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를 하는 것은 설거지를 견디는 일이다.

by 단어

자취하며 어쩔 수 없이 시작하게 된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집안일이다. 온 집안을 쓸고 닦고 매일 새롭게 생겨나는 머리카락을 청소기로 빨아들이고(머리카락은 두피에서 나는 게 아니라 바닥에서 생겨나는 것이 분명하다. 그렇지 않고서야 매일 아침 방바닥에서 새로운 머리카락을 마주할 리가 없는 것이다….) 일주일에 한 번씩 화장실 청결을 챙기며 세탁기를 돌리고 빨래를 널고 개는 일. 그 무엇하나 소홀히 할 수 없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집안일의 최고봉을 꼽으라면 나는 요리를 꼽는다. 그 어떤 집안일보다 고도의 기술과 섬세함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뿐만 아니라 인간의 3대 욕구 - 식욕, 수면욕, 성욕 중 하나에 해당하는 부분일 뿐만 아니라 먹고 사는 일에 관련된 일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요리에는 크나큰 용기가 필요하다. 조금 과장하는 것 같은가? 하지만 실제로 요리에는 아주 많은 품이 든다.


먼저 요리를 시작하기 전 오늘 내가 나의 식사를 책임지겠다는 각오를 해야 한다. 그 결과물이 어떠하든 겸허히 받아들일 자세 또한 필요하다. 나 같은 자취생에게 요리란 선택이 아니라 필수일 때도 많으며 결과물이 별로라고 해서 다 버리고 다시 시도할 시간과 금전적 여유 따위는 없다. 한마디로 맛이 없어도 견디고 어찌저찌 먹어야 한다는 뜻이다. 각오가 끝났다면 설레는 마음으로 오늘의 메뉴를 고민한다. 나의 작고 소중한 냉장고에는 어떤 식재료가 남아 있는가. 남은 식재료를 활용하여 만들 수 있는 최대한의 요리는 무엇인가. 도무지 남은 식재료로 한 가지의 요리를 탄생시킬 자신이 없다면 어떤 식재료를 추가로 사야 가장 경제적이고 활용도가 좋은가.


모든 고민이 끝났다면 이제 요리를 시작하면 된다. 사실 진짜는 지금부터 시작이다. 배가 고픈 자취생은 요리에 열과 성을 다하기보다는 가장 빠르고 효율적으로 조리할 수 있는 법을 찾는다. 포인트는 설거짓거리를 많이 만들지 않는 것. 요리 고수와 초보의 차이는 바로 여기에서 드러난다. 얼마나 적은 요리도구를 사용하여 얼마나 그럴듯한 음식을 만드는가. 사실 보기에 그럴듯하지 않아도 괜찮다. 나는 요리사도 아니고 요리로 돈을 벌 계획도 없으며 내가 해서 내가 먹는 것이니 맛만 먹을 만하면 성공적인 요리이다.


하지만 나는 똑같은 이유로 종종 성공적인 요리, 즉 먹을만한 요리에 실패하곤 한다. 나는 요리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20년 동안 엄마가 해준 밥만 먹어왔기 때문에. 요리에 관해서는 기술도 섬세함도 익히지 못했기 때문에. 여기서 더 절망스러운 점은 요리는 만들고 먹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아직 설거지가 남아있다는 점이다. 설거지는 맛있고 만족스러운 식사를 하고 난 후에도 귀찮은 일인데 맛없는 식사를 하고 난 후에는 더더욱이 미루고 싶어진다. 그러니까 요리를 한다는 것은 결국 기술도 섬세함도 없는 나를 포기하지 않고 끝끝내 결과물을 만들어 내는 일. 또는 그 사투의 흔적인 설거지를 견디는 일인 것이다.


