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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영준 Dec 06. 2024

마음을 비우고 뜻을 생각한다.

2011.09.04

아래 글은 대학교 1학년때 '자서전, 나의 이야기' 과제로 제출한 글을 옮긴 것입니다.



햇살은 산을 넘나들었고 산은 물을 품었다. 산에 안긴 물은 하늘을 노래했고 물이 노래한 하늘은 태양을 보듬으며 산을 내려다보았다. 햇살로 내려다본 산은 물을 품었고 물은 하늘을 바라보았다. 모두가 이어지는 연련의 고리 속에서 숨 쉬고 있었고 숨소리는 이어지다 끊어졌다. 너는 끊어지던 숨소리를 벗어던지고 발을 움직였다. 


지나온 길이 제법 긴 것도 같았고 네가 걸어가야 할 길은 더 길다.


뒤틀린 시간 속에서 너는 네 과거의 기억을 보고 미래에도 '내가 과거의 꿈을 살고 있을까,'

라는 물음을 잠시 던져 보고 싶었다.     

아니, 멀리 갈 것도 없다. 만약 네가 1년을 산다면 어떨까, 영화 속 주인공처럼 겨우 1년밖에 살 수 없다면 너는 머리를 쥐어뜯으며 늘일 수 없는 명줄을 더 늘여두려 할까. 다행히 그건 아닐 것 같다. 너는 나면서 가지고 온 것이 없었고, 마땅히 가져갈 것도 없었다. 멀리 나타나지 않은 걱정은 지우면 그만이었고, 지금 하고 있는 일은 조용히 끝내면 될 일이었다. 5년 전에 네가 되고 싶다던, 교사라는 뻔 한 소망은 이미 날려 보낸 지 오래였고 글을 쓰겠다는 꿈만 지금까지 등 뒤에 짊어지고 있다. 이뤘다고 말 할 수 없지만, 이루어가고 있는 마지막 꿈이었기에 너는 아직까지 망설임 없이 글을 쓰고 있을지 모른다. 1년이 됐든, 100년이 됐든 너는 글을 쓰며 너의 마음을 정리하는 것을 희망으로 삼았다. 작다면 작고 크다면 큰일인 글이 너에게는 아직 희망이란 이름으로 마주하고 있으니깐 말이다.     


단순히 글을 쓰는 것을 너는 노력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여태껏 죽기를 각오하고 한 일은 아무것도 없었고 글 역시 마찬가지였다. 너는 죽기를 각오하지 않으면 노력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누구나 죽을힘을 다해 행복해지길 바란다면 행복해질 수 있을까. 아니, 너는 그렇게 말하진 않는다. 너는 언제나 말했다. 될 놈은 되고, 안 될 놈은 안 된다고. 너는 남을 버리면서 행복을 말하는 사람은 죽을힘을 다해도 행복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것은 너 자신에게도 해당하는 말이었고, 네가 내팽개친 인연에도 해당하는 말이었다. 어쩌면 너는 노력하지 않는 핑계를 이런 것에서 구할지도 모른다. 너는 그저 겉으로 웃을 수 있는, 남에게 보이는 행복이라면 너도 어느 정도는 행복의 범주에서 집을 짓고 살 거라고 생각한다. 너는 어디에 있든지 그 정도는 행복해 할 사람이다. 그래서 너는 그런 행복보다는 믿음을 소중히 여기고 있었다. 다만 네가 말하는 믿음이란 예수에게 바치는 믿음이 아니었다.


물론, 너는 예수를 믿는 사람 중 하나이다. 하지만 너는 그 뒤로 번들거리는 십자가를 믿는 사람은 아니었다. 예수에게 받치는 믿음을 너는 흠숭이라 높였고, 믿음이란 말은 철저히 사람에게만 사용했다. 너의 절대 믿음의 대상은 사람이다. 네 간사한 머리가 기댈 수 있는 몇 안 되는 사람에게만 너는 믿음이란 말을 허용했고, 그 몇에게는 그 들이 신뢰받고 있음을 알 수 있게 때대로 마음을 보이곤 했다. 그래서 너는 스스로를 양파 같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너는 양파처럼 껍질을 아무리 까내도 절대 속내를 들춰내지 않았다. 


