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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영준 Dec 19. 2024

가장 불편한 글

2024.06

대학 시절, '은교'의 원작자로 유명한 박범신 선생님의 수업을 들을 일이 있었다. 박범신 선생님과는 그때의 인연으로 지금까지도 연락을 주고 받으며 심적으로 많이 의지하곤 하였다. 강의명은 '소설창작으로의 초대' 였다.

선생님과의 추억이 여럿 있지만 오늘 찬란히 부서지는 노을을 보다보니 유독 생각나는 시간이 있다. 선생님은 수업이 끝날 때 과제를 내어주시고 다음 시간에 과제를 받은 뒤, 그 다음 주에 그 중 나눌만한 것들을 아무 책상에 걸터앉아 읽어주곤 하셨다.

오늘 낸 과제를 이주 뒤에 꼽아 읽어주시는 형태인데 이름이 불리면 인정받은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다행스러운건지 내 과제는 매 주 읽혀졌다.

중간고사가 끝난 오월 말께의 수업 때, 유서가 과제였던 적이 있었다. 처음 써보는 유서를 어찌 써야하는 지 감은 잡히지 않았다. 21살의 내가 유서를 쓸 일은 없었다. 제목은 끝, 그리고 시작에 대하여로 대충 잡아두고 적었다.

유서를 쓰고 낸 뒤, 여러 생각에 잠겼다.

그 다음 제자들의 유서를 다 읽어보신, 환갑이 훌쩍 넘은 선생님은 인상 깊은 유서를 몇 개 읽어주다가 여러 말씀을 해주셨다. 그리곤 날이 좋으니 오늘은 야외 수업을 하시자며 밖에 나가자고 하셨다.

햇살이 뜨겁던 날이다. 선생님은 내게 혹시 지금 열려있는 술집이 있는 지 물어보신 후, 그곳으로 같이 향했다. 오후 3시, 교양수업이라고 제자들에게 너무 무심했다며 막걸리를 마시며 유서에 대한 각자의 사정을 한 번 더 언급하기 시작했다. 그리곤 한 명 한 명 대작을 해주던 선생님은 나오며 취했다.

햇살 좋은 날, 너른 바위 위에 눕다시피 앉아있던 선생님은 내게 하나를 물었다.

"영준아, 날이 이렇게 좋은데 말이야. 죽음을 적당히 무서워해야해. 안그러면 나쁜 사람이 될지도 모른단다. 그리고 이 햇살과 바람이 네 앞에 없음을 무서워하고 너의 그 젊은 날이 쇠락함을 무서워해야한단다. 그러면 항상 젊게 살아가고 의미있게 살아가려고 하지, 죽음은 그걸로 떨쳐지는거야. 니가 죽음을 두려워하지말고 죽음이 너를 버겁게 해봐~ 삶은 살아가는 것의 힘으로 멋지게 태어나는거야."

교과서 속 말투같지만 실제 선생님 말투가 저런 말투시다.

그 뒤로 한동안 짬이 날때마다 유서를 썼다. 나쁜 생각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다잡기 위해.

유서를 쓰면 내가 당장 하고 싶은 것이 떠올랐고 진정 원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번잡한 머리를 시원하게 청소해주었고 내가 가야할 길을 내가 알려줄 수 있었다. 

너무 쓴 지 오래되었는데 이제 다시 슬슬 써볼 때가 온 것 같다. 그야말로 언제 생이 조각날 지 모르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아래는 오글거리지만 21살 때의 짧은 유서 과제 전문.

지금 나는 끝에 와 서있다. 나의 끝은 너의 시작일지 모르고 지나친 나의 과정일지도 모른다. 너무 두렵다. 들리는 것은 천지간에 내 숨소리뿐이고, 보이는 건 희미하게 굴러들어온 구슬 같은 빛뿐이다. 아, 다시 시작인가. 괜스레 감은 나의 눈 사이에 너와 함께 했던 시간이 스러진다. 너는 내가 죽으면 나를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아니, 나는 네가 날 끝까지 기억해 주길 바란다. 욕심이겠지만, 아주 큰 욕심이겠지만. 지금 새로운 시작을 앞두고 솔직해지는 내가 할 수 있는 소리가 단지 칭얼거림이기 때문에 네가 조금은 이해해 주길 바라는 지도 모른다.
 사실, 나는 내 앞에 닥친 죽음이 무섭지 않다. 에피쿠로스는 메노이케우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존재하는 한 죽음은 우리와 함께 있지 않으며, 죽음이 오면 이미 우리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죽음은 우리에게 아무 것도 아니라고. 처음 이 말을 읽었을 때부터 나는 에피쿠로스처럼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 다만 내가 두려워하던 것은, 그리고 지금도 내가 가장 두려워하고 있는 것은 내 기억이 송두리째 없어지는 것이다. 내가 있던 자리에 공백이 들어차 있고 나의 존재는 너에게 각인되지 못하는 그 순간과, 너와 함께했던 나의 순간들이 연기처럼 사라지는 것에 대하여. 그것이 나는 두려운 것이다. 나는 그것이 두려워 끊임없이 기록했고 이야기를 했지만 결국 그것도 사라질 것에 다름 아니라는 것을 지금에서야 안다. 결국 영원히 남는 것은 비릿한 너의 기억 사이에 있는 나의 흔적뿐이다. 그 흔적을 남기는 것은 나겠지만 사실 나는 그것에 대한 자신이 서지 않는다. 흔적을 그리는 것으론 나의 꿈을 이루지 못한다. 나는 너에게 나의 흔적을 새겨내어야 한다. 하지만 그것이 나의 뜻대로 바로 서지 않고, 너에게서 거부 당할지 모른다. 아니 이미 그러하였는지도 모른다.
 어둠 속에서 나는 너에게, 너희에게 다시 묻는다. 아니, 그 전에 내게 다시 묻는 것이 좋을지 모른다. 나는 너희에게 한 것이 없는 데 너희가 나에 대해 무엇을 기억해주길 바랄까. 남길 것이라곤 하나 없고 따로 좋은 일을 한 적도 없는데, 나에게로 네가 무슨 기억을 해주고 무슨 흔적 속에 살아주길 바라는 걸까. 단지 욕심 속에서 나의 일이 그렇게 향하는 것 같다. 욕심 이라서야 뭐가 될까. 번잡한 머릿속에 글도 번잡해져 내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모르겠다.
 다만 나는 너를 사랑했고, 너희를 아꼈고 너희의 일부가 되기를 바랐다는 말만 다시 한 번 하고 싶다. 이제 내가 없어지거든 나의 찢겨진 영과 육을 너희가 나누어 가져준다면, 천국이 부러울까. 부디, 다시 한 번 나를 생각해주길.
 
고맙다, 나의 사랑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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