하지만 빠듯한 자취생이 요리를 하지 않고서는 살아갈 수 없는 것처럼 우리네 인생에는 품이 많이 들지만 포기할 수 없는 일들이 수두루 빽빽이다. 요리는 내 입에만 맛있으면 그만이지만 세상에는 요리보다 더한 일이 지천으로 널렸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젊고 예쁘고 피부가 아직 탱글하고 편한 옷보다는 불편하고 멋진 옷이 좋은 나에게 그런 일이 무엇이냐 묻는다면 나는 한시도 고민하지 않고 연애라고 답하겠다. 학창 시절 드라마를 보며 연애를 배운 나는 릴러말즈 노랫말처럼 사랑은 맛있는 것을 먼저 주고 발걸음을 맞춰 걷고 꽃다발을 사다 주고 보고 싶을 때만 미안해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주 쉽게 생각했다. 그러니까 일단 연애라는 것이 상호합의 하에 성사되기만 하면 내 앞에는 꽃길만 펼쳐질 줄 알았다. 꽃이 피기 위해서는 좋은 흙에 씨를 심고 물도 주고 가끔 햇빛도 비춰줘야 하는 아주 번거로운 일임을 몰랐던 것이다….


음악 앱에 '사랑은'이라고 검색하면 여러 곡이 뜬다.


사랑은 늘 도망가

사랑은 언제나 걸음이 느려서

사랑은 타이밍

사랑은 가슴이 시킨다

사랑은 언제나 목마르다

사랑은 지옥에서 온 개

사랑은 돈보다 좋다

사랑은 은하수 다방에서

사랑은 얼어 죽을

.....


몇십 개의 곡 중에서 눈에 띄는 제목만 대충 나열해 봐도 이 정도다. 발라드부터 댄스곡, 트로트까지 세상 모든 노래가 사랑노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사랑을 주어로 한 노래는 넘쳐흐른다. 그리고 사랑에 대한 정의도 사랑 노래만큼이나 다양하다. 사랑은 걸음이 느리지만 그 느린 걸음으로 언제나 도망가고, 타이밍이 중요하지만 타이밍을 계산할 새도 없이 가슴이 시키는 일이며, 은하수 다방에서 만난 사랑은 돈보다 좋았다가 나지막이 '얼어 죽을....'을 외치며 지옥에서 온 개가 되기도 한다. 그리고 우리는 또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분명 얼어 죽을 사랑이었는데도 시간이 지나고 기억이 희미해지면 또다시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곤 하는 것이다. 우리의 기억력이 좋지 않은 것인지 언제나 사랑에 목말라서 그런 것인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요리뿐만 아니라 사랑 또한 애석하게도 나는 전문가가 아니다. 요리는 유튜브, 블로그에서 레시피를 알려주기라도 하는데 사랑 잘하는 법은 레시피가 따로 없다. 개개인의 성격만큼이나 사랑의 모양도 다 달라서 이 사람에게 먹혔던 사랑법이 저 사람에게는 먹히지 않기도 한다. 하지만 사랑을 하기로 한 이상, 서로를 연인이라는 이름으로 부르기로 약속 한 이상 우리는 계속해서 노력해야 한다. 너도 나를 모르는데 난들 너를 알겠느냐를 외치는 세상에서 서로를 알기 위해서 그리고 잘 아껴주기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 우리는 연인임으로. 서로를 이해하고 돕는 사람임으로.


요리보다 번거롭고 어렵고 복잡한 연애를 그럼에도 하는 이유가 무엇이냐 묻는다면 연애는 이 모든 역경과 역경을 이겨낼 힘을 동시에 주기 때문이다. 내가 아닌 타인을 이해하기 위해 부단히 애쓰는 모습을 통해 희망을 보기 때문이다. 그리고 부단히 애를 쓰면서까지 이해하고 싶은 타인을 만나는 것은 인생에 몇 번 오지 않는 희귀한 기회임을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요리의 전문가는 되지 않아도 좋으니 사랑의 전문가가 되고 싶다. 사랑에 관한 기술과 섬세함을 부지런히 배우고 익히고 싶다. 그 기술로 사랑 뒤에 따라오는 귀찮은 설거지를 꿋꿋이 해내는 사람이 되고 싶다. 언젠가 뽀득뽀득 깨끗해진 싱크대 앞에서 새로운 요리를 시작할 수도 있을 것이다. 요리에는 반드시 설거지가 동반된다는 사실을 또 한번 망각한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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