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이 얼마 안 남았다. 2시간 뒤면 출근해야 한다. 이렇게 격하게 출근하기 싫을 때면 생각한다. 지구가 망해버렸으면 좋겠다고. 지구가 망한다고 해도 지금 당장 망할 리는 없고, 사실 지구가 망해버렸으면 좋겠다는 마음은 지금보다는 더 잘 살고 싶다는 말이기도 하다. 이런 마음으로 하루하루 살아내고 있는 당신을 위한 책을 준비했다. 독서라니 이 무슨 고리타분하고 뻔한 방법이냐 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이 글을 끝까지 읽어주기를 바라면서 글을 시작해 본다. 매 순간 나의 이야기를 들어줄 친구가 있다면 나는 독서를 시작하지 않았을 것이다. 슬프게도 현실은 그렇지 않다. 내가 오늘 하루 고됐던 것처럼 친구의 하루도 그럴 수 있기에 나의 불행을 선뜻 외치기 힘든 순간이 있다. 사실 많다. 아마 우리는 사는 동안 자주 혼자일 것이고 가끔 할께일 것이다. 그럼 그 혼자인 순간을 어떻게 견뎌 내느냐가 우리의 인생을 결정할 터인데 나는 강력하게 독서를 추천하고 싶다. 내일이 오지 않았으면 좋겠을 때, 하지만 다가오는 내일을 막을 수 없을 때 조금은 더 살 용기를 주는 책 다섯 권을 소개해 보겠다.
*이 글은 지극히 주관적이며 글쓴이 본인의 취향을 담고 있음을 밝힌다.
고등학교 때 처음 읽고는 인생이 골짜기에 빠질 때마다 찾아서 읽는 소설책이다. 언제 어디서든 읽을 수 있도록 집에 한 권, 전자책으로도 한 권 갖고 있다. 총 5편의 단편 소설로 이루어져 있는데 소설의 주인공들 모두 각자 인생의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사람들이다. 직장에서 일어난 테러의 피해자가 되어 하루아침에 건강을 잃거나, 약혼한 남자의 외도를 목격하거나, 사랑 하는 사람을 멀리 유학 보내기도 한다. 크고 작은 사건들 속에서 주인공들이 어떻게 남은 삶을 살아내는지를 보고 있노라면 나도 모르게 용기가 생긴다. 무엇보다 나의 삶을, 내 앞에 일어난 일들을 끌어안을 용기가 생긴다. 필체도 담담하고 스토리도 물 흐르듯이 흘러가서 부담 없이 읽기 좋다. 용기가 필요하지만 깊고 진지한 책은 읽기 싫을 때, 그럴 힘도 없을 때 가벼운 마음으로 막다른 골목의 주인공들을 만나보길 바란다.
슬아 작가님의 서평집이다. 서평이란 쉽게 말해 다른 책에 대해 소개하는 글이다. 처음에는 서평집인줄도 모르고 제목에 끌려 읽었다가 이제는 다시 태어나고 싶을 때마다 이 책을 편다. 이 책은 무엇보다 굉장히 짧다. 흔히 알고 있는 시집만큼의 두께이다. 하지만 이 짧은 분량에 가족, 친구, 연애, 사랑의 모든 이야기가 담겨있다. 편지 형식의 글이 많은데 그래서 더 위로가 된다. 나를 매우 아끼는 사람이 나를 위해 꾹꾹 눌러쓴 편지를 읽는 기분이 든다. 요즘 편지를 쓰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편지를 쓴다는 건 상대를 감동시키기도 하지만 나 자신을 감동시키는 일이기도 하다. 이 서평집을 읽고 나면 두 가지가 하고 싶어진다. 하나는 이 책에 나온 다른 책들을 읽어보고 싶어지고, 하나는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편지가 쓰고 싶어진다. 그리고 딱 그만큼 더 살고 싶어진다. 일단 책도 읽어야 하고 편지도 써야 하므로.
