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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효이재 Oct 01. 2022

1.2 우리는 우리를 둘러싼 세계를 오해하고 있었다.

우리가 사는 세계는 단순계가 아니다.

Glenn Gould - The Goldberg Variations (Johann Sebastian Bach)


 “구름은 구가 아니고, 산은 원뿔이 아니며 해안선은 원이 아니다. 자연에서 직선은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온전한 삼각형, 사각형, 수직, 수평.. 우리는 얼핏 이러한 개념이 자연으로부터 온 개념이라 생각하지만, 모든 자연적인 것에 매끄럽고 연속적인 선과 표면은 없습니다. 이 단순한 사실로부터 도출되는 개념과 은유는 앞으로 이야기할 거의 모든 부분에 영향을 미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모든 자연적인 사물이 궁극적으로는 매끄럽고 연속적인 선과 면으로 이뤄져 있거나 그것으로 쪼개고 치환이 가능하다고 은연중 생각하는 것은 고전적인 유클리드 기하학에 따른 관념에 익숙하기 때문입니다. 자와 컴퍼스로 그려지는 유클리드 기하학의 1차원(선), 2차원(면), 그리고 3차원(입체)의 세계는 불확실성이나 애매모호함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즉 모든 우연한 현상들이나 불확실한 요소는 배제하고 가장 명확한 몇 개의 요소들로 단순화시켜 결과와 연결시키는 것입니다. 이는 우리가 오랫동안, 어쩌면 지금까지도 익숙하게 취해왔던 접근으로 ‘전체는 부분의 합과 같다’는 단순계 세계관을 상징하는 관념이기도 합니다.

 

 단순계 세계에서는 모든 것들이 기계적으로 작동합니다. 단순계 아래에서는 입력input과 출력output의 관계가 언제나 일정한 비율을 가지고 있습니다. TV의 볼륨 버튼을 누르면 일정하게 소리가 커지거나 작아지는 현상 등 우리는 이러한 원리를 통해 우리가 주변에서 겪는 상당부분의 물리적 현상을 설명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선형적 시스템은 변수에 문제를 대입하고 시뮬레이션을 통해 쉽게 결과를 예측할 수 있는 방식으로 선형성은 기계론적 세계관을 가능케한 대표적인 특징이 되었습니다.

 경제학과 같은 실용 학문에서 인간을 모든 상황을 완전 합리적으로 계산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논리적인 기계(컴퓨터)처럼 규정하는 것 역시 확실성과 선형성을 전제로한 기계론적 세계관을 대표하는 특성입니다. 모든 원인과 결과, 인풋input과 아웃풋output이 명확하고 단순한 기계론적 세계관은 우리에게 매우 직관적이고 이해하기 쉬운 설명력을 제공했습니다. 1+1=2의 세계는 지금까지 과학의 거의 모든 것처럼 받아들여 지게 되었습니다.


 때문에 오랫동안 학자들은 불연속성이나 매끄러운 선으로 환원되지 않는 주름 등과 같은 개념에 대해서 이것이 수학, 과학의 형식을 확장시키는 흥미로운 개념과 사례이기는 하나 일반적으로 현실세계와는 별다른 관련이 없다고 여겼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단순계적 접근만으로는 설명하거나 예측할 수 없는 현상이 자연 뿐 아니라 사회, 경제, 문화 등 거의 모든 현실세계에서 빈번히 이뤄지고 있다는 사실을 인류는 더 이상 부인하기 어려워졌습니다.


 단순계의 기계론적 세계관이 추구하는 것은 정밀한 예측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단순계, 합리주의 세계를 대변하는 유클리드의 수학과 뉴턴 역학을 아무리 철저히 통달한다고 할지라도 우리는 불과 며칠 후의 기상을, 주식 시장의 등락을, 장기적인 저성장을, 판데믹의 급작스런 재출현을, 내가 속한 조직의 정확한 흥망성쇠 주기를, 갑작스런 교통체증을, 내면의 감정을 정밀하게 예측할 수 없습니다. 이 말인 즉 슨 사실상 우리의 삶과 현실 속에서 단순계 세상은 일부에 불과하고 주름, 불연속적인 복잡계가 보편적인 특징임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앞서 구체적으로 비판한 경영의 테일러리즘, 그 훨씬 이전 뿌리와도 같은 아리스토텔레스•플라톤•데카르트의 철학, 유클리드의 수학, 뉴턴의 과학, 등 거의 2,000여년동안 인류는 애써 통제, 예측 가능한 세계에 집중했습니다. 그 영향으로 우리가 의도했든 그렇지 않든 우리는 때론 단순계가 현실 세계의 전부라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초등학교부터 우리 교육의 대부분, 아니 전부는 합리성과 논리, 예측가능한 규칙과 질서를 배우는데 할애되어 있고 그 외의 (복잡계) 세계를 어떻게 이해하고 바라보며 대응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제대로 배우지 못했습니다. 다시 말해 보편적인 현실세계를 정작 어떻게 온전히 바라보고 지혜롭게 살지에 대해 사유할 수 있는 경험과 시간이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때문에 우리는 단순계를 벗어난 (어쩌면 거의 모든) 부분에 대해서 억지로 단순계의 논리를 복잡하게 끼워 맞추거나 그래도 설명 불가능한 것들에 대해서는 단순히 확률과 통계에 기반한 우연성이 난무하는 세계로 치부하고 말았습니다. 그 사이 우리가 사는 세계의 변화는 시간이 지날수록 그 변화의 폭이 커지기만 했습니다. 현재의 1년은 과거의 10년보다 변화의 폭이 큽니다. 기업의 경우 시장에서 경쟁해야 하는 플레이어가 산업과 국가를 넘나들고, 소비자들이 접할 수 있는 정보의 양이나 질은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광범위해 졌습니다. 우리가 과거의 논리를 아무리 억지로 끼워 맞추려 해도, 그리고 이 세계를 애써 외면 하려해도 일상의 개인적 삶에서조차 더 이상 그럴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높은 불확실성은 불안을 낳지만, 그 불안이 증폭되는 이유가 이런 일련의 세계관, 맥락 속에서 우리가 우리의 전 생애를 보냈기 때문 아닐까요?


Book: 상효이재, 초개인주의 Over-Individualism, 한스미디어, 2022

장재웅, 상효이재, [네이키드 애자일] , 미래의 창,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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