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톱을 잘랐다. 며칠 전 오랜만에 글을 쓰고자 마음먹고 노트북을 켰는데 너무 길어버린 손톱 탓에 타자가 잘 쳐지지 않는 것이다. 글을 쓴 지 너무 오래되어 긴 손톱이 타자 치는 것을 방해한다는 사실조차도 잊고 있었다. 사실 그것만 잊은 것이 아니다. 글을 쓰는 방법, 글을 시작하는 방법, 제목을 짓는 것부터 내가 왜 글을 썼는지 무엇을 위해 썼는지 어떤 마음으로 썼는지 글을 쓰고 나면 무엇이 달라지는지…. 많은 것을 잊어버리고 말았다.
글이 올라오지 않는 동안 나의 독자들은 생각했을 것이다. (송구스럽고 감사한 마음으로 부디 나의 글을 기다린 독자가 있기를 바라며….) 예진이가 바쁜가? 아니면 어디가 아픈가? 혹은 이제 글에는 흥미를 잃었나? 글보다 더 재밌는 일을 찾았나? 글 없이도 살만한 삶이 되었나? 내가 글을 쓰지 않는 동안 아이러니하게도 세상은 글이 조금 더 필요한 쪽으로 흘러가고 있다고 느꼈다. 나는 여전히 글은 웃는 사람보다는 우는 사람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울고 싶은 크고 작은 일들이 계속해서 일어났기 때문이다.
우리의 일상을 위협받는 일이 일어났고, 누군가는 이 사실에 분노했고, 누군가는 일상이 흔들렸고, 누군가는 일상을 계속해서 이어 나갔다. 그리고 더 분노한 사람이 덜 분노한 사람에게 화를 내고, 움직이는 사람은 움직이지 않는 사람을 비난하는. 발신자와 수신자가 명확하지 않은 분노들이 우리 사이를 떠다니기도 했다.
나는 분노와 절망에 익숙하지 않다. 피할 수 있다면 최대한 피하며 살았고 나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게 아니라면 그저 못 본 척, 못 들은 척하며 살았다. 지금도 그렇게 살고 있다. 내가 어찌 할 수없는 일에 대해 떠드는 일도 좋아하지 않는다. 뉴스에서, 인스타그램에서, 유튜브에서 떠들썩하게 보도되는 사건의 중심에 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생각하게 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변두리에 있는 사람. 아무리 헤아려도 결코 그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없는 사람. 그들의 슬픔과 절망을 가볍게 만드는 것만 같아서 되도록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이런 슬픔이 계속된다면? 하나의 슬픔이 잊힐 때쯤 또 다른 슬픔이 다가온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언제까지 못 본 척, 못 들은 척 살 수 있을까. 계속되는 슬픔은 큰 분노를 가져오기도 한다. 그 분노는 일상을 해치고, 다른 사람의 일상을 방해하고, 분노해야 할 일과 분노하지 않아도 되는 일 사이의 경계를 흐리게 만든다. 슬픔이 분노가 되기 전에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22년도에 들었던 교양 수업 중 호모 엠파티쿠스 - 고통받는 인간이라는 수업이 있다. 여기서 호모 엠파티쿠스의 뜻은 수업의 제목인 고통 받는 인간이 아닌 '공감하는 인간'이다. 인간의 삶에 고통은 필연적이고 피할 수 없는 일이다. 오늘 당신이 고통받았다면 내일은 내가 고통받을 수도 있다. 오늘 내가 고통받았다면 내일은 당신이 고통받을 수도 있다. 시기와 강도는 다를지 몰라도 우리 모두는 살면서 고통받는다. 교수님은 이렇게 표현하셨다. 우리는 모두 서로에게 조금씩 고통을 빚지고 있다고. 내가 오늘 고통 받지 않은 이유는 다른 사람이 그 고통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그러니 우리는 고통 받은 사람에게 충분히 공감해야 한다고. 그게 고통을 피한 사람이 해야 할 일이라고. 그 공감은 언젠가 내가 고통받을 때 다시 돌아올 것이라고.
그리고 공감과 더불어 나에게 주어진 일상을 충실히 살아가는 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 아닐까. 지금 나의 옆에 있는 사람과 함께 일상을 살아내는 것. 슬픔을 잊지 않음과 동시에 삶의 기쁨도 잊지 않는 것. 우리가 누릴 수 있는 기쁨을 놓치지 않고 포착하는 것. 충실하게 포착하는 것. 그렇게 다시 힘을 내는 것. 결국에는 반복될 슬픔과 기쁨을 외면하지 않고 온전히 바라보며 느끼는 것. 슬플 때는 기도하고 기쁠 때는 감사하는 것. 그것만이. 그것만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닐까.
언젠가 랄라와 나누었던 대화를 떠올린다. 너무 힘들고 고된 시기를 지나고 난 후 문득 바라본 손톱이 너무 많이 자라있었다고. 언제 이렇게 자랐지 싶었다고. 어떤 순간에도 손톱은 자라는구나. 하며 자라난 손톱을 보며 어떤 안도감을 느꼈다고. 손톱은 지금도 자라고 분노와 절망과 슬픔 속에서도 삶은 계속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