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들, 이라는 표현은 아무래도 조금 어색하다. 집은 여러 군데 있는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많아 봤자 부모님이 계시는 본가와 혼자 사는 자취방 정도가 집이라고 칭하는 곳이다. '집들'이라는 표현을 쓸 수 있는 사람은 우리나라에 몇 명 안 될 것이다. 연예인이나 재벌들 정도겠지.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하반기를 보내며 종종 떠올린 곳이 있었다. 그곳은 이상하게도 본가도 아니고 좋아하는 카페도 아니고 가보고 싶은 여행지도 아닌 1년 정도 아르바이트했던 방탈출 카페이다. 줄여서 '방'이라고 칭하겠다. 방을 떠올리면 두 가지의 장면이 떠오른다. 손님도 다른 알바생도 없는 아주 고요하고 한적한 모습. 방에는 창문이 없어서 오랫동안 있다 보면 낮인지 밤인지 알지 못하는데 흘러가는 시계를 보며 하루가 어느 정도 지났는지 짐작할 뿐이다. 천장의 히터에서는 따듯하다 못해 더운 바람이 나오고, 카운터에 앉아서 고개를 들면 바로 보이는 유리문을 봤다가 핸드폰을 봤다가. 그럴 때면 방의 복도에 깔린 빨간 카펫이 더 진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또 하나의 장면은 다른 알바 친구들과 함께 있는 모습이다. 좁은 카운터에서 밥을 먹기도 하고 카운터와 손님이 있는 곳을 왔다 갔다 하며 우리의 완벽한 호흡에 감탄하는 모습. 무엇보다 동그란 의자에 앉아서 한없이 가벼운 농담부터 무거운 이야기까지 들려주는 모습. 이상하게도 그곳에 앉으면 내가 어떤 이야기가 하고 싶었는지 알게 된다. 어떤 말이 듣고 싶었는지도.
왜 많고 많은 곳 중에 하필 방이 떠올랐을까. 기억은 다 미화된다고 하는데, 시간이 지나 좋은 기억만 남아있어서일 수도 있고 이제는 돌아갈 수 없는 곳이라 그리워진 것일지도 모르지만 아마 혼자와 함께를 반복하며 방이 나의 집이 된 까닭일 테다. 손님에게는 최선의 노력과 최고의 모습을 보여야 하지만 함께 일하는 서로에게는 그럴 필요 없으니까. 우린 서로의 뒷면을 목격하는 사람들. 서로의 실수를 가장 먼저 알아채는 사람들. 나의 실수를 숨길 수 없는 사람들. 숨길 수 없다는 사실이 좋았다. 숨기고자 해서 숨겨진다면 영원히 숨기기 위해 너무나 많은 애를 써야 하니 말이다.
집은 공간에만 생기는 것이 아니다. 나의 친구 유가 그렇다. 나는 유와 함께 있을 때 그곳이 어디든 집이라고 느낀다. 눈이 펑펑 내렸던 공주, 파도와 비와 폭죽이 가득했던 부산, 매번 길 잃어버리는 서울…. 유와 함께 시시덕거리며 걷다 보면 길 잃어도 괜찮다는 생각이 든다. 유가 이미 나의 집이기 때문이다.
종종 길 잃어버려서 발견하게 되는 집이 있다. 그 길 잃음은 주로 카톡으로 이루어진다. 쌓여가는 시험과 과제 사이에서 헉헉대고 있을 때 유와 몇 마디 쓸데없는 소리를 주고받고 나면 집에 다녀온 기분이 든다. 카톡만 하다가 시간이 훌쩍 흘러버릴 때도 있다. 하지만 집이 원래 그런 곳 아닌가. 꼭 쓸 때 있지 않아도 되는 곳. 쓸데없는 말을 주고받고 한바탕 웃을 수 있는 곳. 엉망인 나를 겁내지 않고 마주할 수 있는 곳.
이제는 내 기억 속 방과 많이 달라졌을 지금의 방을 생각한다. 내가 떠난 자리에 새로운 사람들이 드나 들었을 방. 또 그들만의 이야기가 만들어져 가는 방. 그렇게 방은 또 다른이의 집이 되어가고 있을 것이다. 자꾸만 집은 무너지는 동시에 지어진다. 집은 여기에도 있고 저기에도 있다. 수많은 집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