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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어 Mar 05. 2024

인정과 존경.

  어른이 된다고 느낄수록 글 쓰는 게 어려워진다. 근 며칠간 제법 바빴는데 저번 주에는 무얼 하다가 한 주가 지났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그런데 사람이 너무 바쁘면 화가 많아지는 듯 하다. 조그마한 일에도 쉽게 욱하고, 기분이 오르락내리락. 바쁘긴 바쁜데 중요한 걸 잊고 사는 기분이고. 그렇게 시간이 지나가는 걸 체감하지 못 한 체로 며칠을 보냈다. 그러면서 조금 어른이 되었다고 생각했다. 누군가 들으면 풉하고 웃을 말이지만, 그냥 나는 그렇게 느꼈다. 예전에는 몰랐던 것들을 알아버린 기분이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이런 것들이다.

 

  어릴 때부터 회사에서 돌아오신 아버지를 항상 인정해 주고 존경해야 한다는 말을 들으며 자랐다. 아버지가 열심히 일한 덕에 우리가 지금처럼 잘 살 수 있는 거야! 따듯한 집에서 따듯한 밥을 먹고, 새옷을 입고, 여행을 다니고. 너무 당연하게 들어왔던 말이라 깊이 생각하지 않았는데 며칠 전 퇴근길에 수혁이와 전화를 하며 집으로 향하면서 이런 대화를 나눴다. 아주 일상적인 대화였다. 일이 바쁘고 힘들었고 배가 고프다는 말, 수고 많았다며 어서 집으로 돌아가 푹 쉬라는 말, 다음에 만나면 무얼하고 놀지에 대한 계획 등등....

 

  그런데 문득 아빠가 생각이 나는 것이다. 나보다 훨씬 많은 출퇴근을 반복 했을 것이고 몇배는 큰 다짐을 하고 집을 나서야 했을 것이다. 그런 하루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 아빠를 반기는 엄마와 우리가 있고, 아빠는 엄마의 포옹과 딸들의 인사를 받고 난 후에야 직장인으로서의 하루를 마칠 수 있었을 것이다. 양복을 벗고, 집밥을 먹으며 사소한 대화들을 나누고. 나는 그제야 인정과 존경의 의미가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내가 계속 알바생 김예진이 아니라 다시 사람 김예진으로 돌아올 수 있는 건 당신들의 인정과 존경 덕분이란 걸 이제야 알았다. 수고했다는 말 한마디와, 집에 들어서면 따듯하게 나를 바라보는 엄마의 눈빛과 내일을 기다리게 만드는 친구들과의 약속은 내가 다시 나로서 존재 할 수 있게 해준다. 힘듦에 머무르지 않도록 해준다.

 

  나는 시간이 지나도 내가 여전히 나였으면 좋겠다. 기쁨과 슬픔에 무뎌지는 어른이 되고 싶지 않다. 그런 건 강해지는 게 아니라 무뎌지는 거라고 생각한다. 진짜 강한 건 서로를 더 인정해 주고 존경해 주는 거 아닐까. 말하기보다는 듣는 법을 배우고, 누구나 다 힘들다며 질책하기 보다는 수고했다는 말을 건네고, 조금 더 좋은 너와 내가 될 수 있도록 지켜봐 주는 여유를 갖는 것. 그런 인정과 존경을 부지런히 실천하는 어른이 되고 싶다.


 어른이 된다는 건 내가 짐작해 볼 수 있는 마음이 더 많아지는 일 같기도 하다. 그래서 나는 자꾸만 말을 더 줄여야겠다고 생각한다. 겪어보지 않고는 아무도 모르는 거니까. 나의 사랑하는 친구들에게 요란한 말 대신 끝없는 인정과 존경을 보내고 싶다. 내일은 부디 나를 조금 더 지키는 하루가 되기를. 우리는 서로의 곁에서 조금 더 좋은 어른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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