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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어 Apr 16. 2024

아무도 청탁하지 않는 글의 외로움.

  내 글은 잘 알다시피 그 누구도 청탁하지 않는다. 청탁이란 '청하여 남에게 부탁함'이라는 뜻으로 청탁하지 않는다는 건 아무도 나에게 글을 써달라고 부탁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슬아 작가님은 아무도 자신에게 글을 청탁하지 않았지만 학자금 대출을 갚기 위해 글을 써서 직접 구독자들에게 전달하는 글 메일링 서비스를 시작했다. 한 달에 약 만 원 정도의 돈을 내면 주말을 제외한 월화수목금 총 5일 동안 구독자들의 메일함에 5편의 글이 전달되는 것이다. 그렇게 시작된 일간 이슬아 프로젝트는 대성공을 이루게 되었고, 지금의 이슬아를 탄생시켰다. 이 이후로는 메일링 서비스를 시작한 작가들이 아주아주 많아졌다. 출판사를 거치거나 큰 비용을 들이지 않아도 자신의 글로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럼 너도 한번 시작해 보면 되지 않느냐고? 물론 글을 써서 메일로 보내는 일은 전혀 어려운 작업이 아니다. 글과 메일계정만 있다면 언제 어디서든 시작할 수 있다. 문제는 나에게 매일 글을 쓸 힘이 있는가, 내 글을 구독해 줄 사람이 있는가이다. 뭐든 안 하는 것보다는 하고 후회하는 게 낫다고 생각하지만 이건 너무나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자 매일 한편의 글을 보내 드립니다! 안 읽는 것보다는 읽는 게 더 나은 글입니다! 라고 구독자를 모집했는데 아무도 신청을 하지 않는다면…? 나는 그 상실감을 감당할 자신이 없다. 내 눈으로 나의 현실을 직시하는 일이란 때때로 매우 잔인한 일이다. 사람은 궁지에 몰리면 무엇이든 하게 된다고 했는데 나는 아직 차일피일 미룰 여유가 있나 보다.


 나의 글쓰기 작업은 사실 매우 게으르다. 일주일에 두 편의 글을 올리겠노라 선언해 놓고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한 적도 많다. 많으면 일주일에 두 번, 작으면 한번, 가끔 일주일에 한 편의 글도 올리지 못할 때도 있다. 그럴 때면 두 가지의 마음이 공존한다. 나의 글을 기다려주는 사람들에 대한 미안함과 과연 내 글을 기다리는 사람이 있을까에 대한 의문. 전자는 전자대로 미안한 일이고 후자는 후자대로 조금 씁쓸한 일이다. 미안한 마음도 씁쓸한 마음도 별로이기에 그냥 일단 적고 올리는 편이 제일 좋다.


 보통 9시에 수혁이와의 전화가 끝나면 나는 곧장 일어나 샤워를 한다. 씻고 나면 새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씻지 않고 잠들 수는 있어도 씻지 않고 글을 쓸 수는 없다. 오늘의 묵은때를 다 씻어내고, 얼굴에 패드를 챱챱 붙이고, 머리를 말린 후 책상에 앉으면 그때부터 마음이 조급해져 온다. 머릿속에 둥둥 떠다니는 문장들을 잊기 전에 어서 글로 옮겨야 할 것만 같다. 두근거리는 마음을 애써 진정시키고 기도를 한다. 오늘도 나에게 글을 쓸 힘과 용기와 지혜와 사랑을 달라고. 나의 글에 내가 담기기보다 당신의 사랑이 담기게 해달라고. 글은 나 혼자의 힘으로 쓰는 게 아니라는 걸 깨달은 이후에는 이 기도를 절대 빼먹지 않는다. 글을 쓰는 건 나지만 이 글에 등장하는 건 내 주변의 많은 친구들이기에 그들에게 항상 고마운 마음을 갖고 있다. 쓰면 쓸수록 고마운 것들이 많아져서 아무도 청탁하지 않아도 계속 글을 쓸 수 있는지도 모른다. 글을 마무리하고 브런치에 올린 뒤, 약간의 편집 과정을 거쳐 인스타그램에도 올린다. 그러고 나면 나는 핸드폰의 모든 알람을 끄고 잠시 멍때리는 시간을 갖는다. 나 자신을 추스를 시간이 필요하다. 글을 쓰고 나면 매우 부끄러운 상태가 된다. 나의 글을 세상에 보여주는 일은 아무리 해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그래도 쓴다. 아무도 청탁하지 않고 나에게 부탁하지 않으며 그렇다고 돈을 받고 구독자를 모집할 용기도 없지만 일단 쓰고 본다. 계속해서 쓸 수 있는 힘이 대체 어디에서 나오는지 모르겠다. 글은 나에게 돈도 명예도 가져다 주지 않지만 계속해서 살아갈 힘을 준다. 글로 얻은 힘을 다시 글을 쓰는 데 쓴다. 글을 쓰고 나면 나는 다시 태어난 것 같다. 현실의 나는 여전히 약하고 부족하며 두려워하지만 글 속의 나는 더 당차고 조금 뻔뻔하기도 하다. 뻔뻔하게 너를 사랑한다고 말하고 뻔뻔하게 삶이 너무 좋다고 말한다.


 말하지 않고 티 내지 않아도 어디선가 내 글을 읽고 있을 사람들을 생각한다. 나와 매우 가까운 사람일 수도 있겠고 전혀 모르는 사람일 수도 있겠다. 나의 글은 아무도 청탁하지 않는 글이지만 외로운 글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내 글을 읽어주는 사람들과 조금씩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에 기대어 오늘도 글을 쓴다. 내가 다시 태어날 때마다 나의 독자들도 다시 태어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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