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인은 말이 아주 많다. 3년 전에도 그랬고 군대에 갔을 때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아니 요즘은 예전보다 더더욱 많아진 기분이다. 애인의 수다 주제는 다양하다. 정치, 경제, 사회, 종교…. 모든 분야를 가리지 않는다. 요즘은 세계사에 빠져서 만날 때마다 세계사 지식에 대해 하나씩 알려준다. 물론 나는 그 많은 이야기 중 대부분을 기억하지 못한다. 너무나 방대하기 때문이다.
애인이 들려주는 수많은 이야기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이야기가 있다. 우리의 대화가 붕 뜨다가도 이 이야기가 나오면 나도 모르게 그 이야기에 빨려 들어간다. 바로 애인의 외할아버지에 관한 이야기이다. 애인은 어린 시절 부모님이 맞벌이로 바빴던 탓에 10년 넘게 할아버지와 함께 살았다. 그래서 어린 시절을 생각하면 할아버지를 빼놓을 수 없다고 했다. 할아버지가 항상 똥 퍼오라고 시켰던 일(거름으로 쓰기 위해), 할아버지를 위해 언제나 질은 밥을 먹어야 했던 일, 집에 텔레비전도 컴퓨터도 없어서 세 남매가 밖에서 뛰어놀았던 일…. 이제는 너무 많이 들어서 할아버지의 ㅎ자만 들어도 그 뒷이야기를 술술 말할 수 있을 정도다. 아무리 들어도 이 이야기가 질리지 않는 이유는 이야기하는 동안 애인의 표정이 너무나 천진난만해지기 때문이다. 슬픈 이야기를 하나도 슬프지 않게 말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할아버지의 이야기는 사랑의 역사에 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애인은 항상 말한다.
"할아버지가 우리를 진짜 사랑하셨어. 나는 그때 너무 많은 사랑을 받으면서 자랐어."
"어떻게 사랑했는데? 맨날 똥 퍼오라고 했다며…."
"아이~~그것도 맞지만, 할아버지랑 같이 살 때는 몰랐는데 중학교 가고 떨어져서 지내니까 알겠더라고. 할아버지가 항상 하는 기도가 있었거든. 아이들에게 솔로몬의 지혜를 부어주시고…. 복에 복을 더해 주시고…. 어른들이 많이 하는 기도 있잖아."
애인은 그 기도 덕에 지금까지 온 것 같다고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 기도가 아니었으면 지금의 자기는 없었을 것 같다고 했다. 그 말을 하는 애인의 표정이 너무나 진지해서 나는 기도의 힘을 믿어버리게 됐다. 신을 믿지 않고 종교가 없는 사람이라도 애인의 초롱초롱한 눈빛과 결연한 표정을 본다면 믿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애인의 옛이야기는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매일 먹는 질은 밥이 지겨워서 늦은 밤 엄마에게 분식을 사 와달라고 자주 전화했다고. 그러면 엄마는 아무리 늦은 시간이라도 분식을 꼭 사 와줬다고. 자기는 그 김밥과 떡볶이가 너무너무 맛있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엄마의 사랑을 느꼈다고. 그래서 자기는 너무 행복했다고. 애인이 느끼는 행복이 너무 작은 것이어서 나는 조금 놀란다. 겉치레로 겸손한 척하는 말이 아니라 진짜로 행복을 느낀 사람의 표정이어서 나는 좀 의아해지고 만다. 사람이 어떻게 저렇게 단순하고 쉽게 행복해질 수 있는 건지 궁금해진다.
도대체 행복이란 무엇인지 몰라서 끙끙 앓으며 며칠을 보냈다. 행복하기 위해서 가져야 하고 이루어야 하는 것이 끝도 없이 느껴졌다. 사랑 없이는 살 수 있어도 돈 없이는 못 살 것 같았다. 돈 때문에 무언가를 포기하고 선택해야 하는 일이 잦아지면서 마음에 여유가 없어졌다. 자꾸만 미운 사람이 됐다. 결국 이 모든 탓은 돈이 없으므로 귀결되어 돈이 없는 내가 밉고, 세상이 미웠다. 행복으로부터 뒤로 밀려가는 내가 싫어서 끙끙거렸다. 끙끙거린다고 당장 하늘에서 돈이 떨어지는 것도 아니고 큰돈을 벌 수 있을 만큼 능력 있는 사람이 되는 게 아니란 걸 아는데도 그랬다. 나를 미워하긴 싫어서 나를 미워하게 만드는 세상을 미워했다.
그런데 애인은 옆에서 자꾸만 속 편한 소리를 해대는 것이다. 믿음소망사랑 중 제일은 사랑이라느니. 돈 없어도 힘을 합치면 살 수 있다느니. 무엇이든 쉽게 사고 쉽게 가질 수 있는 삶은 불행하다느니. 자기는 이재용으로 살 수 있는 기회를 준다고 해도 싫을 것 같다고도 했다. 그 누구도 우리에게 이재용이 가진 만큼의 돈을 준다고 하지 않았는데 말이다…. 그러니까 애인은 기도와 사랑과 희망 같은 것들을 정말로 믿는 사람 같았다. 그런 애인을 보며 희망과 절망을 함께 느꼈다. 내가 느끼는 슬픔을 얘는 절대로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는 절망과 어쩌면 애인이 믿는 것처럼 제일은 사랑이고 쉽게 가지는 삶보다는 함께하는 삶이 더 행복할 것이라는 희망 같은 것이 동시에 느껴져서 울지도 못하고 웃지도 못하는 이상한 표정이 되고 말았다.
나는 삶이 나를 속이려 할 때마다 애인에게 할아버지 이야기를 해달라고 한다. 할아버지가 애인을 위해 어떻게 기도했는지, 어떻게 사랑했는지, 애인은 할아버지의 사랑을 어떻게 느꼈는지, 할아버지를 다시 만난다면 뭐라고 말하고 싶은지 하나도 빠짐없이 다 다시 말해달라고 한다. 그렇게 애인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나는 다시 사랑을 믿게 된다. 사랑이 우리를 살게 한다고 생각하게 된다. 적어도 내 눈앞에 있는 얘는 그렇게 살고 있으니까. 할아버지의 10년 치 기도와 사랑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로 내 앞에서 믿음소망사랑 중에 제일은 사랑이야!! 라고 외치고 있으니까. 나는 그저 사랑만 아는 애인이 미우면서도 사실은 내심 바란다. 얘가 항상 사랑만 알았으면 좋겠다고. 얘가 슬픔에 대해 알아버리는 날이 온다면 나는 조금 더 슬퍼질 것이다. 그때 나는 얘한테 무슨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을까. 그 이야기는 사랑에 관한 이야기일까 돈에 관한 이야기일까. 기왕이면 돈을 벌게 하는 사랑 이야기였으면 좋겠다. 그 돈으로 우리는 맛있는 밥을 먹고 이가 시릴 만큼 단 디저트를 먹은 뒤에 또 할아버지 이야기를 할 것이다. 할아버지의 기도와 사랑 앞에 절망은 또 힘을 잃고 말 것이다.