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텍스트힙의 시대가 도래했다. '취미 : 독서'라고 쓰면 진부해 보이는 시대는 지났다. 이제는 어떤 책을 읽는지, 읽은 책을 어떻게 기록하며 삶에 적용하는지 등을 공유하고 자랑할 수 있는 시대이다. 물론 텍스트힙이 유행한다고 해서 당장 주변에 책을 읽는 사람이 눈에 띄게 늘어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분명 책과 책 읽는 사람에 대한 시선과 접근성이 달라진 것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넘쳐나는 미디어와 콘텐츠 속에서 '텍스트'가 유행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왜 텍스트롹도 아니고 텍스트팝도 아니고 텍스트 '힙'일까.
텍스트힙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에 '힙'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네이버 국어 사전에 '힙하다'라고 검색하면 '영어 단어인 '힙(hip)'에 한국어인 '-하다'를 붙인 말로, 형용사로 쓰이며 새로운 것을 지향하고 개성이 강한 것을 의미한다. 비슷한말로는 '핫하다', '트렌디하다' 등이 있다.'라고 나온다. 새로운 것을 지향하고 개성이 강한 것. 그렇다면 텍스트가 새로운 것을 지향하고 개성이 강하단 말인가? 텍스트. 즉 글은 유튜브와 인스타그램과 트위터가 유행하기 전에, 아니 스티브 잡스가 검은 목티를 입고 애플을 만들어내기 전에, 안토니오 메우치가 전화를 발명하기 훨씬 전부터 존재하고 있었다. 그런데 왜 이제 와서 텍스트가 힙해졌을까. 우리는 왜 글을 힙하다고 느낄까.
텍스트가 힙해진 가장 큰 이유는 텍스트를 소비하는 사람이 이전보다 현저하게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이전보다 줄어든 것은 물론이고 우리의 눈과 귀를 사로잡는 미디어 콘텐츠 소비량과 비교해 봐도 책을 읽는 사람의 비율은 아주 낮다. 하지만 어떤 문화를 향유하는 사람의 수가 적으면 적을수록 그 문화는 '힙' 해진다. 남들과는 달라 보인다. 친구들은 유튜브를 보며 시간을 때울 때 나는 책을 읽는다. 지하철 안에서 모두 스마트폰에 쏙 빠져 정신이 없을 때 나는 책을 조용히 꺼내 든다. 이 얼마나 특별하고 멋있어 보이는가. 여기서 우리가 집중해야 할 것은 멋있어 '보인다'는 점이다. 우리는 멋있어 보이기를 원한다. 요즘처럼 자기 자신을 드러내기를 원하는 세상에서 멋있어 보이는 것은 아주 중요하다. 이러한 맥락에서 몇몇 사람들은 텍스트힙의 유행은 보여주기식이라며 비판하기도 한다. 지적 허영심을 채우기 위해 SNS에 책을 올리곤 실제로는 읽지 않는다며 텍스트힙을 인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텍스트힙이 오로지 사람들의 지적 허영심을 채우기 위해서 유행하는 것일까? 그저 많은 사람들이 향유하지 않는 소수의 문화라서? 나는 아니라고 답하고 싶다. 새로운 지식과 기술이 끊임없이 탄생하고 빠르게 변화하는 이 세상에서 텍스트가 아직 존재하며 다시 유행하는 이유는 사람들에게는 '의미'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왜 태어났는가?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가? 인생의 목표가 무엇인가? 나는 무엇을 좋아하는가? 무엇을 하면 즐거운가? 행복은 어디에 있는가? 아니 행복이란 무엇인가? 누구나 살다 보면 한 번쯤 이런 모호하고도 어려운 질문에 맞닥뜨린 적이 있을 것이다. 어쩌면 인생에서 제일 중요한 질문들. 하지만 그 누구도 가르쳐주지 않는 질문들. 입시와 경쟁에 치여 살아가다 보면 저런 질문을 떠올릴 새도 없이 어른이 된다. 그렇게 몸만 어른이 된 우리는 어느 순간 길을 잃는다.
길을 잃었을 때 우리가 제일 먼저 해야 하는 일은 올바른 길을 찾는 것이다. 어디서부터 잘못 온 건지, 어디가 내가 가야 할 길인지 알아내야 한다. 길을 잃었다는 느낌이 들 때마다 나는 책 속으로 숨어들었다. 책은 우리의 인생이 그러하듯 명료하고 간단하게 정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그 대신 내가 가야 할 방향을 알려준다. 정지우 작가님의 표현을 빌리자면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는 것'보다 더 강하게 믿을 수 있는 힘과 능력을 길러준다. 꿈, 희망, 행복, 사랑, 미래, 오늘보다 나은 내일 같은 것들. 보이지 않고 흐릿하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것들. 삶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보이지 않아도 꿈꾸고 상상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 보이지 않는 것을 믿어보기로 다짐하는 순간 지금 내 눈앞에 보이는 세상은 조금 더 살만해진다.
김초엽 작가님의 소설 속에서 아직 도래하지 않은 미래를 상상하며 그 미래에도 여전히 사랑이 존재할 것이라고 믿는 것. 김연수 작가님의 소설을 읽으며 나에게 이미 닥쳐왔을 혹은 언젠가는 닥쳐올 수도 있는 절망 앞에서 다시 한번 생의 의미를 깨닫는 것. 박준 작가님의 시를 읽으며 누군가를 뜨겁게 사랑했다가 차갑게 식어보는 것. 내가 아닌 타인이 되어 보는 것. 이 모든 일이 텍스트 안에서는 가능하다. 텍스트 속에서 나는 무한으로 확장된다.
내일 아침 조금 더 가벼운 마음으로 눈을 뜨고 싶다면,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간직하고픈 삶의 장면들을 더 잘 포착하고 싶다면, 조금 더 다정한 사람이 되고 싶다면, 아니 그냥 지금보다 더 잘 살고 싶다면 책을 펴라고 진심으로 권하고 싶다. 당신도 텍스트힙의 유행에 슬그머니 편승하기를 바란다. 텍스트 속에서 마음껏 상상하고 꿈꾸기를. 당신도 모르는 사이에 꿈꾸던 그날이 당신 곁으로 바짝 다가와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