오히려 무리하게 네 껍질을 까내려는 사람들에게 너는 알싸한 눈물만 주고 말았다. 네 삶을 거스르는 것들에 대해 너는 온 몸으로 거부했고,      

호불호가 분명한 너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등을 돌렸다. 다만 너는 네가 좋아하는 사람을 , 기어이 네 껍질 속으로 파고든 그 몇 사람을 굳게 믿었고, 다른 사람은 절대 신뢰하지 않았다. 신뢰와 불신은 모두 사람이란 단어로 수렴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네가 믿는 사람들 중에서는 너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이 있었을까? 글쎄, 그것은 모르겠다. 물론, 너는 많은 사람에게서 영향을 받았고, 어릴 때에는 네가 감히 받아내지 못할 찬사도 많이 들어봤다. 그런데 그것을 중요하다고 말한다면 너는 네 삶을 모두 중요하다 여길 것이다. 물론, 네 삶 전체가 중요한 것이고 네가 지금 기댈 수 있는 몇 사람을 중요하다고 말 할 수는 있었다. 네가 얼마 전 사람과의 관계를 정리하지 못해 서러워했을 때, 언제나 자랑스레 위로의 말들을 건네던 네가 어쩔 줄 몰라 할 때에 문득 네게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준, 지금도 그 자리에서 널 위로해주는 그 아이와의 관계가 평생 네 인생을 관통하리라고는 장담할 수 없었다. 네가 상처를 줄지도, 받을 지도 아무도 모르는 일이니깐 말이다. 사실, 너는 겉으로나마 네가 상처받는 일을 두려워하고 있진 않았다. 혼자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우면 마음이 비워질 것 같았고 네가 아직은, 상처라 말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모두 지나가는 길이었고 나도 똑같은 길을 걷는 것뿐이니 할 말이 없었다. 대신 너는 네가 누군가에게, 특히 네가 말했던. 네가 믿는 그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는 일에 대단히 민감했다. 아직까지 흉터까진 준 일이 없었지만, 너는 얼마 전까지도 네가 기대는 사람들을 서운하게 만든 적이 더러 있었기 때문에 상처라는 단어에 대단히 민감히 반응하고 있었다. 


너는 네가 기대는 사람에게 화를 내지도, 짜증을 내지도 못한다. 다만 그러지 못함에서 나오는, 그 틈의 파열이 그 사람들에게 생채기를 내버리기 때문에 너는 더 큰 상처를 내기 전에 너 자신의 살을 발라 그 사람들의 생채기를 덮어버리려 했을지도 모른다. 너는 이렇게 너의 몸을 잘라내기를 좋아했다. 조금은 손해 봐도 좋다고 느끼는 것이 무리 전체에게 살을 한쪽씩 떼어주게 되었고 너는 어느 무리에 있던지 너의 살을 잘라 먹였다. 너에게 돌아오는 것은 하나도 없었지만 무리의 배부름이 너의 배부름과 같았기 때문에 너는 언제나 이런 식으로 너의 살을 잘라냈다. 그런데도 왜 지금껏 몸무게는 주는 일이 없는지에 대한 건 여전히 알 수 없는 일이다. 리더 같은 건 바라지도 않고, 참모나 킹메이커의 역할이라면 너는 족했다. 그것이 욕심이라면 욕심이겠지만 너는 네 능력이 그 정도는 될 거라고 자신하고 있다. 어쩌면 네가 남들보다 잘하는 것은 단순히 이런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남을 올리는 것이라고 생각할지도 몰랐다. 너는 간사한 머리를 가졌다. 덕분에 언제나 다섯 수 너머의 걱정을 짊어지고 있었고 여기저기 정보를 훑어다 돌아가는 판을 다시 보고선, 네 틀에 사람을 맞추는 일을 얼마간 하였다. 어쩌면 그 간사함이 네가 원하는 사람을 원하는 자리로 올리는 원초적인 보좌의 능력을 수행하고 있을지도 몰랐다. 아직까진 실패한 적이 없으니 너는 그것이 너의 길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어쩌면 글이 아닌 간사함이 너의 재능이라면 이렇게 사람을 궁지에 몰아넣는 일의 숫자를 경력으로 내보이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네가 1년만 산다고 가정 했을 때만 말이다. 네가 더 오래 산다면 글쟁이로 책 몇 권, 시 몇 편정도 세워두는 것이 경력으로서 좋지 않을까. 그런 보기 좋은 경력을 위해서 너는 좋은 친구를 사귈 필요가 있었다. 지금처럼 네가 기대는 친구뿐 아니라, 네가 삐뚤어질 때마다 너를 바로잡을 매서운 친구가 필요했고 너는 그런 친구를 좋은 친구라고 생각한다. 물론 그런 경력과 좋은 친구와의 인생을 위해선 무덤 같은 곳엔 조금 늦게 들어갈 필요가 있다. 앞에서 말한 것과는 모순되는 얘기지만 너는 죽는 것을 무서워하진 않지만 무덤 속에 들어가는 것은 싫어하고 있다. 그 음침하고 습한 곳에서 남들보다 몇 십 년을 먼저 살기는 싫었다. 너는 아직 겪어보지도 않은, 습기 찬 벌레가 가만히 죽어있는 너의 살을 뜯어낼 생각을 하면 진저리를 치곤했다. 어쩌면 영원히 들어가지 않는 편이 더 좋을 법도 했다.      


다만, 어차피 무덤에 들어가야 한다면 제법 괜찮게 살 필요가 있었다.     


空心志思行, 마음을 비우고 뜻을 생각하여 행하는 일.


네가 한 순간이나마 저 다섯 글자대로 살아본다면.     

그래, 어쩌면 내일이라도 무덤 속에 들어가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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