 고전 경제학이 가정한 인간은 ‘호모 에코노미쿠스’ 입니다. 호모 에코노미쿠스는 인간을 매우 합리적이며 완벽한 정보를 소유하고, 다양한 행위에 따르는 비용과 혜택을 저울질해 비용 대비 최고의 효용, 이익을 얻는 존재로 상정합니다. 그런데 사실 이 같은 가정은 현실에서 온전히 작동하지 못했습니다. 때문에 테일러가 이를 보정하기 위해 택한 방식은 경영에서 인간의 행위가 가능한 ‘변수’가 되지 않고 철저히 시스템 상의 예측가능한 상수가 되도록 노동자의 ‘인간성’을 가능한 지우고 표준화하는 것이었습니다. 테일러는 기업이 시스템에 잘 맞는 평균적 인간을 고용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그에 따르면 특정 공정을 완수할 '단 하나의 최선책'이 늘 있기 마련이며 그 단하나의 최선책은 바로 표준화된 방법이었습니다. 테일러, 테일러리즘을 수용해 20세기 나아가 지금까지의 21세기를 지배한 관리자는 조직을 향해 이렇게 외쳤습니다. [1]
- 오작동을 없애라. 기계(인간 기계)를 최대한 원활하게 돌려라.
- 매장에서 빈둥거리는 직원을 엄중히 다루라.
- 직원을 교체 가능한 기계 부품으로 취급하라.
- 현재 상태를 유지하라(능률을 높일 궁리는 하지 말라. 망하는 지름길이다.)
- 절차를 표준화하라. 모든 일은 매뉴얼대로 하라.
- 실험을 하지 말라. 본사 수뇌부가 할 일이다.
테일러리즘의 표준화 경영은 20세기 산업사회 발전과 성장에 중요한 기여를 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인간의 감정을 배제하고 인간을 하나의 기계, 부품으로 다룸으로써 기업, 조직 활동 내 인간성을 상실케 했다는 비판도 받아왔습니다. 테일러는 1906년 한 강연에서 사원들과 관리자들의 관계에 대해 다음과 같은 견해를 밝혔습니다. “우리의 조직에서는 인간의 창의력이 요구되지 않습니다. 그 어떤 창의력도 필요치 않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오로지 시키는 대로 명령에 순종하고 시키면 바로바로 행동에 옮기는 태도입니다.”[2]
테일러리즘은 몇 가지 구조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첫째, 타고난 소수의 엘리트가 있어야 합니다. 소수의 선택받은 똑똑한 엘리트가 중앙에서 나머지 일반 구성원과 상황을 통제하고 의사결정을 합니다.
둘째, 정밀한 계획을 필요로 합니다. 소수의 엘리트의 핵심 과제는 상황의 완벽한 통제를 위한 정밀한 계획을 세우는 것입니다. 그들은 비즈니스 요인을 쪼개고 분석하고 다시 이를 조합하며 현재를 바라보고 미래를 예측하며 정밀한 계획을 세웁니다.
셋째, 정밀한 계획을 가능한 그대로 수행할 손과 발을 필요로 합니다. 소수의 엘리트는 각종 계획과 기술을 이용해 다수의 노동자들의 최적화된 행동을 그립니다. 그리고 이를 그대로 하기를 강조합니다. 계획을 이행하는 사람들은 너무 주체적으로 생각해선 곤란합니다. 그저 그려진 계획과 행동지침대로 정확히 따르는 것이 중요합니다. 표준화, 기계화된 인간이 테일러리즘의 인재상입니다.
넷째, 이렇게 구조화된 조직은 필연적으로 관료제적 성격을 띄게 됩니다. 관료제란 특권적인 인간의 집단인 관료를 통해 지배가 행해진다는 뜻으로 그 사전적 뜻 그대로 각자가 알 수 있고 또 행할 수 있는 권한이 조직의 상하 좌우로 촘촘히 나뉘어진 체계입니다. 이런 체계 하에서 개인은 전체적인 맥락을 알 수 없습니다. 오직 부분적이고 파편적인 정보만을 획득하고, 과업의 전체적 맥락을 파악하려는 시도는 오히려 위험한 도발로 간주됩니다.
토마스 쿤(Thomas S. kuhn)의 기념비적 저서 『과학혁명의 구조』에 따르면 정상 과학에서 진보는 패러다임 전환을 통해 이뤄집니다. 이는 사실과 이론의 축적에 따른 연속적이고 점진적 과정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혁명, 즉 단절적 파열 과정에서 경쟁하는 이론(그에 수반되는 믿음, 가치, 인식의 총체를 포함) 중 하나가 집단에 적극적으로 수용, 지배적 패러다임으로 전환되면서 이뤄지는 것입니다. 쿤의 사상이 비단 좁은 의미의 ‘과학’에 머물지 않고 사회학, 심리학, 정치학, 경제학, 심리학, 인류학, 심지어 문화 예술에 까지도 광범위하게 적용, 인용되고 있음을 볼 때 ‘과학적 진보’는 충분히 좀 더 보편적인 의미의 ‘진보’로 확장해 해석할 여지가 있습니다.
