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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어 Aug 12. 2024

미워하고 사랑하는,

  1년 동안의 아르바이트에 대해서 생각한다. 내일은 작년 9월에 시작해서 지금까지 일하고 있는 방탈출 아르바이트의 마지막 출근날이다. 마지막이라는 말은 매일 같이 하던 일도 괜히 애틋해지게 만들고 한 번쯤 돌아보게 만드는 힘을 갖고 있다. 나는 마지막이라는 말에 굉장히 약하기 때문에 마지막…. 마지막 출근…. 을 되뇌며 1년 간의 아르바이트를 기념하고 있다. 1년이라는 시간은 나의 많은 부분을 바꾸어 놓았는데 무조건 좋다고도 할 수 없고 안 좋다고도 할 수 없는 방향으로 바뀌었다.


 먼저 욕을 굉장히 잘하는 사람이 되었다. 지금까지 살면서 예쁜 말을 잘한다고 자부하며 살아왔는데 내가 예쁜 말만 할 수 있었던 건 예쁜 상황에만 놓여있었음을 깨달았다. 상황이 어떻든 나의 고고함을 유지하며 은은한 미소로 대처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지만 나는 그냥 욕을 잘하는 사람이 되었다. 물론 사람들 앞에서는 하지 않는다. 그들이 모두 매장을 떠나고 난 후에 친절한 직원이라는 연극이 끝나고 난 후에 나의 욕 퍼레이드가 시작된다. 이 과정은 굉장히 철저해야 한다. 방심했다가는 또 다른 화를 불러올 수 있다. 손님이 매장 밖으로 나갔는지 확인하고, 매장에 남은 손님이 아무도 없는지 확인하고, 손님과의 전화가 확실하게 끊겼는지 확인한 후 아주 강렬한 한마디를 나지막이 내뱉는다. 그 한마디가 무엇인지는 당신들의 상상에 맡기겠다. 열린 결말이 더 궁금한 법이니까. 왜 이런 험악한 인간이 되었나 자괴감에 빠질 때쯤 나의 옛 동료 영비는 나의 험악함을 보고는 뿌듯한 미소를 지으며 이런 말을 했다.


"너…. 아주 주체적인 사람이구나…? 성장형 캐릭터야......" 


  영비는 지금의 내가 더 매력적이라고 말해 주었는데 나는 그 말에 조금 더 용기를 내어 험악해질 수 있었다. 확실히 매번 우는 사람보다는 나지막한 욕 한마디로 상황을 넘겨버리는 사람이 더 매력적으로 보일 것 같기도 하다. 왜인지 강해 보이기 때문이다. 강해지기까지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렸을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지만 말이다.


 욕에 대해 생각하다 보면 나는 하라무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하라무는 내가 욕하는 모습을 세상에서 제일 많이 본 사람일 것이다. 하라무와 함께 일했던 1, 2월 겨울방학 시즌은 너무나도 바빴다. 욕도 말이라고 이상하게 들어주는 사람이 있으면 더 많이 하게 되는데 나의 그 모든 욕을 들어주었던 하라무에게 감사와 사과를 함께 전한다. 물론 하라무를 향한 욕은 아니었지만 뭐 좋은 말이라고 계속 듣고 싶었겠는가. 내가 투덜거릴 때마다 하라무는 고개를 끄덕이며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는데 그 침착함 덕분에 나는 조금 쉴 수 있었다. 나는 너무너무 바쁘고 지칠 때면 입에서 도저히 높은 톤의 목소리가 안 나온다. 평소에는 "어서 오세요~ 예약하셨을까요~?" 라고 늘려서 말한다면 최소한의 힘만 남아있는 나는 그냥 랩을 한다.


"어서오세요예약하셨을까요"


  하라무는 어떤 상황이든 사람 좋은 미소를 유지하며 아주 달콤한 목소리로 사람들을 응대할 수 있는 사람임을 알기에 모든 응대는 하라무에게 맡겨두고 나는 입을 닫은 채로 테마만 청소할 수 있었다. 험악한 나와 글 쓰는 나의 괴리를 가장 많이 느꼈을 알바 동료들에게 부디 이 모습은 잊어달라고 말하고 싶은 동시에 당신들만 기억하고 있으라고 말하고 싶은 충동이 든다. 동료애는 서로의 텅 빈 눈을 보며 믿을 수 없는 풀(full) 예약을 마주한 채로 주고받는 한마디의 험악한 말에서 피어나기 때문이다.


  나의 동료들과 함께 사람을 미워했다가 가끔은 서로를 미워하기도 했다가 또 결국 만나면 반갑게 인사하면서 1년을 보냈다. 그 1년 동안 나는 많이 험악해졌다가 동료의 말 한마디로 강해지기도 했다. 나를 험악하게도 만들고 강하게도 만드는 아르바이트를 어떻게 미워하지 않겠는가. 미워만 하기에는 떠오르는 얼굴이 너무 많고 사랑만 하기에는 떠오르는 예약이 너무 많다. 내일도 애틋한 마음으로 출근하고는 도망가듯이 퇴근할지도 모른다. 험악한 표정을 지은 채로. 하지만 애틋한 마음을 짓게 만드는 동료들에게는 언제나 애틋한 마음일 것이다. 우리는 서로의 고됨을 한 조각씩 목격한 사이니까. 그 고됨을 생각하면 우리는 서로를 응원할 수밖에 없으니까. 나에게 미움과 사랑을 모두 전해준 아르바이트에게 고마웠다고 말하고 싶다. 진부하지만 그렇게 말하고 싶다. 내일도 진부한 인사를 하며 마지막 퇴근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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