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5
군대에 가기 직전, 한 4개월 정도 처음이자 마지막인 알바를 한 적이 있다.
나름 정직원으로 들어간 일이었지만 어차피 알바나 다름없었으니깐..
하는 일은 홈플러스 내에 입점한 육가공품 매장일이었다.
아침 오픈조는 나와서 팔 식자재를 나누어 세팅하고 밤 마감조는 완판을 시키고 남은 것은 폐기한 뒤 다음날 오픈 조가 준비 잘하게 돕는 것이었다.
아침조, 중간조 번갈아가며 해보다 마감조만 계속 하게 되었는데.
새로 오신 팀장님이 믿기 어려운 말을 하셨다.
현재 악성재고 및 미판매되어 로스나는게 너무 많으니 마감할 때 적당히 냉장고 안에 잘 넣어두란 것이었다. 이른바 재팩, 즉 저녁에 남은 걸 아침에 다시 그날 작업한 것처럼 패킹하여 팔기 위해서였다.
동네에 있는 홈플러스였기 때문에 지인들도 많이 왔었고 나도 일하기 전부터 곧잘 오던 곳이었다. 아니 그런데 재팩이라니.
지금도 그렇지만 누구한테 사기치고 금전적 이득을 취하는 걸 제일 싫어한다. 하지만 그때 나는 불과 24살이었고 매장의 불필요한 적자가 많은 것 또한 사실이었다.(사실 적자의 반은 몰래 가져가는 도둑들 때문이다.) 그렇기에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는데 그때부터 마감조 고정을 요청했다.
남들보다 힘든 마감조기에 아무도 군소리가 없었다.
그리고 재팩을 하지 않기 위한 나만의 방법을 만들기 시작했다. 먼저 같은 시간 대에 근무하는 굴비, 맥반석 오징어, 회 등 다양한 매장에서 근무하는 이모님들과 옆 축산매장 형들의 일을 도왔다. 넉살좋게 서로 농담도 하고 통화할 때는 매장도 잠시 봐줬다. 소시지를 팔 때 회세트를 같이 권하고 오리훈제를 팔며 굴비도 같이 권했다. 그렇게 이모님들과 형들을 내 편으로 일단 만들었다. 내 장사하는데 왜 그들을 내 편으로 만들었냐고?
지금도 그런진 모르겠지만 당시 대형 마트엔 2+1, 1+1 등을 맘대로 할 수 없었다. 10시 마감이면 7시 30분 이후에 2+1을 할 수 있었고 9시에 1+1을 할 수 있었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라도 더 팔기 위해 경쟁하고 그러다 매장 전체의 수익이 급감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좀 더 빨리 시작했다. 6시에 저녁을 먹고 담배 태우고 안마의자에서 좀 쉬고 오면 일곱시에 중간조가 퇴근한다. 그때부터 1+1 행사를 했다. 심지어 같은 소시지끼리, 돈까스끼리 묶지도 않았다. 소시지를 사면 돈까스를 주고 돈까스를 주면 소시지를 주었다. 당시 한팩당 가격이 만원이었으니 만원이면 소시지와 돈까스가 해결된다. 그러다보니 홈플러스에서 가공육 코너에 있는 정상 공산제품은 안산다. 우리 매장으로 와서 만원만 내면 돈가스랑 소시지가 각 6~700g씩인데 바보가 아니고서야 비엔나소시지나 의성마늘햄을 살 고객이 없다.
그러다보니 홈플러스쪽에서 늦게나마 상황을 파악하고 매장으로 와서 행사를 줄일 것을 당부했다. 알겠다고 수긍하자 다른 매장의 내 편들이 움직여주기 시작했다. 먼저 명시적으로 행사 시간이 규정되지 않은 점과 꼭 경쟁상품이라고 볼 수 없다는 것이 내 편들의 논리였다. 결국 홈플러스에서는 자체 행사를 용인했고 나는 대신 마이크 사용을 하지 않겠다고 물러날 명분을 주었다.
1차적으로 걱정했던 홈플러스쪽의 제재도 없어졌겠다. 이제 내 맘대로 행사를 진행했다. 2+1에서 1+1, 재고가 많을 때는 1+2까지 벌였다. 그럴 때마다 손님들이 2+1을 잘못 말한게 아니냐며 의심했다. 물론 1+2는 크게 떠들지 않고 단골 만들기용으로 주로 사용했다. 뜨내기 손님이 아니라 1주일에 2~3회 이상 오는 눈에 익은 손님들에겐 선심 베풀듯 1+2를 권하며 단골로 만들었다.
또 양념육을 판매할 때 국물 무게까지 g당 가격으로 고기와 똑같이 나가기에 건더기만 퍼준 후 무게를 재 가격을 붙였다. 국물이랑 야채 좀 더 주라는 고객에게 기다려보라고, 국물도 돈 주고 사갈거냐 물으며 건더기만 담아주고 국물과 야채 조금을 서비스마냥 담아주었다. 가이드처럼 팔 때보단 당연히 저렴하게 나간다. 다만 재고도 그만큼 빨리 나간다. 아주머니 고객들은 특히 좋아하며 내가 있지 않으면 고기를 사러 오지도 않았다. 내가 아니면 국물을 서비스로 주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매장 전체 고객이 나 혼자 있는 저녁 8시 이후에 찾아왔다.
그렇게 1달을 했을까. 한달에 약 2천만원 정도 적자 나던 것이 흑자로 전환되었다. 본사에서는 그 이유를 궁금해했으나 1+2를 했다고 말하진 못했다. 그저 단골들이 많아졌고 내 주변 지인이 많아서라고 대답했다. 흑자로 전환된 이유는 간단했다. 그냥 버리던걸 고객에게 주다시피 다 없앴다. 원래는 재팩을 하지 않기 위해 다 없애버리다가 고객에게 선심을 쓴 것인데 고객들 입장에서는 안올 이유가 없거니와 아이들이 좋아하는 소시지와 돈까스가 주력상품이다보니 자주 올 수 밖에 없었다. 한달에 2천만원씩 적자를 봐 철수까지 고민하던 매장은 한달에 영업 이익으로 3천만원까지 달성하였고 내가 그만둘 때엔 2살 아기가 삼촌 이제 못본다고 울며 떼를 쓰기까지 했다. 단골들은 내가 없음을 슬퍼한 것보다 서비스가 줄어든 것에 실망했겠지만.. 매장은 내가 입대하며 그만둔 지 약 2년 후 철수하였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내 개인의 마음은 좋았을지언정 장기적으로 매장에 좋은 방법이라곤 볼 수 없었다.
얼마전 방송에서 백종원 대표가 퍼줘서 망하는 집은 없다고 말한 적이 있고 실제로 장사가 잘되는 집은 퍼줘서 망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음식장사만 그럴까. 당장 수익이 나지 않을 수는 있다. 무료로 고객을 확보해서 유료로 전환하는 과정이 무엇보다 더디고 힘들 수는 있다. 하지만 서비스가 괜찮다면 고객은 월에 10만원이든 20만원이든 그 가치에 맞는 대가를 지불할 용의가 있다.
흑자 전환은 분명 어려운 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고객을 먼저 만드는 일에 겁먹어서는 안된다. 꼭 무료로 주지 않더라도 고객을 끌어모을 방법은 차고 넘친다.
오랜만에 호프집에서 소시지를 베어물다 십년 전이 떠올라 그땐 어리긴 어렸구나 하며 추억을 끄집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