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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어 Mar 11. 2024

노래방에서,

  우리 저번 주에 노래방 간 거 기억나? 맛있는 밥을 먹고, 커피도 마시고, 사진도 찍고 밖으로 나왔는데 바로 집에 가기에는 너무 아쉬웠잖아. 흐음 우리 노래방 갈까? 라는 너의 한마디에 고민 없이 바로 노래방으로 향했어. 시간은 9시 정도밖에 되지 않았고. 우리는 술 없이도 충분히 즐겁고. 헤어지기에는 아쉽고. 무엇보다 우리는 아직 젊고. 평일에는 한 시간 반에 오천 원 하는 코인 노래방. 평일이라 그런지 사람은 많지 않았고, 우리 또래로 보이는 직원이 앉아서 공부하고 있었는데 무미건조한 표정으로 우리를 맞이했어. 물론 우리는 그 무미건조함을 별로 신경 쓰지 않으며 우리에게 배정된 방을 찾아 들어갔지.

 

  보통 노래방에 가면 어떤 곡을 첫 곡으로 선정해? 그날의 분위기에 따라? 아니면 항상 처음 부르는 곡이 정해져 있어? 나는 딱히 정해진 노래는 따로 없고 그냥 그날 부르고 싶은 곡을 부르는 편이야. 딱 떠오르는 곡이 없을 때는 주로 인기차트를 이용하지. 인기차트! 하는 경쾌한 소리와 함께 사람들이 노래방에서 많이 부르는 노래들이 순위별로 주르륵 떠. 밑으로 밑으로 내리다 보면 마음에 드는 노래가 하나쯤 있기 마련이거든. 오늘의 첫 곡은 원필의 "행운을 빌어줘"야. 올해 1월에 자주 들었던 노래인데 노래방에서는 그날 처음 불러봤어. 노래방에서 노래를 부르면 좋은 점이 뭔지 알아? 가사를 다시 한번 곱씹게 된다는 거야. 매일 들어도 몰랐던 가사를 노래방에서 알게 되는 경우가 많거든.


앞으로 총 몇 번의 몇 번의 희망과

그리고 또 몇 번의 몇 번의 절망과

차가운 웃음 혹은 기쁨의 눈물을

맛보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이제 기나긴 모험을 떠나는 주인공이 앞으로 몇 번의 희망과, 몇 번의 절망을 맛보게 될지 모르겠지만 아무쪼록 행운을 빌어달래. 평소에 이 가사가 좋아서 자주 들었던 건데 그 다음 가사는 더 좋은 거 있지. 차가운 웃음 혹은 기쁨의 눈물. 보통은 반대로 표현하니까. 기쁨의 웃음 차가운 눈물. 이 노래 속 주인공은 세상에는 차가운 웃음과 기쁨의 눈물도 있다는 걸 아는 사람인가 봐. 앞으로 좋은 일만 있을 거라고 말할 수 없지만, 어쩌면 희망보다는 절망이 더 많을 수도 있지만 아무쪼록 행운을 빌어달라는 말이 좋아. 다시 돌아오면 더 나은 내가 되어있을 거라고 말하는 그 배짱이 좋아. 이 노래를 부르는 동안은 내가 그런 사람이 된 것 같아서 신이나. 나는 생각보다 그렇게 희망적이지 못하거든. 옆에서 네가 같이 불러주니 신나서 더 크게 불렀던 것도 같아. 서로의 목소리에 기대며 삑사리 따위는 신경 쓰지 않고 목소리를 높였지. 부르는 내내 나에게 기대와 응원을 보내주는 친구들을 생각하기도 했어.


너와 나 둘이 정신없이 가는 곳

정처 없이 가는 곳 정해지지 않은 곳

거기서 우리 서로를 재워주고

서로를 깨워주고 서로를 채워주고

 

노래방에서 빠질 수 없는 노래가 있어. 분위기 띄우기에도 최고이고, 모르는 사람이 없는 노래. 바로 싸이 노래야. 첫 도입부가 얼마나 설레는지. 나는 후렴보다 항상 도입부가 더 좋아. 곧 터질 하이라이트를 기대하며 부르는 부분이 바로 저 부분인데 너와 나 둘이 정신없이, 정처 없이, 정해지지 않은 곳을 향해 간대. 그곳에서 서로를 재워주기도 하고 깨워주기도 하고 채워주기도 한대. 그럴 수만 있다면 우리가 가는 곳이 어디든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 하이라이트가 갑자기 낮아지든, 갑자기 높아지든 다 부를 수 있을 것만 같아.


내 어린 시절 우연히 들었던 믿지 못할 한마디

이 세상을 다 준다는 매혹적인 얘기 내게 꿈을 심어주었어

말도 안 돼 고개 저어도 내 안에 나 나를 보고 속삭여

세상은 꿈꾸는 자의 것이라고 용기를 내 넌 할 수 있어

 

  정말 믿지 못할 한마디야. 세상이 꿈꾸는 자의 것이라니. 너무 오글거리잖아. 애니메이션 원피스의 오프닝 곡인데 유튜브에서 우연히 듣게 된 후로 노래방에서 꼭 부르는 노래가 됐어. 오글거리는데 왜 부르냐고? 다들 말하지 못하는 오글거리는 꿈 하나씩은 있으니까. 너무 멀고 높이 있어서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해도 자꾸만 꾸게 되고 상상하게 되는 꿈. 나는 이 노래 속에서 마음껏 꿈꾸는 사람이 돼. 이미 꿈을 이룬 사람처럼 마음이 막 벅차오르기도 하고.

 

  나는 이날의 노래방을 잊지 못해. 감히 최고의 노래방이었다고 말할 수 있어. 허무맹랑하고, 근거 없고, 마냥 낙천적인 말들을 마음껏 내뱉을 수 있어서 즐거웠어. 말과 글로는 전하기 힘든 마음을 노래로 전할 수 있었어. 우리가 불렀던 모든 가사가 우리의 삶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새로운 모험을 앞둔 우리 앞에 어떤 절망과 어떤 희망이 나타날지 모르겠지만 우리 일단 행운을 빌어주자. 그렇게 서로를 재워주기도 하고 채워주기도 하고, 꿈을 꿨다가 잃었다가 하면서. 노래방에서 배운 사랑과 용기와 지혜와 힘을 노래방 밖에서도 오래도록 간직하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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