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오래 알고 지낸 사람을 미워해 본 적 있는가. 그 사람에게 건 기대가 크면 클수록 상처는 커지는데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어쩔 수 없다고 쓰면서도 생각한다. 정말 어쩔 수 없는 걸까. 정말 어쩔 수 없었을까. 세상에는 어쩔 수 없지 라고 말하면 넘어가지는 것들이 너무 많다. 쿨함이 넘쳐흐르는 세상이다. 다들 그렇게 마음이 넓은지. 괜찮지 않은 걸 괜찮다고 말해야 할 때마다 나는 도망치고 싶어진다. 애써 쿨한척하는 걸 들킬까 마음이 조급해진다. 내 앞의 당신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웃고 있고, 입으로는 뾰족한 말을 하고. 나도 웃으면서 괜찮지 않다고 말해볼까. 하하하 나 하나도 괜찮지 않아요. 그런 말 싫어요. 삼가주세요. 나는 괜찮지 않은 게 당신은 괜찮다면 그건 내가 이상한 걸까. 나는 당신을 미워하고 싶지 않았는데. 미워하고 싶지 않은 사람을 미워하는 마음은 조금 슬프다.
2. 나는 너를 사랑하는 만큼 미워하지. 양다일 노래처럼 미워하며 사랑하는 일이 우리 사이에는 자주 일어나. 너를 넘치게 사랑했다가, 넘치게 미워했다가. 사랑하니까 기대고, 기대하고. 기다리고. 그러다가 또 미워하고. 어쩌면 사랑은 나를 미워했다가 너를 미워했다가를 반복하는 과정일지도 모르겠어. 내가 미워질 때는 너에게 기대어 나를 사랑하고, 네가 미워질 때는 그런 나를 탓하기도 해. 그러면서 우리는 서로를 사랑한다고 말해. 정말 이상한 일이야. 미움 없는 사랑이란 게 이 세상에 있을까. 나는 너를 미워하는 만큼 사랑해.
3. 아 요즘은 내가 너무 미워요. 답답한 나. 한심한 나. 나를 미워하는 채로 살아간다는 건 참 고된 일이에요. 하지만 내가 밉다고 나를 안 볼 수는 없잖아요. 내가 너무 미울 때는 그냥 입으로 소리내 말하는 거예요. 아 이런 답답한 놈! 왜 이렇게 사니! 정신 차려라! 이러고 나면 좀 괜찮아져요. 저렇게 말하는 내가 웃겨서 또 막 웃어요. 내가 밉다는 건 어떤 걸까요. 우리는 주로 어떨 때 나를 미워하나요. 얼굴이 못나 보일 때? 마음이 못났을 때? 내 상황이 못났을 때? 세상에는 나를 미워할 이유가 넘쳐흘러요. 그런데 내가 나를 사랑해야 한대요. 그래야 남도 나를 사랑할 수 있대요. 뭐 사랑까지 해야 하나요. 미워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것 같아요. 내가 밉지 않은 정도만, 딱 그 정도만.
백만 송이 장미가 피려면 아직 멀었나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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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은 가수 심수봉님의 노래 '백만 송이 장미'에서 따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