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단어 Aug 05. 2024

노 머니 노 데이트.

노 머니 노 데이트.

  언젠가 수혁이의 부모님이 운영하는 가게에 가 본 적이 있다. 수혁이의 어머니는 김밥 가게를 하시는데 수혁이도 가끔 그 가게에서 어머니를 도와 일을 하기 때문이다. 가게에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유리창 너머로 일하고 있는 수혁이가 보인다. 그리고 가게 문을 열고 들어가면 앞치마를 입고 카운터를 지키고 있던 수혁이가 나를 반겨준다. 그럼 나는 수혁이와 짧은 포옹을 하고서는 주방에서 일하고 계시는 수혁이 어머니께 인사를 한다. 그리고 나면 조금 뻘쭘해지는 시간이 다가온다. 수혁이의 일이 끝나기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가게에서 할 일이 없기 때문이다. 나는 편한 백성처럼 가게 구석 자리에 앉아서 열심히 일하고 있는 수혁이를 계속 눈으로 좇는다. 수혁이는 앞치마를 입고서 전화를 받고, 반찬을 담고, 김밥을 포장하고, 손님들을 맞이한다. 그 목소리는 얼마나 상냥한지 웃기기도 하고 생소하기도 해서 자꾸만 보게 된다. 또 지금이 아니면 언제 앞치마 한 애인의 모습을 보겠는가. 수혁이는 일을 하다가 나와 눈이 마주치면 알 수 없는 표정을 짓는다. 부끄러운 건지 장난치는 건지 모르겠는 표정을 지으며 나를 빤히 쳐다봤다가 이내 다시 눈을 돌리고 일을 한다.


 노동하는 애인을 보고 있자면 마음이 찡해진다. 찡-하다는 게 이런거구나 라는걸 알 수 있다. 두 다리와 두 팔을 열심히 움직이는 수혁이. 무언가에 한껏 집중한 듯한 수혁이. 그럼에도 목소리는 상냥한 수혁이. 기특하고 안쓰러운 마음으로 수혁이를 보고 있다 보면 자연스레 수혁이의 어머니에게로 시선이 옮겨진다. 수혁이의 어머니는 수혁이보다 두 배는 더 빠르고 노련한 솜씨로 일을 하신다. 분명 조금 전에 설거지하시는 것 같았는데 잠시 눈을 돌리면 어느새 재료를 꺼내와 조리하고 계신다. 대단하다-라고 생각을 하다가도 저렇게 되기까지의 시간을 생각하면 나는 또 아득해지고 만다.


 영순 씨의 하루는 오전 6시30에 시작해서 오후 8시가 되어야 끝이 난다. (수혁이 어머니. 라고 칭하면 너무 길기때문에 영순씨. 라고 칭하겠다. 실제로 수혁이는 어머니를 가끔 영순씨라고 부른다. 이 무례를 부디 용서해 주시기를….) 그렇게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일을 하신다. 토요일에도 가게를 연다. 물론 토요일에는 평일보다는 문을 조금 빨리 닫는다. 12시간이 넘는 노동을 나는 상상해 본 적이 없다. 하루에 9시간 일해도 너무 피곤해서 집으로 돌아오면 곧장 뻗고는 했는데 영순씨는 그 오랜 노동을 매일매일 어떻게 해내는 걸까. 건장한 성인 남자인 수혁이도 영순씨와 함께 일하고 돌아오는 날에는 앓는 소리를 낸다. 손발이 척척 맞는 영순씨와 수혁이를 보고 있자면 나는 수혁이가 부모님을 아끼는 마음을 이해하게 된다. 수혁이는 자라는 동안 이 모습을 보고 자랐을 것이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얼마나 오래 일하시는지, 그 노동이 얼마나 고된지, 직접 말하지 않아도 느껴졌을 것이다. 그리고 그 노동의 이유가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서라는 것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나는 아주 잠깐 헤아렸던 영순씨의 고됨을 수혁이는 오래 헤아렸을 것이고, 내가 가졌던 영순씨에 대한 경외심보다 몇 배로 수혁이는 영순씨를 존경하는 동시에 그만큼 마음이 아파왔을 것이다.


  나는 다시 노동이 숭고하다고 생각한다. 노동 자체는 절대 숭고하다고 말할 수 없지만, 그 노동이 가져다주는 것들을 생각했을 때 우리는 노동이 숭고하다고 말할 수 있다. 노동을 통해 번 돈으로 우리는 생계를 유지한다. '생계'의 사전적 의미는 ' 살림을 살아 나갈 방도. 또는 현재 살림을 살아가고 있는 형편.'을 뜻한다. 이 형편 속에서 하루를 살고, 내일을 계획하고, 가족을 이루고, 울고 웃으며 살아간다. 나와 수혁이는 부모님의 노동 아래에서 지금까지의 삶을 이루어 왔다. 노동이 없다면 우리의 삶도 없었을 것이다. 노동은 삶을 유지하게 하는 수단이자 가족을, 친구를, 우리를 더 사랑하게 만들어 주는 일이기도 하다.


 엄마는 내가 알바를 시작한 이후로 종종 스타벅스에 파는 '클래식 블루베리 치즈 케이크'를 사달라고 부탁한다. 무려 7,900원으로 스타벅스에서 파는 가장 비싼 디저트이다. 하지만 나는 나에게 무언가를 사달라고 부탁하는 엄마가 좋다. 엄마가 좋아하는 케이크를 사 들고 집에 갈 수 있는 형편이라서 좋다. 우리는 저녁을 먹고 식탁 위를 대충 치운 뒤 냉장고에서 치즈 케이크를 꺼내 한입씩 먹는다. 너무 느끼해서 한 번에 다 먹을 수 없다. 블루베리와 치즈의 기막힌 조화를 즐긴다. 그러면 행복해진다.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는 엄마. 익살스러운 표정으로 아~ 딸이 돈 버니까 좋다~라고 말하는 엄마. 그럼 나는 나의 노동이 조금 좋아진다.


 영순씨의 노동도 동윤씨의 노동도 수혁이의 노동도 그랬을 것이다. 매일 반복되는 노동에 혀를 내두르다가도 사랑하는 너와 나를 생각하면 쉽게 그만두지 못했을 것이다. 노동은 우리의 시간을 뺏어가지만 그에 상응하는 돈을 주니까. 그 돈으로 우리는 데이트도 하고 효도도 하고 육아도 하니까. 어쩌면 노동은 사랑의 최선의 방식이 아닐까. 눈에 보이는 사랑이 있다면 그게 바로 노동 아닐까. 매일 최선의 사랑을 실천하고 있는 모든 노동 인에게 박수와 존경을 보낸다. 나를 위한 노동이 너를 위한 노동이 되고, 너를 위한 노동이 나를 위한 노동이 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인생일 것이다. 가능한 날까지 최선의 사랑을 실천하면서 살고 싶다.


작가의 이전글 수다는 나의 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