패러다임의 개념을 적용해 우리 사회의 조직 경영, 현대적 의미의 ‘기업’과 이를 관리하는 ‘경영’이라는 영역, 학문이 생성된 이래로 지금까지 매우 다양한 경영 방법론, 기법이 소개되고 활용된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 이들 대부분은 모두 단 하나의 기준이자 패러다임, ‘테일러리즘Taylorism’에 기인한 것입니다.(표) 과학적 관리법(Scientific management), 합리주의(Rationalism) 경영이라고도 불리는 테일러리즘 경영은 효율을 최고의 ‘가치’로 내세우고 이를 위한 강력한 통제와 명령, 규율, 경쟁을 강조하며 ‘정상 경영(Normal Management)’으로서 군림해 왔습니다.
[표] 테일러리즘 경영 패러다임
시장자체가 단순했던 19세기에는 수요와 공급을 비교적 정확히 산출할 수 있었습니다. 때문에 테일러의 이론은 당시 현장에서 계획과 예산 세우기, 시스템의 전략과 기준을 수립하는 데 있어 일종의 정석이 되었습니다. 테일러리즘은 그 위력이 워낙 강력해 21세기가 도래하는 시점까지도 여전히 ‘지배적 논리’로 기업과 조직 안팎으로 작동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21세기를 맞이하고 근 20년도 더 지난 지금, 테일러리즘은 조직 경영에 있어 ‘기준’의 역할을 하기 어려워졌습니다. 2차산업 혁명 시기 사회/경제적 도약의 논리와 발판이 되었던 ‘표준화를 통한 효율 극대화 및 낭비제거’ 원칙만으로는 더 이상 기업이 생존하기 힘든 상황이 되었습니다.
2000년대 후반 글로벌 경제 침체기를 지나면서 세계 경제/사회는 변동성Volatility과 불확실성Uncertainty은 더더욱 높아지고, 복잡Complexity하고 모호Ambiguity해졌습니다. 저성장, 저금리, 저수익률, 고위험을 특징으로 하는 새로운 글로벌 경제 환경, 뉴노멀New Normal 시대가 본격 도래했습니다. 그 와중에 시장의 글로벌화, 국가와 산업을 가리지 않는 기업 간 M&A, 조직 내 인종, 나이, 성별, 언어의 다양성 확대는 조직의 획일화, 표준화를 더욱 방해하고 있습니다. 고객 역시 더 까다로워졌고 구미도 다양해 졌습니다. 시장의 유행은 더 빠르게 변하고 수명도 짧아졌습니다. 환경은 또 어떤가요. 코로나 발발과 그 이후의 세계는 아무도 제대로 예측하지 못했습니다. 우리가 계획한 것은 대부분 틀렸습니다.
선형적인 세상, 즉 하나를 넣으면 그에 비례한 하나가 나오는 세상, 예측 가능한 계획과 이를 성실히 수행하는 메커니즘은 더 이상 기업, 나아가 개인의 생존과 성장을 담보하기 어려워 졌습니다. 높은 불확실성 속에서 거대한 중앙 집권적 관료 시스템은 위험하기 그지없습니다. 소수의 엘리트 그룹의 계획과 의사결정이 무너지면 대다수의 시스템이 붕괴됩니다.
높은 불확실성 속에서 생존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그 위험을 가능한 분산해야 합니다. 어느 한 곳이 공격받거나 무너져도 다른 곳이 살아남아 그 위험과 위기를 메우는 형태가 되어야 합니다. 이를 생각하면 적어도 인간을 머리, 손, 발로 다시 분류하고 그에 맞는 표준화된 질서를 주입하고 켜켜이 권위의 층을 쌓는 지금까지의 패러다임이 결코 통할 수 없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수세기를 지배한 과학적 관리법은 결과적으로 더 이상 과학적이지 않은 관리법이 되었습니다. 우리에게는 새로운 과학적 관리, 경영 패러다임이 필요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우리를 둘러싼 세상이 ‘진짜’ 어떻게 작동하는지 - 동시에 테일러리즘이 가정한 세계관이 왜 잘못되었는지 – 바로 이해해야 합니다.
[1] 톰 드마르코Tom DeMarco, 티모시리스터Timothy Lister, 박재호/이해영 옮김, [피플웨어People Ware], 3판, 인사이트 2014
[2] 로버트 카니겔Robert Kanigel, One Best Way, p.169, "1906년 6월 4일 강연 중에 한 발언": 토드 로즈Todd Rose, [평균의 종말The End of Average], 21세기 북스, 2018에서 재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