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길을 걸으면서 에어팟을 잘 끼지 않는 애를 알아. 에어팟을 끼더라도 노이즈 캔슬링은 절대 안 해. 비싼 돈을 주고 샀으면서 왜 기능을 사용하지 않느냐고 물었어. 그 기능을 한 번도 사용한 적 없으면 몰라도 한 번이라도 고요한 세상을 알게 된 사람은 다시 시끌벅적한 세상으로 돌아가기 힘들잖아. 한 번도 안 온 적은 있어도 한 번만 오는 손님은 없다는 맛집처럼. 얘는 부끄럽다는 듯이 잠시 뜸 들이더니 말했어.
바로 옆에 있는 사람 목소리도 안 들리잖아.
나는 그 말을 듣고도 잘 이해가 안 됐어. 누가 친구랑 같이 있을 때 에어팟을 끼겠어. 당연히 혼자 있을 때 말하는 거지. 라고 말하자 얘는 또 곰곰이 생각하더니 조금 높아진 목소리로 말해. 어느 날 횡단보도에서 에어팟을 끼고 노래를 들으며 신호를 기다리는데 이상하게 옆에서 윙윙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고. 하지만 귀에는 에어팟이 꽂혀있고 신호만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던 탓에 옆에 사람이 있는지 전혀 몰랐다고. 조금 뒤에 옆을 돌아보니 자기보다 키가 작은 할머니가 길을 물어보고 있었다고. 만약 자신이 계속 신호만 보다가 길을 건너버렸으면 할머니가 길을 물어봤는지도, 그곳에 할머니가 있었는지도 영영 몰랐을 거라고. 그 이후로는 에어팟을 잘 안 끼게 된다고 했어.
나는 얘 말고도 멈춰서서 돌아보는 사람을 알아. *컬러풀(일본 소설)에 나오는 사오토메라는 남자 중학생이야. 사오토메는 주인공의 친구인데 분량도 많지 않아. 책의 중후반쯤 등장해서는 몇 마디 하지 않고 사라져. 하지만 책을 덮고 난 후 주인공의 이름보다 사오토메의 이름이 더 많이 기억에 남았어. 주인공이 사오토메의 이름을 자주 부르거든. 사오토메는 주인공의 생각이나 대사에서 주로 등장해.
"그걸로 정했니? 겨우 1센티인데." 키다리 점원은 웃었지만 사오토메는 웃지 않았다. 내겐 귀중한 1센티다."
"사오토메, 그 머리말이야. 왁스 좀 바르고, 가르마 다는 게 좋을 거 같은데."라고 내가 조언하면, "나도 전부터 열 하려고 했는데, 그 앞머리 말이야, 왁스 너무 많이 바른 거 아냐?"라고 사오토메도 조언해 주는 스스럼없는 사이가 됐다. 그렇게 머리 모양에 신경을 써 봐야 반에서 우리 둘 다 인기 있는 축에 들지 못하지만, 그래도 나는 이제 비참하지 않다.
비참하다는 것은 점심시간을 혼자서 보내야 한다거나 이동 수업을 하러 갈 때 혼자서 걸어야 하는 것을 말한다. 옆에 누군가가 있다는 게 돌아볼 때마다 가슴 뭉클해질 정도로 기뻤다."
주인공에게 사오토메의 존재는 각별해. 처음으로 사귄 친구거든. 주인공은 이런저런 이유로 중학교에 입학한 이후로 힘든 학교생활을 보내. 키도 작고 소심한 주인공은 성적도 그리 좋지 않고, 친구도 없고, 유일한 안식처였던 가정에도 문제가 생기고, 자신이 좋아하는 여자애는 반짝거리는 것만 좋아하지. 그렇게 점점 자기 자신을 갉아먹던 주인공은 아주아주 큰 사건을 통해 다시 태어나. 다시 태어난 주인공은 도망쳐왔던 세상으로 고개를 빼꼼 내밀고는 한 발짝씩 내디뎌. 그렇게 힘들게 내디뎌서 만난 친구가 사오토메야. 사오토메는 주인공에게 처음으로 말을 걸어주고, 주인공의 작은 키를 비웃지 않고, 그렇다고 동정하지도 않으며 그냥 친구가 돼. 서로의 외모에 대해 스스럼없이 지적하다가도 밥은 꼭 같이 먹으러 가는 그런 친구.
"하지만, 개중에는 사오토메처럼 멈춰 서서 돌아봐 주는 애도 있었어. 내가 단순한지 모르겠지만 너무 좋아서 갑자기 힘이 나고. ••.
사오토메랑 친구가 됐으니까 어쩌면 다른 애들하고도 친구가 될 수 있을지도 몰라. 하나씩, 조금씩 늘어날지도 몰라. 어쩐지 고등학교에서는 잘 지낼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첫걸음이 좀 늦어도 이번에는 초조해하지 않고 만회할 수 있을 것 같아. 많은 친구들이랑 같이 떠들어 대면서 학교에 가고, 하굣길에 여기저기 들르기도 하고••••••
내가 고등학교에서 하고 싶은 건 그런 말도 안 되게 평범한 일들이야."
나는 주인공이 한 이 말을 한참이고 읽었어. 이 페이지에 한참 머물렀어. 자기 마음을 토해내듯이 고백하는 주인공이 대견해서. 첫걸음이 늦은 게 나랑 비슷해서. 멈춰 서서 돌아봐 주는 친구 한 명이 주는 의미는 그 이상이니까. 돌아서서 눈 맞추는 일은 삶에서 몇 번 일어나지 않는 기적 같은 일 이라는 걸 아니까. 우린 너무 바쁘잖아. 내가 내 마음을 돌보기도 바쁜 세상이잖아. 잠시 멈추면 꼭 뒤처질 것만 같고 그렇잖아.
하지만 앞서 나가는 생과 함께 걷는 생을 고르라면 함께 걷는 생을 고르겠어. 혼자서는 오래 걸어야 하는 길도 함께 걸으면 아주 짧게 느껴지니까. 습하고 무더운 날씨도 잊을 만큼 즐거운 수다를 나에게 안겨주니까. 이 정도 거리면 충분히 걸을 수 있겠다고 착각하게 만들고는 또 한 번 그 먼 길을 걸을 용기를 주니까.
뒤처져 있는 나를 발견하고는 그 자리에 멈춰 서서 내가 오기를 기다리던 친구들을 생각해. 친구들이 거기서 기다리고 있다는 걸 알아서 나는 그만큼 더 갈 수 있었어. 그들이 나를 바라보고 있어서 나는 그 자리 그대로 주저앉아 있을 수가 없었어.
발 맞춰 걷는 사람이 되고 싶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