이 책을 왜 이제야 읽었을까 싶을 만큼 재밌다. 왠지 베스트셀러는 읽지 않게 되는 고약한 홍대 병이 있는데 그 홍대 병을 낫게 해준 책이다. 유명한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참지 못하고 하루 만에 다 읽어 버린 소설이기도 하다. 이들의 사랑 이야기가 너무 흥미진진해서, 꼭 해피엔딩이었으면 좋겠어서, 외계인과 사람의 사랑 이야기라서 특별한 게 아니라 이렇게 사랑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특별해서 나는 멈추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끝까지 읽어버렸다. 판타지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도, 사랑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에게도 추천한다. 두 마리 토끼를 아주 꽉 잡고 있는 소설이다. 아프고 어둡고 슬픈 이 세계를 다시 한번 함께 살고 싶다고 말하는 이들 앞에서 나의 지구멸망 바람은 눈곱만큼 작아져 버린다. 가장 친한 친구의 연애 이야기에 배 아파하는 당신도, 이제 사랑은 지긋지긋한 당신도, 사랑이 하고 싶은 당신도 모두 읽었으면 좋겠다. 이들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사랑할 용기를 주니까. 어딘가에는 이런 사랑이 존재한다는 희망을 품게 하니까. 아직 이렇게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지구는 절대 망하지 않을 것이다.
정말 인류애가 바닥까지 떨어진 어느날 서점에 가서 발견한 책이다. 일단 표지가 너무 예뻤다. 그리고 책 홍보 글이 마음에 쏙 들어왔다. "오직 이유 없는 다정함만으로", "얼굴과 얼굴을 마주한다는 것, 바로 그게 이야기를 주고받는 일이라는 것." 이유 없는 다정. 얼굴을 마주하는 일. 이야기를 주고받는 일. 이 세 개의 키워드만으로도 나는 이 책을 사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무엇보다 김연수 작가님의 다른 소설 '이토록 평범한 미래'를 너무 감명 깊게 읽은 터라 김연수 작가님이 말하는 다정은 어떤 것인지 궁금했다. 이 책은 짧은 여러 편의 단편 소설이 모여있는 소설집이다. 특히 마음에 드는 건, 대놓고 다정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하지만 다 읽고 나면 알게 된다. 이유 없는 다정이 한 사람의 삶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치는지. 그리고 그 한 사람이 어떻게 세상을 바꾸는지. 책의 맨 뒤에는 이 책의 플레이리스트가 수록되어 있다. 이 책은 여러 번의 낭독회를 가졌는데, 글을 낭독할 때 틀어놓은 노래라고 한다. 그냥 책을 읽으면서 틀어놓기에도 좋은 플레이리스트이다. 다정함을 잃기 쉬운 세상이다. 세상에 나에게서 다정함을 빼앗으려 할 때마다 나는 이 책을 펴고 싶다.
내가 애정하는 드라마 '이번 생은 처음이라'에 등장한 산문집이다. 여자주인공 지호가 삶의 후반전을 준비하기 위해 집을 떠날 때 남자주인공 세희가 지호에게 주려다가 만 책이다. 나는 드라마를 좋아하는 만큼 이 책도 좋아하게 되었다. 김예진이 선정하는 읽고 읽고 또 읽은 책 탑3에 드는 책이다. 담백해서 자꾸만 찾게 되는 밥 같다. 박준 작가님은 여러 권의 시집을 내신 시인이기도 하신데 그래서 그런지 글들이 산문 같기도 시 같기도 하다. 책에서 묻어나는 어떤 쓸쓸함 때문에 처음에는 가을에 어울리는 일이라고 생각했으나 봄에도 퍽이나 잘 어울리는 책이다. 함께였던 봄을 기억하는 혼자가 봄을 기다리며 쓴 글 같다. 나는 요즘 지칠 때마다 오고 있는 봄을 생각한다. 곧 필 꽃들을 생각한다. 그럼 조금 힘이 난다. 봄바람 맞으며 이 산문집을 읽는다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할 것이다. 그리운 사람이 생각나면 주저 말고 전화를 걸거나 보고 싶다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