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다는 나의 힘.

by 단어

나는 가끔 불안해진다. 불안은 소나기 같아서 언제 올지도 모르고 언제 사라질지도 모른다. 불안이 오면 그저 맞고, 떠나갈 때가 되면 이제 지나갔구나~ 할 뿐이다. 불안을 이기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이긴다기보다는 잘 지나가는 법이라고 표현하는 게 더 알맞을 것이다. 산책하기, 음악 듣기, 잠들기, 운동하기…. 다 좋지만 사실 진짜 불안할 때는 그 무엇에도 집중하기 어렵다. 아무리 좋은 길도 눈에 들어오지 않고 아름다운 가사도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들어오지 못하고 눈과 귀 밖에서 앵앵 맴돌기만 한다.


우도 가끔 불안해진다. 우는 자꾸만 불안해하는 자신이 이상하다. 왜 불안한지도 잘 모르겠다. 불안하니까 잠이 안 오고, 잠이 안 오니 그다음 날도 더 늦게 온다. 늦게 일어나서 그날 할 일을 제대로 마치지 못하는 자신이 무력하게 느껴진다. 불안이 잠도 가져가고, 하루도 가져가고, 이러다 인생을 통째로 가져갈까 봐 무섭다. 불안이 불안을 낳는다.


이럴 때 우리는 만난다. 카톡으로 전화로 만난다. 만나서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수다를 떤다. 나와 우의 수다에는 "아, 내 말이!"라는 말과 "야 나 그 기분 뭔지 알아."라는 말이 자주 등장한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아니 남자들은 다 왜 그런 거야? 꼭 말로 해야 알아? 좀 먼저 알아주고 먼저 이해해 주면 안 돼?"

(조금 짜증스러운 목소리로)"아 내 말이!!"

"가끔은 말이 진짜 안 통해. 벽에다 대고 말하는 기분이야."

(깊은 한숨과 함께)"야 나 그 기분 뭔지 알아."


뭐가 그렇게 잘 맞고 어쩜 내 맘이 네 맘 같은지 신기해하며 우리의 수다는 이어진다. 물론 매일 남자 친구 욕만 하는 건 아니다. 칭찬도 한다. 서로의 가장 뾰족한 부분을 이해해 주며 감싸주는 애인에게 감사해하며 지금 옆에 있는 사람에게 잘하자며 사랑을 북돋는다. 사람에 대한 사랑도 북돋고 인생에 대한 사랑도 북돋는다. 불안은 혼자 지니고 있으면 큰 한 덩이지만, 나누면 작은 두 덩이가 된다. 나이도 같고, 연애 기간도 비슷하고, 주변 환경도 비슷한 우리는 항상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불안을 겪는다. 그런 불안을 나누며 내 불안이 그렇게 특별하지 않음을 확인한다. 다른 건 특별해도 불안까지 특별하게 불안하고 싶지는 않기에 불안끼리 어 너도? 나도! 라고 인사하는 순간이 오면 우리는 안심한다.


뭐 불안하지 않은 시절이 있었던가. 지나고 보면 별일 아니라지만 지나가 봐야 별일 아닌 거지 지나가기 전에는 다 별일이다. 그 별일마다 우리는 수다를 떤다. 작은 별일에는 작은 수다를, 큰 별일에는 큰 수다를. 수다를 떠는 동안에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최대의 공감과 이해를 표출한다. '아 그니까'와 '그 기분 뭔지 알아'를 남발한다. 진짜 아는 건지 모르는 건지 알 수 없지만 우가 목소리를 높여가며 나의 기분을 안다고 말해주는 순간만큼은 불안하지 않다. 누군가가 나를 안다는 건 조금 덜 외로워지는 일임을 깨닫는다. 물론 수다는 아무것도 해결해주지 않는다. 목이 아프고 시간만 흘러있을 뿐이다. 하지만 수다를 떨고 난 후의 공기는 조금 달라져 있다. 무언가 밝고 든든하다. 우리는 서로의 불안에 조금씩 기대어 있음을 느낀다.


"그런데 진짜 어른이 되는 일은 혼자서 불안을 감당하는 일이래. 조금 기분 나쁘고 울적해도 혼자 해소할 수 있으면 어른 이래."

"헐…. 그런 게 어른이면 난 아직 멀었는데…? 이렇게 수다 안 떨면 난 진작에 단명했을 거야."

"…. 응…. 나도…. 그냥 어른 하지 말자."


나도 우도 언젠가는 우리가 불안할 때마다 수다를 떨 수 없는 날이 온다는 걸 안다. 모든 걸 표현하고 표출해야 하는 지금과 달리 조금 말하고 조금 표현해도 괜찮아지는 때가 온다는 걸 안다. 그때는 불안이 지금보다 작아져서 그런 건지 우리가 불안보다 커진 건지는 모르겠으나 분명 지금보다 과묵해져야만 하는 날이 올 것이다. 그때의 우리는 불안보다 더 큰 것들을 나누고 싶다. 시간, 감사, 사랑, 가족..... 재미없지만 분명 불안보다는 큰 주제를 갖고 몇 시간이고 수다를 떨고 싶다. 지금보다는 느긋한 속도로. 지긋이 바라보는 눈빛으로. 어김없이 그때 참 별일 아니었는데 말이야.라고, 말하며.


우에 대해 쓰고 나면 꼭 우와 수다를 떤 듯한 기분이 든다. 내 주변의 공기가 조금은 달라져있다. 달라진 공기는 나에게 힘을 준다. 모든 걸 표현하지 않아도 괜찮아지는 그날까지 우와 수다를 떨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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